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과 메뚜기떼의 내습이 부른 최악 기근으로 어린이 15만명 아사위기
G8 정상회담의 번지르르한 약속과 록음악 성찬 속에 아프리카는 흐느낀다
▣ 헨트=양철준 전문위원 yang.chuljoon@wanadoo.fr
지정학적 중요성도 별로 없고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니제르가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한번의 요란한 예외가 있었다. 이라크와 니제르의 우라늄 거래 의혹이 불거졌을 때다. 당시 이라크 침공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골몰하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사담 후세인 정권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실제적인 조치를 취했음을 입증하려고 했다. 부시 행정부의 의혹 제기에 영국 정부가 부화뇌동하면서 이라크와 니제르의 우라늄 거래는 의혹에서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탄자 대통령 “야당 세력의 거짓 선전”
그러나 니제르 정부가 이러한 의혹을 즉각 부인했다. 또한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구체적인 물증을 제시하는 데 실패함으로써 니제르는 전쟁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지닌 세력의 희생양이었음이 자명해졌다. 물론 이러한 의혹이 제기된 이유는 니제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우라늄의 주요 생산국이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1년에는 연간 생산량이 4366t에 이를 정도였다.
다시 니제르가 뉴스의 중심에 복귀했다. 의혹이 아닌 실제로 직면한 위기와 함께. 1200만 니제르 인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360만명이 식량 부족으로 심각한 영양실조와 기아에 직면해 있다. 특히 5살 이하 어린이 80만명이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구호식량이 조속히 배급되지 않을 경우 이들 중 15만명이 아사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아 위기는 농경민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풀라니족과 투아레그족 등 목축민들의 생계도 위협하고 있다. 이미 100만두 이상의 가축들이 아사 위기에 처해 있고 가축들이 사료나 목초가 없어 계속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가축에 의존하는 목축민들의 생계도 덩달아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료와 목초를 구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가축들을 대거 투매하기 때문에 당연히 가축 시세는 급락하고 주요 곡물 가격은 급등하는 현상이 초래됐다. 두당 300달러를 호가하던 소 시세가 10달러까지 폭락한 반면 니제르인들이 주식으로 삼는 곡물 가격은 폭등해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옥스팸 등 일부 구호단체는 목축민들이 내다파는 가축들이 공정한 가격에 거래되어 식량 구입이 가능해지도록 60~80달러의 가격에 소를 대량 수매하는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현지 상황에 맞는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구호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1만 가구 이상의 목축민들이 가축을 잃고 도시로 몰려들어 일자리를 구하거나 식량배급에 의존하는 등 삶이 급속도로 붕괴되고 있다. 탄자 대통령은 “기아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으며 니제르의 기아는 사하라 남서부 사헬 지역의 기아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이 문제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야당세력이 퍼뜨리는 “거짓 선전”이라고 폄훼했다. 하지만 집권세력의 상황인식과는 달리 니제르의 식량부족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누군가는 사하라 사막의 ‘마른 쓰나미’라고 부를 정도다.
니제르는 1973년과 1983년에도 가뭄으로 인한 기아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 현재의 상황은 두 차례의 기아를 합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이 초래된 직접적 원인은 가뭄과 메뚜기떼의 내습이다. 특히 지난해 11월에는 15년 만에 최악의 메뚜기떼 내습이 있었다. 지난해 메뚜기떼가 사헬 지역에 내습하자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메뚜기 방제작업을 할 목적으로 원조 공여국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목표액이 모자라 효과적인 방제작업이 실시되지 못했다. 이것이 지금 기아 위기의 발단이었다.
메뚜기떼의 내습으로 인해 식량 사정이 크게 악화되리라는 것은 쉽사리 예상할 수 있었다. 따라서 FAO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유엔의 관련 기관과 구호활동을 벌이는 비정부기구(NGO)들은 지난해 11월 기아 위기를 경고했다. 올 5월에도 국제사회에 긴급원조를 요청했으나 무관심과 미온적인 반응만이 돌아왔다. 니제르의 상황이 절박한 국면으로 치닫자 유엔은 지난 8월4일 8100만달러의 긴급원조를 요청했다. 이는 두달 전 식량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요청한 금액의 5배에 달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것이다. 국제사회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대처했더라면 심각한 기아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유엔의 뒤늦은 긴급원조 요청
피골이 상접한 어린이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등장해야만 비로소 반응을 보이는 국제사회가 다시금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정치적 의지와 이에 따른 지원만 제대로 이행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문제에 전략적 이해관계가 따르지 않으면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선진국들의 위선적인 행태도 다시 한번 본색을 드러냈다.
지난해 12월 인도양에 면한 아시아 국가들에 쓰나미가 할퀴고 지나가자 전례 없이 신속하고도 광범위한 구호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해관계가 있는 부국들은 쓰나미 피해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원과 구호작업에 나섰다. 니제르의 기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늑장 대처와는 극명하게 대비되기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인들은 차별적 재난구호가 대세처럼 자리잡는 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서방 선진국 정상들은 아프리카의 최빈국들에 대한 부채 탕감을 약속했고 아프리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보브 겔도프와 보노 등 유명 록스타들은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대규모 콘서트를 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를 위한 말과 록음악의 성찬이 계속되는 가운데 니제르에서는 어린이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WFP의 소극적인 대처 방식과 부국들의 무관심에 비판을 가하면서 베르나르 쿠슈너는 니제르와 사헬 지역 국가들의 기아 위기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말보다 행동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국경없는 의사회(MSF)의 창시자고 프랑스의 보건부 장관을 역임한 그의 촉구와 비판은 니제르의 상황에 대한 통렬한 현실감이 반영돼 있다. 한편 WFP는 8일부터 니제르 남부 지역에 식량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 | ||||
![]() | 사헬의 만성적 재난 |
지리적으로 사헬 지역은 아프리카 대륙 북부의 사하라 사막과 사바나 지대 사이에 위치한 반건조 지역을 가리킨다. 연간 평균강우량이 250~500mm에 불과한 건조한 지역이다. 모리타니,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이 사헬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1960년대 후반부터 가뭄과 기근으로 시달려왔다. 더구나 만성적인 물 부족에다 사하라 사막의 남진으로 사막화가 진행됨에 따라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니제르의 경우 면적이 한반도의 5.8배에 달하지만 용수가 부족해 국토의 3%만이 경작 가능한 땅이다. 또 거의 해마다 통과의례처럼 메뚜기떼가 농작물들을 쑥밭으로 만들어서 식량 위기를 증폭시킨다. 1980년대 중반과 90년대 초반에도 가뭄으로 인한 기근에 직면한 바 있다. 비록 지금은 니제르가 가장 심각한 기아 위기에 봉착해 있지만 모리타니, 말리, 수단 남부 지역도 언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니제르와 마찬가지로 말리에서도 2004년 10월 북부 지역에서 가뭄과 메뚜기떼의 내습으로 농작물이 크게 피해를 입어 식량 부족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 니제르의 기아는 단발성 재난이 아니라 사헬 지역의 만성적 문제로 대두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헌재, 5 대 3 선고 못 하는 이유…‘이진숙 판례’에 적시
[단독] 이진숙 ‘4억 예금’ 재산신고 또 누락…“도덕성 문제”
오세훈 부인 강의실 들어갔다가 기소…‘더탐사’ 전 대표 무죄 확정
“마은혁 불임명 직무유기”…비상행동, 한덕수 공수처 고발
세상의 적대에도 우아한 68살 배우 “트랜스젠더인 내가 좋다”
‘65살’ 노인 연령 기준, 44년 만에 손보나…논의 본격화
다이소 고속성장의 이면…납품업체들 “남는 건 인건비뿐”
“8대 0으로 파면하라!”…시민들, 헌재 향한 ‘집중 투쟁’ 돌입
‘용산’ 출신, 대통령기록관장 지원…야당 “내란 은폐 시도”
[사설] 헌재 ‘윤석열 파면’ 지연이 환율·신용위험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