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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9·11은 미국판 히로시마?

등록 2006-09-02 00:00 수정 2020-05-03 04:24

또 슬며시 고개 드는 알카에다의 미 본토 핵무기 공격 시나리오… 이란 핵을 둘러싼 정가 안팎의 논란은 이라크 침공 직전과 비슷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9·11 동시 테러를 막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상상력의 빈곤’ 때문이었다.”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구성한 9·11 진상조사위원회가 2004년 8월21일 해산에 앞서 내놓은 최종 보고서 결론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민간 항공기를 ‘대량살상무기’로 활용했으니, 일반의 상상력으로 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9·11 동시 테러 발생 5주년이 다가오는 지금 미국 정보 당국자들의 ‘상상력’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우크라이나 화장실에서의 해프닝

9·11 동시 테러가 난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미 연방수사국(FBI) 해외정보 담당부서에 소름이 끼칠 만한 정보가 입수됐다. 정체불명의 테러범들이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사이 어딘가를 운행하는 열차 안에 핵무기를 설치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안이 위중해 곧바로 백악관까지 보고가 됐지만, 이 정보는 하룻만에 거짓으로 판명났다. 정보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니 우크라이나의 어느 화장실에서 두 남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정보요원이) 엿들은 것이었다는 게다.

시사주간지 는 8월21일 발행된 최신호에서 이런 내용을 전하며 “이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위중하지만 증거가 빈약한 정보 보고가 올라올 때면 ‘또 우크라이나 화장실에서 나온 얘기 아니냐’는 농담을 하곤 한다”고 보도했다. 9·11 직후 미 정보당국자들이 얼마나 긴장의 나날을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과도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9·11 동시 테러 이후 지난 5년 남짓 동안 미 정보당국은 테러단체가 미 본토로 핵무기를 몰래 들여와 터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9·11 당시의 ‘정보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국가정보국장(DNI) 직을 신설했고, 이른바 ‘본토 방어’ 업무를 전담할 ‘국토안보부’를 신설하기 위해 반세기 만에 정부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9·11 테러 5주년을 맞는 지금 “그래서 얼마나 안전해진 것이냐”는 물음이 끊이지 않는다. 미 군축 문제 전문지 가 최신호(9·10월호)에서 내놓은 ‘핵무기를 동원한 제2의 9·11’의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런 미국 내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 과학·국제관계연구소장은 이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미 정보당국의 여전한 ‘상상력의 빈곤’을 질타했다. 그는 “9·11 동시 테러 5주년을 맞는 최근까지 비슷한 규모의 테러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면서, 9·11 사건을 ‘100년 만의 대홍수’쯤으로 여기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며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마치 2001년 9월11일 화요일 아침 세계무역센터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국제 테러조직이 훨씬 더 끔찍한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터무니없다’고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앨리슨 소장이 경고한 것은 핵무기를 동원한 ‘제2의 9·11 테러’다.

알카에다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오사마 빈라덴은 1998년 12월 미 <abc>과 한 인터뷰에서 “대량살상무기 확보는 종교적 의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9·11 진상조사위는 보고서에서 알카에다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핵무기 확보 또는 제작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지적했다. 빈라덴은 한때 ‘미국판 히로시마’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져왔는데, 미 중앙정보국(CIA)은 2002년 말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알카에다 은거지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초보적인 수준의 핵무기 제작도를 발견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9·11 이전부터 등장했던 논리

사실 핵무기를 동원해 미 본토를 공격하는 시나리오는 9·11 동시 테러 이전부터 심심찮게 등장했다. 9·11 동시 테러 발발 넉 달 전 언론에 유출된 유엔 테러방지분과 비밀 보고서에서도 “냉전 시절 강대국들이 보유했던 고농축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의 일부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할 경우, 초보적인 형태의 핵무기를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국제 테러조직이 130여 개에 이른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을 겨냥한 ‘핵 테러’의 파장은 전세계적인 규모일 것이란 게 앨리슨 소장의 전망이다. 그는 “미 본토에 대한 핵 공격이 발생할 경우, 미 정부는 2차 공격을 막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모든 입구를 즉각 차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는 막대한 양의 상품과 자원의 이동이 차단됨을 의미하며, 결국 전세계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앨리슨 소장은 출간 예정인 미 랜드연구소의 보고서 내용을 따 “캘리포니아주 롱비치 항구에서 핵폭탄이 터질 경우 전세계적으로 3조달러가량의 간접비용이 발생할 것이며, 미국의 모든 항만과 공항이 폐쇄될 경우 세계 교역량의 10%가 감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 테러의 가능성은 높아만 가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지난 5년 동안 나아진 게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반면 군사평론가이자 인터넷판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아킨은 같은 호에 기고한 글에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핵’ 테러”라고 반박했다. 그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단행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했다는 정치적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작 이라크 침공 결정의 근본적인 원인은 핵 확산에 대한 (과도한) 공포에서 비롯됐다는 점은 간과하고 있다”며 “이라크와 이란,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대량살상무기를 손에 넣을 가능성이 높아만 가고 있으며,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을 막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한다는 데는 (9·11 동시 테러 훨씬 이전부터) 미국 내 좌우파가 한결같이 동의했다”고 지적했다.
아킨은 최근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워싱턴 정가 안팎의 논란은 이라크 침공을 앞둔 2003년 초반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라크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증거로 제시됐던 알루미늄 튜브 대신 이란에선 원심분리기를 확보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와 연루돼 있다던 주장은 이란이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과 묘한 대구를 이룬다. 이란의 핵 무장 의도와 능력에 대한 각종 ‘정보’가 떠돌고, 유엔 차원의 사찰이 거론되더니, 국제사회의 개입과 중재 노력이 들먹여지고 있다. 그리고 2003년과 똑같은 표정의 대량살상무기 전문가들이 나와 이란 핵 프로그램 관련 정보의 정확성과 예상 가능한 ‘목표물’, 그리고 미군의 능력에 대한 각종 평가치를 내놓기 시작한다.

“‘핵 공포’ 위협이야말로 진짜 공포”

아킨은 “9·11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분명한 것은 8개 핵 보유국과 2개 핵 보유 시도국이 있음에도 전반적인 핵 테러 위협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라며 “공화·민주 양당이 공히 강조하고 있는 ‘핵 공포’의 위협이야말로 진짜 가공할 만한 공포”라고 강조했다. 9·11 동시 테러 5주년을 맞은 지금 미국은 여전히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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