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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단, 금식과 폭식의 두 얼굴

등록 2006-11-04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 달간 2교대 근무를 하는 듯한 피곤함과 심각한 명절 증후군을 겪는 무슬림들… 한편에선 음식 소비량과 상품 매출액이 최고로 치솟는 ‘과식과 쇼핑’의 시기이기도

▣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무슬림들이 해마다 금욕과 자기 성찰의 달로 보내는 ‘라마단’이 막을 내렸다. 하지만 라마단의 후폭풍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고등학교 윤리교사인 마으문(32)도 이런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

마으문과 시린의 고단한 하루

마으문은 라마단 기간 동안 아침 7시에 피곤한 눈을 비비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학교로 출근하면서 긴 하루가 시작됐다. 수업 시간에 조는 학생들이 태반이지만 뭐라 할 것이 못 된다. 라마단 기간에는 으레 학습능률이 떨어진다. 이 기간에는 아예 시험도 치르지 않는다. 어차피 학생들이 공부할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마단 기간 동안 학교에는 공식적으로 점심시간이 없다. 한 달 내내 단축 수업이 진행된다. 수업도 낮 12시께면 끝난다. 마으문은 오후 1시30분 귀가해 간단하게 씻고는 바로 낮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오후 5시 안팎에 일어나 세수하고 정신을 차리고, ‘이프타르’(낮 금식 이후에 먹는 식사)를 기다린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사원과 방송에서 일몰 시각을 알리고, 하루 동안의 금식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방송이 들려온다. 그야말로 ‘브레이크 패스트’(break fast·금식을 끝냄)다.

식사를 한 뒤에는 부모님이나 친척, 친구들을 찾는다. 이어 느지막이 집에 돌아와 라마단 특집 방송을 본다. 올해도 예년처럼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담은 드라마가 주를 이뤘다. 위성방송을 통해 미국 영화도 쏟아진다. 그러나 잠을 자는 것이 약이다 싶다. 밤 11시 전후한 시각이면 잠자리에 든다. 하지만 하루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새벽 4시30분께 다시 일어나 금식 시작 전에 마지막으로 먹는 식사 ‘수후르’를 먹고,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다시 잠을 청해 아침 7시 일어난다.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다.

동료 교사인 마으문의 부인 시린(27)의 고단한 하루는 퇴근 즉시 ‘이프타르’ 준비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오후 내내 음식을 장만하고, 저녁식사를 하고, 밤 나들이 다닐 때 동행하고, 세 살배기 아이를 챙기다 보면 하루하루 피곤은 쌓여만 간다. 몸도 찌뿌듯하고 머리도 아프고 온몸이 나른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이른바 이슬람판 ‘명절 증후군’이다. 출근을 해서도 종종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어찌할 수 없다.

전업주부라면 가족이 다 집을 나선 오전 중에 단잠을 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맞벌이 주부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음식 장만할 때 잔손이 가는 일은 남편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음식 장만의 대부분은 시린의 몫이기 때문이다. 라마단 기간에 고부갈등이 심해지고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이유다. 그나마 시린은 친정 쪽 일을 특별하게 거들지 않아도 돼 한숨 돌릴 수 있는 처지다.

처지 따라 소화불량, 긴장성 두통, 불면증…

이슬람권에서 라마단은 그저 종교적 행사가 아니다. 종교활동의 범위를 넘어 일상의 시선으로 라마단을 들여다보면, ‘라마단 증후군’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라마단 한 달은 낮에도 밤에도 분주하게 지내는 기간이다. 공식적인 금식이 진행되는 낮 시간 동안에도 사회 활동이 중단되지 않는다. 낮 시간 동안 사회 활동을 하고 밤 시간 동안 먹고 마시다 보니, 라마단 기간엔 심신이 지쳐 있는 무슬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 달 동안 하루를 쪼개 ‘2교대 근무’를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라마단 증후군은 우리의 ‘명절 증후군’보다 심각하다.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들을 보진 못했지만, 라마단 증후군으로 미뤄 짐작할 만한 사례들은 주변에 널려 있다. ‘용어’는 없어도 ‘현상’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부, 남편, 노부모, 미혼남녀 등 처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른바 ‘라마단 증후군’을 겪는 경우가 허다하다. 음식이 얹힌 것 같다(소화불량), 이유 없이 짜증이 난다, 머리가 아프다(긴장성 두통), 가슴이 답답하다, 불안하다, 팔다리가 쑤시고 아프다, 우울하다, 잠을 이루기 어렵다(불면증)…. 심리적 부담으로 인한 다양한 고통이 표출된다.

이슬람 사회도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 중심의 전통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불평등한 남녀관계에 따른 불만이 커지고, 과다한 일거리로 인한 스트레스, 일가친척들이 모이는 번잡스러움, 비용 부담 등으로 인한 어려움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고 있다. 시린처럼 무슬림 주부들이 라마단 증후군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라마단 한 달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음식 장만을 꼽을 수 있다. 반면 남성들은 주로 선물 장만이나 용돈 주기와 같은 경제적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라마단 기간에 일가친척들이 오면 아이들에게 선물이나 용돈을 주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체면 문화’가 여전한 탓에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으니, 라마단 기간 내내 경제적 부담이 크다.

라마단 기간에 ‘심야 폭식’으로 인한 체중 증가도 스트레스 요인이다. ‘금욕의 달’ 라마단엔 오히려 평균 음식 소비량이 평소보다 30~40% 이상 증가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폭식은 건강에도 안 좋고, 바르지 못한 라마단 수행 태도”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음에도, 낮 동안 굶었던 이들은 밤에 과식을 하기 마련이다.

라마단을 축하하는 풍습도 바뀌고 있다. ‘라마단 카드’는 이제 어엿한 문화상품이 됐다. 인터넷 공간에선 ‘e카드’가 유행한다. 집집마다 상점마다 형형색색의 라마단 장식등 ‘파누스’가 밤이 되면 더욱 축제 분위기를 돋운다. 캐럴만 없다 뿐이지, 기독교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신문과 방송, 각종 전단지마다 라마단 특수를 노린 광고가 넘쳐난다. 라마단 특수는 일 년 매출액의 30~40%를 차지한다. 라마단이 “과식과 쇼핑의 시간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파누스가 돋우는 축제 분위기

이슬람권에서 라마단은 분명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무슬림들에게 라마단은 여전히 중요한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절제하고 엄수해야 할 명절임이 분명하다. 라마단 기간에 이프타르와 수후르 외엔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고 사원에서 기도를 하는 신실한 이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이슬람 사회도 변하고 있다. 라마단은 더 이상 종교의 영역에만 갇혀 있지 않고, 일상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현상’으로 변하고 있다. 현대 이슬람 사회에서 ‘금식월’ 라마단이 가지는 의미는 금식과 폭식, 절제와 과소비의 갈림길 어딘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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