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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승리, 취소 가능?

등록 2006-06-14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 ‘국민투표 제안’등으로 교묘하게 신생 정부를 코너에 몰아넣는 파타… 연정실패·유혈사태 책임도 덮어씌우려 하지만 민심은 아직 변치않아</font>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이하 해방기구) 최대 정파인 파타는 지난 1월 하마스가 자치의회 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었음에도 ‘패배’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4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 이후 줄곧 스스로를 자치정부라고 여겨온 파타이고 보면, 기껏해야 이슬람 사원을 중심으로 구호활동이나 벌이던 하마스에 정권을 넘겨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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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정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지브릴 라주브가 하마스의 총선 승리를 두고 “취소 가능한 정치적 우발 사건”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인식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 하마스 정부를 겨냥한 ‘파타의 역습’은 어쩌면 처음부터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인정 여부, 다 알면서…

마무드 아바스 자치정부 수반이 이끌고 있는 파타가 하마스 정부를 상대로 본격적인 권력투쟁에 나섰다. 아바스 수반이 직접 나서 자신이 내놓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계획에 각 정파(특히 하마스)가 동의하지 않으면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바스 수반이 제안한 독립국가 건설 계획은 ‘양심수 문서’로 불린다.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된 팔레스타인 각 정파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이 문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계획이다. 문서는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해온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독립국가를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에는 유엔 결의안 194호에 따라 흩어진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과 이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 마련도 포함된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평화협상안은 그동안 여러 차례 제출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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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문제다. 문서는 이스라엘을 겨냥한 공격을 1967년 이후 점령한 땅에 국한해서 벌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1967년 이전에 이스라엘이 점유하고 있는 땅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겠다는 말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건국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함을 뜻한다. 하마스가 조직강령으로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음을 잘 아는 아바스 수반이 이런 ‘최후 통첩식’ 제안을 내놓은 이유는 뭘까? 중동 문제 전문지 이 지난 4월19일 온라인판으로 내놓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파타’란 제목의 보고서는 지금의 팔레스타인 상황을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길라잡이가 된다.

보고서는 ‘야당’으로 내몰린 파타 지도부와 아바스 수반은 선거 직후 집중적인 논의를 거쳐 두 가지 전략적 목표를 도출해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4년 임기가 보장되는 (하마스 주도의) 자치정부 수명을 단축시켜 조기 총선을 실시하고, 그 선거에서 파타가 확실한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파타 처지에선 선거를 다시 치르는 시점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보고서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때를 같이해 미국과 유럽연합도 압박

“파타 지도부는 하마스 주도로 자치정부가 구성될 경우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곧 현실화했다. 아바스 수반이 신생 하마스 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모양새는 여론의 비난을 살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파타 내부에서 나왔다. 이에 따라 파타 지도부는 하마스가 제안한 연립정부 구성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대신, 연정 구성을 위한 협상에는 응하되 실제 연정에는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연정 협상에서 파타는 하마스 정부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해방기구의 기존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협상을 난항에 빠뜨리는 한편, 다른 정파도 하마스 주도의 연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결국 연정 협상은 파타의 뜻대로 결렬됐고 하마스는 다른 정파의 참여 없이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다. 연정 구성 실패의 책임은 하마스에 들씌워졌고, 임박한 ‘위기’의 책임 역시 하마스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선거 승리 2개월여 만인 지난 3월 하마스가 자기 단체 지도부와 일부 관료로 이뤄진 단독정부 구성안을 발표하자, 아바스 수반이 의장인 해방기구 집행위원회는 이를 즉각 비난하고 나섰다.

이 무렵 서방 언론에선 이름을 밝히지 않은 파타당 소식통의 말을 딴 보도가 잇따랐다. 해방기구는 정부를 해산할 권한이 있지만, 화해를 모색하기 위해 이런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는 마타도어가 판을 쳤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의 헌법 격인 자치정부 기본법은 내각해산권을 자치의회에만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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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같이해 미국과 캐나다, 이스라엘과 유럽연합이 압박을 가해왔다. 하마스 정부에 “테러와 연을 끊고, 이스라엘을 인정하라”고 요구하며 파탄 지경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지탱시켜온 외부 원조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는 곧장 16만5천여 공무원에게 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지면서 신생 정부를 위기로 몰아갔다. 이어 지난 5월 가자지구 치안권 확보를 위해 나선 하마스와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파타 간의 총격전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이에 대한 책임 역시 하마스가 온통 뒤집어썼다.

아바스 수반이 꺼내든 ‘국민투표 카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것도 이런 상황 탓이다. 아랍 권위지 주간 은 최신호에서 “팔레스타인 기본법에 따라 자치정부 수반이 자치의회와 협의나 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국민투표 실시를 결정할 수 있는지 여부는 법적으로 논란이 많다”며 “특히 총선 뒤 불과 넉 달여 만에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진짜 의도는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투표 카드’는 무엇을 노리는가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게 우리에게 뭘 가져다줄 수 있나? 지난 10여 년 동안 ‘평화협상’을 벌여왔지만 얻은 게 도대체 뭔가? 평화협상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제도화했을 뿐이다.” 아바스 수반의 ‘국민투표’ 발언이 나온 뒤 는 가자지구 농부 사이드 아부 살라(40)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용인해줄 리는 없다. 팔레스타인 유권자 100%가 국민투표에서 이스라엘을 인정하는 데 찬성한다 해도 어림없는 일이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인정한 뒤라면 나도 기꺼이 국민투표에서 이스라엘을 인정해주겠다.” 지난 1월 집권 이후 줄곧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해온 하마스에 여전한 지지를 보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심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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