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도로가 안 좋기로 유명한 러시아에서 교통사고가 유난히 잦은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자동차 보험제도가 발달됐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러시아에 의무적인 자동차 책임보험제도가 도입된 것은 만 2년 전이다.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연합(CIS)권 국가만 하더라도 비록 상징적인 의미가 강하긴 했지만 지난 2000년에 본격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동차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성급한 책임보험의무제 도입은 많은 부작용을 유발했고 그 결과 시민들이 보험제도 전반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됐다. 지난 7월 책임보험의무제 시행 2주년을 맞아 ‘전러시아여론조사센터’가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66%가 책임보험은 별 효용이 없거나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특히 한번쯤 교통사고를 겪었던 응답자들의 46%가 보험사의 서비스에 불만족을 표시했다. 그와 함께 지난 상반기 ‘아베스트’ 등 5대 중견 보험사의 영업인가가 취소되고 이 회사들과 보험계약을 맺은 고객들의 보험증이 휴짓조각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발생해 보험계를 긴장시켰다. 책임보험의무제 법안에는 보험사의 파산이나 도산시 ‘러시아자동차보험협회’ 기금에서 소비자 보호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영업인가 정지에 관한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임보험에 대해 별반 효용을 느끼지 못하는 데는 보상금 받는 절차가 까다롭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중도에서 보상금 받기를 포기하거나 사고가 나더라도 예전과 같이 당사자끼리 대충 합의해 현장에서 해결한다. 사고현장에 합류한 교통경찰도 서류작성 등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대개는 당사자간 해결을 유도한다. 결국 가입자들 중 다수는 보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한 보험회사는 “인고스트라흐는 항상 지불합니다”라고 광고한다.
러시아가 다른 CIS권 국가들보다 훨씬 늦게 책임보험제를 의무화하게 된 것도 결국 시민들의 보험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보험사들간 자체 통계를 평균해보면 10월 현재 차량 보유자의 85% 정도가 책임보험에 가입돼 있지만 대부분 자발적 보험 가입자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보험에 가입한 이들이다. 자발적 보험가입률이 현저히 저조하자 러시아 교통당국은 2003년 하반기 6개월 동안을 계도기간으로 선정하고 2004년 2월1일부터는 본격적인 강제단속에 나섰다. 무보험 차량에 대해선 차량 종류에 따라 1년 보험료의 40%에 해당하는 500~800루블(20~3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단속 초기 차량 상태가 나쁜, 소득 수준이 중하층인 이들의 러시아산 차량이 주요 타깃이 됐다. 이들 대부분은 속칭 ‘나라시’라고 부르는 개인택시 영업으로 그날그날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하루 평균 1천루블 정도의 수입을 올리면 그중 대부분을 경찰에 ‘상납’한다.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로 그렇지 않아도 부수입이 짭짤한 경찰들의 배만 잔뜩 불리게 됐다”는 불평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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