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과학과 윤리_인도]
<font color="darkblue">98년 핵실험 이후 영웅 추앙받는 인도 핵 물리학자들을 다시 생각한다
중립적 연구란 거짓, 대량살상무기 제작에 도움 줬다면 결과에 책임져야</font>
▣ 델리=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타임스 오브 인디아> 전 편집장·핵문제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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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이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애국심”이라는 격언이 딱 들어맞는 곳은 핵무기를 개발한 과학자에 대해 말할 때다. 알다시피 핵무기는 지구에 살아 있는 모든 생물체를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무기다. 세계가 파국 직전의 위기에 놓인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한 역할은 결코 작은 게 아니다. 냉전이 끝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세계에는 여전히 3만6천 개의 핵무기가 있다. 그것의 위력은 지구를 40번이나 파괴하고도 남을 만큼 끔찍하다.
핵무기가 핵무기를 억제한다?
폭탄을 만드는 과학자들은 작은 이해를 위해 나쁜 짓을 저지르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다. 그들은 비전투 요원인 민간인들에 대한 대규모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덕적 악마’들이다. 그렇지만 1998년 5월 핵실험 이후 인도의 핵과학자들은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들은 맹목적인 국수주의적 환희 속에서 ‘위대한 애국자’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 애국주의의 소음 속에서 도덕과 윤리는 사장되고 말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도의 핵무기를 ‘평화의 무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는 석가모니에서 간디에 이르는 평화의 전통을 이어온 나라에 매우 치욕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나치 이후에 정립된 ‘과학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세계적인 공감대에 비춰봐도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핵무기는 그것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 탓에 독특한 무기로 자리매김했다. 인류가 발명한 무서운 무기 중에도 핵무기만 한 것은 없다. 화학무기나 생물학 무기가 몇백, 때로는 몇천 명을 죽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원자탄 한 방이면 수백만 명의 목숨이 날아갈 수 있다. 수소폭탄 하나면 대도시 하나를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럼 무엇이 그런 끔찍한 무기의 생산과 사용(또는 사용하겠다는 위협)을 정당화할까? 상대 역시 우리 도시 절반을 핵으로 보복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이 군사적으로 합리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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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핵무기 사용을 지지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매우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핵무기가 다른 핵무기의 사용을 억제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핵이 강한 적국의 위협을 막고, 국가 주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라크에 핵이 있었다면 미국이 공격할 수 있었을까 하고 질문하는 식이다.
이러한 잘못된 주장 밑에 깔려 있는 것이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다. 이들은 민족 또는 국가가 윤리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인도 과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따르고 있다. 더 나쁜 것은 핵무기를 통해 인도가 국력을 키우고 다른 나라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태도다.
이는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민족주의자들은, 첫째 민족이 공통의 이해를 갖는 균일한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민족은 매우 이질적인 실체다. 민족주의라는 개념은 국내의 불만을 제압하거나, 민족의 이해라는 이름 아래 비민주적인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데 쓰일 수 있다. 그것은 결국 지배자의 이익일 뿐이다.
두 번째로,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잘못된 상상일 수도, 상상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민족국가는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겨우 몇백 년의 역사를 가졌고, 역사의 동력에 의해 진화됐을 뿐이다. 그것은 역사나 도덕이나 윤리보다 앞설 수 없다.
핵무기를 개발하는 과학자들은 핵이 국가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혹은 그들은 중립적인 연구를 할 뿐이며, 과학자가 도덕적인 판단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런 주장은 거짓이다. 대량살상무기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은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도덕적이고 법적인 순리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은 불법적이거나 인권에 어긋나는 명령을 받았을 때 저항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친다. 상급자는 당신에게 가스실을 만들어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할 수 없다.
국익? 진짜 동기는 사익!
핵무기는 반드시 방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방어를 위한 무기가 아니라 상대를 절멸시키기 위한 무기다. 핵무기 옹호론자들은 안전에 대한 환상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핵은 상대와 당신 모두의 안전을 위협한다. 핵 억제이론은 안전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도출하려 한다. 당신은 적에게 반드시 두려움을 줘야 한다. 그들의 논리는 “만약 당신이 나에게 핵을 사용하면, 나도 당신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다. 따라서 당신은 핵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상호확증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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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란 철저히 비현실적인 가정에 기반한다. 이론틀 속에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핵정책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고, 내가 공격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보복을 정확히 이해한다. 사람들은 매우 호된 위기 속에서도 매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전술적인 오산이나 사고는 없다.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대부분이 불확실하고, 사고와 비합리적인 반응들이 있기 마련이다. 억제는 종종 무너질 수 있다. 그것에 의존하다가는 파국에 치달을 수 있다.
어떤 주장도 핵무기의 개발을 정당화할 수 없다. 과학자들은 기껏해야 불완전한 변명만 만들어내고는, 국익이라는 정직하지 않은 생각 뒤에 숨을 뿐이다. 그들의 실제 동기는 사익이다. 정부는 핵과학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한다. 그들은 파키스탄의 A. Q. 칸처럼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른다. 그와 마찬가지로 1974년의 핵실험을 가능하게 만든 인도 핵 프로그램을 만든 호미 바바와 라자 라만나, P. K. 이엔가 등의 물리학자들도 위대한 과학자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핵은 과학적인 성취가 아니다. 핵과학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완성됐고, 그 처리 과정도 간단한 편이다. 그러나 1998년 5월 실험이 끝나고 라만나는 거만한 태도로 과학기술 수준이 낮은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비밀리에 예측했다. 그러나 한 달 뒤에 파키스탄은 6개의 핵폭탄을 터트리는 데 성공했다.
라만나가 모든 인도 과학자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는 핵 개발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98년에 만들어진 ‘핵개발에 반대하는 물리학자들’과 ‘핵무기에 반대하는 생물학자들’의 모임이다. 핵에 반대하는 전통은 바바와 동시대 사람으로 그보다 더 뛰어난 과학자였던 메그나드 사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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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만드느니 차라리 죽겠다”
1957년 인도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C. V. 라만은 “핵폭탄을 만드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고 말했다. 많은 인도 과학자들이 핵무기에 반대해 투쟁해왔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70%가 넘는 인도인들이 핵무장 해제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전통은 1980년과 1990년대까지 이어진 국수적 애국주의를 주장하는 힌두교 정권에 의해 크게 약화됐다. 정권을 잡았던 인도국민당(Bharatiya Janata Party)은 수많은 보조금과 특례를 통해 군사력과 관련 있는 과학들을 우대해왔다.
이 모든 것과 맞서 싸우려면 결국 도덕이 필요하다. 만모한 싱 정부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세계적인 움직임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면, 과학자의 양심은 그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니면 비도덕적인 핵 민족주의에 굴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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