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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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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이볜에 치가 떨린다”

등록 2006-07-01 00:00 수정 2020-05-03 04:24

정치·경제적 불만에 가족비리까지 터져 대만 총통 집권 이후 최대 위기… 야당에선 파면안 발의한 뒤 국민투표 기다리지만 생각만큼 쉽진 않을 듯

▣ 타이베이=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얼마 전 미국에서 건너왔다는 화교 왕셩웨이(56·여)는 타이베이 총통부 앞 거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천수이볜을 퇴진시키고 대만을 구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커다란 붉은 피켓을 든 그는 천 총통에 대해 “아주 치가 떨린다”고 했다.

“천수이볜 집권 6년 동안 대만이 얼마나 많은 손해를 입었는지 아는가? 보다시피 중국의 발전과 비교하면 대만은 점점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민진당 집권 이후 천수이볜과 그 일가족의 부패는 대만을 급속도로 침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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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만인들이 들고 일어나 천수이볜의 실정에 저항하기를 바란다. 천수이볜은 당연히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그를 믿지 않는다.”

사위는 내부자 거래, 아내는 옷 로비 사건

대륙에서 사업을 하는 대만인 우씽창(52·남)씨도 천 총통에게 ‘치가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야기 도중 “분노를 느낀다”는 말을 서너 차례 반복했다. “정말 분노를 느낀다. 부정부패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다. 한국도 부패 문제로 총리가 자진 사퇴하고 대통령을 했던 사람도 구속됐는데, 우리라고 그렇게 못하란 법 있느냐. 천수이볜이 집권 이후 한 일이라고는 부패 척결과 독립을 외친 것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독립보다는) 생활을 원한다. 독립은 전쟁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그는 천수이볜의 자진 사퇴만이 대만을 나락에서 건져올릴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천 총통은 지난 6년 동안 대만을 ‘말아먹었다’고 통탄했다.

6월10일 오후 2시, 수도 타이베이의 총통부 앞에선 “천수이볜 물러나라”는 구호가 적힌 형형색색의 깃발들이 물결을 이루었다. 대만 야당 친민당이 연 이날 집회에는 약 4만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천 총통 퇴진을 촉구했다. 특히 쑹추위 친민당 주석과 마잉주 국민당 주석이 연단에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사뭇 고조됐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는 마 주석은 특유의 부드러운 이미지에 걸맞게 시종일관 ‘합법적인’ 파면 절차를 강조했다.

“이번 천수이볜 파면안은 단지 비리 사건 한 가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6년 동안이나 터질 듯한 불만을 참고 지냈다. 지금 50% 이상의 대만 민중이 천수이볜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민중이 원한다면 법적 절차를 거쳐 그를 파면시킬 수 있다. 우리는 그에게 법적 책임뿐만 아니라 정치적 책임도 물어야 한다!”

반면 야당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천 총통 사퇴를 주장하는 친민당 주석 쑹추위는 “무능한 정부는 대만 민중에게 고통을 주고 있으며, 천수이볜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대만은 영원히 침몰하고 말 것”이라며 천 총통의 ‘무조건 사퇴’를 촉구했다. 집회가 열린 이날 현지 언론들은 하루 종일 집회 상황을 속보로 내보내는 한편, 천 총통 퇴진을 둘러싼 야당과 시민들의 동향을 시시각각 전했으며, 집회가 끝난 뒤에도 타이베이의 지하철역과 총통부 주변에선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천수이볜 대만 총통이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측근과 가족 비리가 줄줄이 터지면서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다. 천 총통이 파면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은 사위와 부인의 비리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천수이볜의 사위는 얼마 전 기업 내부자 거래를 통한 주식투자로 거액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구속됐고, 부인은 거액의 백화점 상품권을 선물로 받아 대만판 ‘옷 로비 사건’ 파문을 낳았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총통부 부비서실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물러나는 등 잇따른 측근 비리가 불거져나오면서 천 총통을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

야당과 국민의 거대한 사퇴 압력에 직면한 천수이볜은 지난 5월30일 밤, 내각 지명권을 포함한 일부 권력을 쑤전창 행정원장에게 넘기겠다며 전격적인 ‘권력 하방’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독립이 밥 먹여주는가?

“대만 국민들이 천수이볜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단지 그 일가족의 비리 문제가 터져서만은 아니다. 지난 2000년 총통 선거에서 나도 천수이볜을 찍었고 대만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지난 50년 동안 국민당 일당 독재나 마찬가지였던 정치 체제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 새로운 대만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그의 집권 6년 동안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도산하고 노동자들이 실직했으며,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 대륙으로 돈을 싸들고 떠났다. 지금 대만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갈 곳 없는 서민들뿐이다. 천수이볜은 내내 대만 독립을 외쳤지만, 독립이 밥 먹여주는가! 그리고 혼자서 깨끗한 척 다 하더니, 봐라. 사위에 부인에 온 가족이 비리를 저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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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위쩌우화는 2008년 총통 선거에서는 절대로 천수이볜의 민진당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음에는 국민당의 마잉주를 찍을 겁니다.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겠소? 그러려면 어쨌든 대륙하고 관계가 좋아야 하는데, 민진당은 양안 관계 개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지금 천수이볜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집권 6년 동안 대만 경제와 정치가 후퇴했다는 비판을 사방에서 받고 있다. 더군다나 지나치게 강경한 독립 노선과 엄격한 대륙투자 심사 등으로 인해 대륙과의 정치·경제 관계가 나빠지면서 대만 경제를 최악으로 만들었다는 원성을 사고 있다. 최근 터진 가족 비리는 이런 불만 정서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대만 국립정치대학 리통하오 교수는 “천수이볜 정권은 밖으로는 대만 독립을 제1구호로 내세우면서 대만을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켰고, 안으로는 관료 부패에 곪아서 스스로 무너져갔다”며 “이는 대만 정치의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천 총통이 이번에 파면되지 않더라도, 2008년 선거에선 반드시 국민들에게 버림을 받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야당인 국민당과 친민당은 지난 13일 입법원에 천 총통 파면안을 공식 발의했다. 파면안이 입법원 제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되면, 바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천 총통은 바로 ‘파면’된다. 현재 국민당과 친민당은 여당인 민진당 내부의 반란표를 끌어오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천 총통의 파면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도 그리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총통 퇴진 찬성 40%의 딜레마

대만 유력지인 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약 40%의 국민이 천 총통의 퇴진에 찬성하고 있다. 46%는 천 총통이 하야할 경우, 부통령인 뤼슈롄이 총통직을 계승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는 당초 총통 일가의 비리가 터져나왔을 때 천 총통의 즉각 퇴진 의견이 약 70%에 이르렀던 데서 무려 30%나 낮아진 것이다. 천 총통이 ‘시간이 약’이라는 판단 아래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리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천 총통은 15일 스스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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