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상에 이런 법이_미국2] 원칙이 없는 게 원칙

등록 2006-01-05 00:00 수정 2020-05-03 04:24

▣ 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미국 각 주의 법은 서로 너무나도 달라 우리가 생각하는 ‘한 나라’라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을 지난 주에 이야기했다. 이에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A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사람이 다른 주로 건너갈 경우 주 경계를 넘음과 동시에 그의 변호사 자격이 상실된다. 즉, B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것은 위법이 된다. 만약 B주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그 주가 시행하는 변호사 시험에 응시하든가 아니면 별도의 심사에 따라 자격을 얻어야만 한다. 각 주가 변호사 제도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어 동일한 과목을 평가하더라도 그 내용이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법원 시스템도 다르다. 미국에는 미국의 중요 국가이익 등을 대상으로 한 연방지법, 연방고법, 연방대법의 3심제가 있다. 각 주도 이와 비슷한 3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A주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등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들 명칭이 서로 다르거나 A주 고등법원 명칭이 B주에서는 대법원 명칭으로 사용되는 등 복잡하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기 쉬운 한 가지가 있다. 한국의 매스컴에서 흔히 “미국의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때 말하는 대법원이란 정확히 어느 곳을 의미하는지 불명확할 때가 많다.
그러면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어떤 경찰조직에 신고해야 할까?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미국 일반인들의 삶에는 연방수사국(FBI), 즉 연방 관할권인 삶과 주 경찰 관할권인 삶, 그 이하 시군구 등의 자치단체 경찰 관할권인 삶이 있다.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미국 국익이나 연방법 관련 사안, 두 개 이상의 복수 주 사이에 걸친 사안(diversity)이 아닌 이상 FBI와 관련된 삶은 보통 미국인의 일상생활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주 경찰 또한 고속도로에서의 속도위반 등 몇 가지 사안을 제외하고는 접하는 경우가 드물다. 결국 우리의 경찰과 같은 역할은 하는 미국 경찰은 시나 군, 구의 경찰들이다. 그렇다면 여러 주 사이에 걸친 사안이 발생하게 된다면? 이때는 FBI도, 또 사건과 관련된 각 주들도 관할권을 가지게 되므로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이와 같이 미국의 법 체계와 그에 관련된 일상생활은 복잡하다. 오죽하면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 펠트 교수도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판단기준은 “합리적 사고력을 지닌 사람들의 합리적 관점”(Reasonable Person’s Perspective)이라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모호한 대전제를 바탕으로 인식할까. 미국은 그야말로 원칙이 없는 것이 원칙인 사회다. (다음호에 계속)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