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사카이 지역 초등학교 ‘O157 집단 식중독 사태’를 계기로 완전 탈바꿈…‘냉동식품 불가, 당일 조리’ 철저히 지켜… 영양사 노력에는 고개가 숙여질 정도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도쿄 구가야마 소학교의 한 달치 급식 식단을 받아든 순간, 이제껏 급식 하면 떠오르던 선입관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된다. 야키소바(볶음면)·돈가스·라멘(라면)·덴푸라(튀김)우동 등 다양한 일식을 비롯해, 소스를 달리한 스파게티, 중국식 만두는 물론 한국식 김치볶음밥도 있다. 또 각종 빵과 샐러드, 과일이 적혀 있는 식단을 보자면 침이 다 고일 정도다.
초등학생 눈높이에 맞춰 빨강친구, 초록친구, 나무친구로 식재료를 구분하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설명도 곁들여놨다. 한마디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구미가 ‘당기는’ 식단이다.
“급식 불만은 들어본 적이 없다”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나카쓰마 마사히코(52) 교사에게 물었다. “혹, 식단만 근사하고 내용물은 영 아니지 않느냐”고, “급식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불만은 없냐”고 말이다. “전혀요. 오히려 내 수업보다 나을걸요?” 교사들의 수업에 대해 이러저러한 요구는 있어도, 급식에 대한 불만은 들어본 적이 없단다. 일본 공립학교 급식의 수준을 알 수 있는 표현으로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있을까?
12시가 되니 아이들은 옹기종기 책상을 맞춰 둘러앉는다. 교실까지 조리실에서 만든 급식 35인분과 쟁반, 식기 등이 실린 ‘와곤’이 배달됐다. 급식당번이 위생가운을 걸치고 배식을 시작하면, 제일 먼저 수고하는 당번 친구들의 식사를 받아 책상 위에 놓아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배식이 끝나자 다 함께 “이타다키마~스”(잘 먹겠습니다)를 외친 뒤 식사 시작. 기본량을 다 먹어야 ‘오카와리’(추가 배식)가 가능하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와 식기 정돈까지 깔끔하다. 이야기꽃을 피우는 점심시간은 재미있는 수업의 연장이자, 공동체 안에서 자기 역할을 몸에 익히는 시간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이해를 돕는 농림수산청의 만화 자료집도 눈길을 끈다.
오키나와에서 홋카이도에 이르기까지, 일본 열도 전국 국·공립학교 급식에서 어김없이 지켜야 하고, 또 지켜지는 원칙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냉동식품 절대 불가’ 원칙이다. 패스트푸드 체인점의 감자튀김 같은 냉동식품, 열만 가하면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은 ‘가능한 한’이 아닌,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둘째 원칙은 ‘당일 조리’다. 전날부터 불리거나 담가두거나 할 수 없고, 당일 쓸 재료분을 정확히 가늠하고 남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영양사와 조리사의 출근시간은 아침 7시. 생야채는 내놓지 않고 살균 데치기 과정을 거치며, 육류튀김은 고기 속 온도가 85도가 돼야 한다. 씹는 맛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안전을 중시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급식 원칙을 철저하게 세운 계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6년 오사카 교외 사카이 지역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집단 식중독 사태’가 발생했다. 무려 9500여 명의 초등학생이 식중독을 일으키고 3명이 숨졌다. 전국을 충격으로 휩싸이게 한 이 사건으로 숨진 학생의 부모가 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학교급식은 학교 교육의 일환이며, 어린이에게는 먹지 않을 자유가 없고, 메뉴 선택이나 조리가 학교 쪽에 일임되어 있는 특징을 생각하면, 고도의 안정성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지금 일본의 학교급식은 ‘고도의 안정성’을 실현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학교급식을 교육의 일환으로서 중시하는 사회·교육적 분위기가 성숙됐다.
학교급식법이 식품위생법보다 상위법
이른바 ‘O157’ 사건으로도 불리는 당시 식중독 사태 이후 만든 ‘위생관리 매뉴얼’은 식중독 사태 이전에는 식중독균에 포함되지 않았던 균까지 규제 대상에 넣었다. 또 당일 조리 원칙으로 남은 재료를 보관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소비 기한을 철저히 지키게 했다. 이 밖에 영양사와 조리사의 건강 상태를 정기검진하고, 조리시설의 위생 상태를 엄격하게 검사해 ‘시설 위생관리 허가’ 때 철저히 반영하도록 했다. 각 학기 시작 전에 학교 조리 관계자를 소집해 위생관리 강습도 실시하게 됐으며, 영양사 배치 기준이나 급식의 원칙을 정한 ‘학교급식법’이 ‘식품위생법’보다 상위법이 됐다.
지자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급식 시스템은 ‘자교 방식’(민간위탁)과 ‘센터 방식’(급식센터)으로 나뉜다. 예를 들어 도쿄는 23개 구 초·중학교 가운데 90% 정도가 자교 방식이다. 전교생 약 420명에 조리사 5명, 영양사 1명이 일반적이다. 민간업체의 파견 조리사 비율이 현 20% 수준에서 더 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으며, 연 3~4회 전체 학생 가정에 통신문을 돌려 급식의 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제동장치’도 두고 있다.
일본 학교급식에서 영양사와 조리 책임자들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체다. 영양사들이 공무원노조에 속해 학교급식 관련 연구단체를 만들어 끊임없이 연구하는 것은 물론, 지역 주민운동과도 연대를 한다. 작은 양이라도 학교가 있는 지역의 농산물, 도심지의 경우 다른 지역의 농산물을 직거래해 생산자가 명확한 농산물을 쓴다. 수확 당시 농산물 견본이 학교에 도착하고 아이들이 수업에 활용하도록 한다. 영양사는 아이들의 학교 식생활과 건강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교사들도 하나같이 학생들을 위한 영양사들의 노력에 ‘고개가 숙여진다’고 말할 정도다.
현재 일본에서 유치원이나 사립학교에 다니는 여유 있는 집안 아이들은 전업주부들이 시간과 정성을 쏟아 솜씨를 부리는 ‘아이노 벤또’(사랑의 도시락)를 먹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통 가정, 그것도 맞벌이 부부 자녀들은 보육원과 공립학교에서 13년 이상 급식을 먹게 된다. 아이들의 건강 책임을 학교가 맡고 있는 것이다. 인스턴트 냉동식품을 조리해 바쁘게 한 끼를 ‘때우게’ 해선 안 되는 ‘사회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학교급식은 ‘평등한 교육권’의 하나로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것이다.
한국에서 최근 벌어진 급식 파동에 대해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예견된 사건’이라고 했다. 급식을 담당하고 있는 영양사들까지도 이를 인정했다. 국물맛은 화학 조미료로, 빛깔은 값싼 커피크림으로 눈속임한다니 할 말을 잃게 된다. 식자재의 이중 장부가 당연하다고 하는 사회, 기성 세대가 아이들의 건강을 담보로 이윤을 ‘맞추기’ 위해 서슴없이 공조하는 일에 대해 이제 그만 따끔하게 손을 봐야 한다. 특히 식중독 문제를 일으킨 급식업체가 우수업체로 선정되는 코미디가 묵인돼선 안 된다.
아이들은 13년 이상 급식을 먹는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10년 전 식중독 사태를 계기로 철저하게 정비된 일본 학교급식의 원칙과 수준은 ‘학교급식 잔혹사’가 계속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더는 미뤄선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의 교훈을 뼈아프게 새겨 우리의 ‘지침’으로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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