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종교혁명이 타락한 권력으로 변한 이란을 가다…변화를 갈망하지만 미국의 개입은 단호히 거부</font>
▣ 바그다드=글·사진 한상진/ 평화교육센터 hansangj@hotmail.com
이란의 택시 운전기사는 안전벨트를 맨다. 다른 아랍권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국경택시에서도 보지 못하던 모습이다. 이란의 거리는 잘 정돈돼 있었고, 국경 검문소의 사람들도 친절했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선 첫 번째 검문소에서 택시에 동승했던 한 이란 친구는 “우리나라 경찰은 짐승이야. 조금 있으면 그걸 보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에 합승한 두명의 이란 친구가 취조에 가까운 검문을 받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필자는 단 1분 만에 검문을 끝냈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정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한 이란 친구는 “거리에 정부의 밀정이 넘쳐난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호메이니는 미치광이가 아니다
이들의 정부 비판을 들을 때면 오히려 이방인이 움찔해져 주위의 눈치를 살필 정도로 그들은 거침이 없다. 나중에 느낀 바로는 이란 정부는 정치적 반역 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즉, 불만을 말로 푸는 것은 놔두지만 정부 전복을 기도하는 것 등은 봐주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얼마 전 테헤란대학 학생들이 봉기했다가 많은 학생들이 죽었다. 이때 학생들을 학살하는 장면은 누군가 몰래 찍어 CD로 제작해 널리 배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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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에게 “당신들은 이미 혁명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왜 또다시 혁명을 기도하지 않는가?”라고 묻자, 정부 비판에는 거침이 없던 그 친구는 대단히 조심스러워했다. “우리는 이제 지쳤다. 혁명을 통해 세운 정부가 이 모양이다. 도대체 우리가 누굴 믿고 또다시 봉기를 할 수 있겠는가.” 지지난해 말 지진이 났던 ‘밤’시를 방문했을 때, 주민 가운데 한 사람에게 “당신 정부로부터 도움이나 지원을 받은 게 있는가”라고 물었다. “(정부가) 약속은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테헤란에 돌아왔을 때 마침 한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오자 대사관 관계자에게 “밤시의 지진 피해 복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을 봤다. 한국 정부가 이란 지진 피해자를 도울 계획이 있는가”라고 물었더니 “한국 정부는 이미 400만달러를 이란 정부에 지원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현지 피해자들에게는 구호금이 거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더니 그는 그냥 피식 웃어버렸다. 그는 “그래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밤시에 내려가 직접 시범사업 형태로 집을 몇채 지어주고 얼마 전에 완공식을 했다”고 말했다. 이른바 배달사고가 난 셈이다.
호메이니의 혁명을 계승했다는 현 정부가 이토록 타락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호메이니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지지를 표시한다. 호메이니는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여전히 존경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걸까. 필자는 인터넷을 뒤지고 이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호메이니의 실체를 알게 됐다. 호메이니는 한국에 알려진 것처럼 종교적 미치광이가 아닌 진정한 이슬람 혁명을 꿈꾸었던 혁명가에 가까워 보인다. 물론 종교 혁명을 꿈꿨기에 다른 정치 혁명과는 다른 면이 있다. 그러나 과연 호메이니가 생각했던 예언자 모하메드의 가르침이 완전히 구현된 사회와 기독교인들이 꿈꾸는 천년 왕국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왜 한국 사회에서는 천년 왕국을 꿈꾸는 기독교인들에게는 관대하면서 호메이니는 미치광이 취급을 하는 걸까. 또 시아파 이슬람의 대표성을 지닌 이란과 로마 가톨릭의 대표성을 갖는 바티칸 정부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왜 바티칸은 평화의 사도 취급을 받는데, 이란은 악의 축일까.
변화의 바람은 솔솔 불어온다
서구 사회, 아니 정확하게는 미국의 시각을 통해 걸러진 호메이니의 진정한 모습은 한국 언론을 통해 다시 한 차례 걸러지면서 꽤나 왜곡돼 있는 것 같다. 우연히 호메이니와 함께 혁명에 참여했다는 헤즈볼라를 자처하는 친구를 만났다. 주위 사람들은 그를 신앙심이 깊은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인 ‘하지’라고 불렀다. 그는 호메이니는 진정한 헤즈볼라(‘신의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호메이니를 계승한 현 정부를 왜 그렇게 사람들이 싫어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는 “현 정부의 사람들이 자신을 헤즈볼라라고 하지만, 그들은 헤즈볼라가 아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일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다시 “그럼 호메이니 같은 선지자가 왜 이런 형편없는 거짓말쟁이들을 후계자로 삼았는가”라고 짓궂게 질문을 계속 던지자 그는 곤혹스러워했다. “아마도 호메이니도 늙으면서 판단력이 흐려져 그들의 거짓말을 간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호메이니는 그들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호메이니는 죽기 전에 종교 지도자들에게 집중돼 있던 권력을 정치 지도자인 대통령에게 분산하는 조처를 취했다. 임명된 종교 지도자와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치 지도자가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도 선거를 통해 당선된 정치 지도자마저 부패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이란의 한 신문사의 국제부장은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이 지역은 너희 나라나 서구 사회와는 다르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신으로부터 위탁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들은 권력을 신으로부터 위탁받았다고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불평을 하면서도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 권력자들이 원하는 것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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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런 완고한 신정국가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서서히 불고 있었다. 바람은 젊은이들이 몰고 왔다. 10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던 장면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제는 연인들이 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었고, 국민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표출한다. 누군가의 지적처럼 거리의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이 정부의 밀정이라면, 이들마저도 현 정부를 비판하는 데 동참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개입하기 전에 자신의 손으로 정부를 교체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미국의 개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 탓인지 미국은 이라크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찾아다니면서도 이들 앞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현 상황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미국이 나서서라도 현 정부를 바꿔주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간혹 만나게 된다. 그러나 정말 이란이 이라크처럼 미국에 의해 정부가 교체되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으면 다들 머뭇거린다.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일 뿐 진심은 아닌 것이다.
미국이 전쟁을 도발하면 더 큰 수렁에
많은 이들은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도발한다면 미국은 이란보다 더 끔찍한 악몽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란은 이라크보다 인구가 훨씬 더 많고, 나라의 크기도 훨씬 크며, 저항세력이 쉽게 몸을 숨길 수 있는 산악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는 이라크 경제를 몰락시켰지만 이란에게는 오히려 자생력을 키워주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유럽과 중국의 꾸준한 지원을 받아왔다. 또 비록 조악한 수준이지만 경제 제재로 수입할 수 없는 상당수 물건들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무기 제조도 마찬가지다. 이란은 아직 미국의 정보망에 걸리지 않은 비밀 무기 공장들을 여러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리적 요건은 이런 군사 시설들을 숨기기에 이라크보다 훨씬 더 용이하다.
그래도 미국은 이란을 노리고 있는 듯하다. 이란 역시 세계 4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석유 부국인데다, 세계 지도를 보면 미국이 가상 적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중국을 봉쇄하는 데 이란이 유일한 걸림돌이란 게 확연히 드러난다. 국제 문제에 정통한 이란의 전문가들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임기 중에 어떻게든 이란을 흔들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라크 전쟁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국이 더 깊은 수렁이 기다리는 것이 확실한 이란을 상대로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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