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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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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은 외출이 두렵다

등록 2006-11-24 00:00 수정 2020-05-03 04:24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 내에 빈번해지는 ‘조센징’ 대상 테러…정부·언론·시민사회 무관심 속에 ‘일상화된 비상사태’ 살아가는 조선인들

▣ 정영환 히토쓰바시대 박사과정·재일조선인

“애들이 괜찮을까.”

북한을 둘러싼 모종의 사건이 터지면 곧바로 이렇게 머리에 떠오른다. 1990년대에 조선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나에겐 함께 배우던 동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치마저고리 교복에 ‘칼질’을 당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안타깝게도 예상은 항상 적중한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미사일 발사 실험 뒤에 일본에서 일어난 재일조선인, 특히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폭행과 협박은 백수십 건에 달한다. 이 ‘백수십 건’이란 수치는 어디까지나 보고된 것이고, 실제로는 당사자나 학교 쪽도 피해 사실의 공개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난 네가 조선인인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7월의 미사일 발사 실험 이후에 발생한 폭행·협박 사건에는 90년대에 일어난 치마저고리 칼질 사건에서는 보지 못했던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피해의 저연령화다. 치마저고리는 중급부 학생 이상의 여학생이 입기에, 주된 피해자도 그들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집단 등교의 집합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손바닥으로 중년 남성에 얻어맞았던 오사카 사건처럼 초급부 학생도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는 도쿄나 오사카 등 대도시의 조선학교에 피해가 집중됐지만, 이젠 지방도시로도 퍼져가고 있고 남학생들도 피해 대상이 되고 있다.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에 도쿄의 교외 도시에서 일어났던, 조선학교 학생이 저고리를 입지 않았는데도 “난 네가 조선인인 것을 알고 있다”고 협박한 사건은 이런 피해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피해의 원인이 된 가슴 아픈 사례다. 일본학교에 다니는 재일조선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재일조선인 가운데 조선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전체의 10% 정도이므로, 그 이외의 대다수 조선인은 일본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본명을 사용하는 학생은 일부이고, 대다수 학생들은 일본인들 속에서 자기가 조선인인 것을 숨기면서 생활한다. 철저하게 고립된 상황에서 북한을 둘러싼 일본 사회의 소동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의 답답한 일상은,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다.

‘내가 왜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던가’에 관한 기초적인 사실마저도 배울 기회를 빼앗긴 채, 어느 날 갑자기 ‘조센징’으로 몰린다면 그들은 어떻게 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북한을 ‘위협’이라 하지도 않고 오히려 비웃는 일본 언론의 ‘멸시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시선이 언제 자기에게 향하게 될지를 겁내면서 사는 일상. 그런 일상에 갇힌 재일조선인이 ‘조센징’의 운명을 부여받았다는 현실 자체에 원망의 화살을 돌리지 않을까.

"나는 북과 무관” 필사적 결백 신고

이런 현실을 볼 때 지금 재일조선인은 일본에서 일상적으로 ‘사상검문’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눈에 띄기 때문에 조선학교 학생들이 피해를 받는 것이지, 사실은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이런 현실을 살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북’에 관한 보도가 있을 때마다 배척되지 않으려고 “나는 ‘북’하고도 ‘조선’하고도 무관한 ‘한국인’이고 ‘코리안’이고 ‘일본인’이다”라며 사람들은 ‘결백’을 조심히 그러나 필사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는 일본 정부도 가담하고 있다. 핵실험 이후 일본 정부는 북한 선박의 입항 금지, 북한에서의 수입 금지와 함께 “북조선 국적을 가진 사람의 입국 금지, 단지 재일조선인은 재외”라는 제재 조처를 취했다. ‘북조선 국적’이란 모호한 표현을 써서 재일조선인에 ‘북조선 국적’이 존재함을 전제하고 제재 조처를 가한 것이다. 이른바 외국인등록상의 ‘조선적’은 북한의 국적이 아니라고 몇 번 강조해왔던 것은 다름 아닌 일본 정부인데도 말이다.

지금 재일조선인은 흑백논리를 강요하는 일본 사회의 억압적 분위기, 정부의 반인권적 정책, 언론기관의 조소적 보도, 그리고 시민사회의 무지와 둔감에 갇혀 말하자면 ‘일상화된 비상사태’를 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신자유주의 바람에 강화되는 일본의 국가주의, 그리고 사회 깊숙이 침투한 식민주의적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런 사태를 ‘재일조선인 문제’라고 지칭할 것이 아니라 ‘일본 문제’로 거론하며, 남과 북, 해외동포의 공통과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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