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공고화 위해 사상 재무장과 조화로운 사회 외쳐…대만 독립 저지 위한 ‘반국가분열법’ 논란
▣ 베이징= 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요즘 중국 공산당원들 사이에서 ‘인기짱’인 말들이 있다. ‘바오셴’(保先)과 ‘허셰’(和諧)다. 바오셴은 ‘당원 선진성 유지 교육활동’(保持黨員先進性敎育活動)을 줄인 말로 ‘신선도 유지’라는 뜻의 바오셴(保鮮)과 동음이의어다. 이 때문에 젊은 공산당원들은 교육장소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 농담 삼아 “어이, 자네도 신선도 유지하러 왔나?”라고 너스레를 떤다. 한편 허셰는 조화를 뜻하는 단어로, 최근 중국 정부가 새로운 국정목표로 제시한 ‘조화로운 사회 건설’(和諧社會建設)에서 나온 말이다. 올 초부터 <인민일보> <신화사> 그리고 <중국중앙텔레비전>(CCTV) 등 대표적인 관영매체를 비롯해 대부분의 중국 언론매체는 이 두 가지 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보도라기보다는 일종의 캠페인에 가깝다.
덩달아 중국 공산당원들의 생활도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일상적인 직장생활과 개인생활 외에도 ‘신선도 유지’를 위해 정기적으로 당원 선진성 유지 교육활동에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중국 전역에서는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선진성 유지 교육활동이 각 단위마다 맹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초반에는 당 간부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다가 지금은 일반 하급 당원들에게까지 골고루 실시되고 있다. 각 대학과 일반 직장 할 것 없이 당원이라면 무조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
대장정 시기의 정풍운동 연상케 한다
이 교육의 특징은 과거의 형식적인 당원 사상교육과는 달리 당원들 각자가 직접 자아비판서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당원으로서의 ‘신선도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사상 결의서를 써내야 한다. 마치 대장정 시기의 옌안(산시성에 위치한 중국 공산당의 혁명 근거지) 정풍운동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젊은 당원들은 이것을 새로운 사상정풍운동이라 부르고 있다.
3월5~14일에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0기 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린 뒤 또 한번 대대적인 ‘바오셴’ 교육 바람이 불었다. 중국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상교육이 이번 전인대를 전후해 권력 공고화 작업에 나선 후진타오에 대한 충성심 강화 교육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장쩌민의 3개 대표론이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후진타오는 새로운 사상교육을 통해 일찌감치 장쩌민의 흔적을 지우고 그 자리에 자신의 입김을 채워넣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폐막된 전인대를 기점으로 당·정·군을 완전하게 장악한 후진타오는 이렇게 황제의 새옷을 입고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해서 중국 인민들 앞에 나타났다. 지난 3월5~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0기 3차 전인대가 열렸다. 이번 전인대를 전후해 중국 언론에서는 ‘후진타오를 핵심으로’라는 정치적 수사를 추가함으로써 후진타오의 권력 공고화 작업이 공식화됐음을 암시했다.
이번 전인대에서 다뤄진 ‘핫이슈’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만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반국가분열법’의 통과와 둘째, 앞으로 후진타오 집권기간 중 가장 중요한 국정 방침이 될 ‘조화로운 사회 건설’ 목표 제시, 세 번째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과 후진타오 현 국가주석간의 중앙군사위 주석직 이양으로 마무리된 3세대와 4세대간의 최종 권력교체다. 이 가운데서도 ‘반국가분열법’은 현재 중국 안팎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전인대 폐막일인 14일, 단 한표의 반대표도 없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반국가분열법은 같은 날 후진타오가 ‘중화인민공화국 주석령 제34호’에 서명, 공포함으로써 곧바로 실효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이 법이 국제적인 논쟁거리가 된 이유는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을 합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국가분열법, 뚜껑 열어보니…
총 10조로 구성된 반국가분열법은 1조에서 “‘대만 독립’을 내건 분열세력에 의한 국가 분열에 대한 반대와 억제”를 위한다며 이 법의 제정 목표가 대만 독립 저지임을 분명히 밝혔다. 또 제8조에서 “‘대만 독립’을 내건 분열세력이 어떠한 명목으로, 어떠한 형태로 대만을 중국에서 분열시키려는 사실, 혹은 중국에서 대만의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중대 사태, 또는 평화통일의 가능성이 완전히 소멸된 경우 국가는 비평화적인 수단과 기타 필요한 조치를 취해 국가주권과 영토보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명시해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 조건을 합법화했다.
반국가분열법이 채택되자마자 미국 등에서는 이것을 양안간 위기를 고조할 ‘전쟁법’이라고 비난하고 있고 유럽연합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한 시각을 의식해서인지 원자바오 국무총리는 전인대 폐막일에 연 기자회견을 통해 “이 법은 전쟁법이 아니라 양안 관계를 더욱더 촉진하는 법이자 평화통일법”이라며 양안간 위기를 고조할 우려가 있다는 외부의 시각을 강하게 부정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이 채택되자마자 인민해방군 내에서는 ‘반국가분열법 학습’이 실시되기 시작했고 <중국중앙텔레비전> 등 관영언론에서는 잇달아 머리기사로 반국가분열법 제정이 “13억 인민의 의지를 담은 것”이라며 이 법의 타당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러한 중국의 반국가분열법 제정에 강한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조만간 대규모 규탄대회와 함께 이 법에 대응하는 연례 최대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 역시 대만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응해 다음달부터 동중국해에서 해상 군사훈련을 한다고 밝혔다.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양안간에는 벌써 신경전이 불붙고 있다.
현재 외신들을 비롯해 대다수 중국 전문가들은 반국가분열법이 대만에 대한 경고 이상의 강력한 사전 선전포고이자 대외 압박용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지만, 일부 분석가들은 이 법이 생각만큼 위협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최종 법안 내용을 알기 전까지는 그저 상상을 통해 굉장히 위협적일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 밖으로 ‘온건하다’는 분석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애초 생각하기로는 법안에 대만과의 최종 통일 시한 등을 정해놓고 그때까지도 평화통일을 이룰 가능성이 희박할 때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들어갈 것으로 여겼으나 그런 내용은 없었다”며 “생각보다 많이 부드러운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제8조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대만 정책의 기조를 벗어나는 내용은 아니라서 이 법이 대만과의 전쟁을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독립세력에 대한 ‘법적 효력을 갖는 경고’를 하는 데 초첨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반국가분열법과 함께 이번 전인대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인 ‘조화로운 사회 건설’은 후진타오의 새로운 국정이념이자 중국 사회의 새로운 발전전략이다. 지난해 9월 제16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처음으로 ‘조화로운 사회 건설’이라는 국정이념을 제시한 후진타오는 “우리가 건설하려고 하는 조화로운 사회는 민주법치와 공평·정의, 신뢰와 우호, 활력이 넘치고 안정과 질서가 있으며,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여야 한다”라고 직접 개념 정의를 한 바 있다.
성장 중심의 경제 전략 한계에 부딪혀
그러나 ‘조화로운 사회 건설’ 목표의 등장은 사실상 과거의 경제발전 지상주의와 동부연안 중심 발전전략이 낳은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와 이로 인한 사회 불안정 요인의 증가가 그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발생한 각종 시위 사태가 입증하듯 지금 중국은 전례 없는 ‘인민 내부의 모순’을 겪고 있고 다양한 이익 충돌이 빚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과거와 같은 국내총생산(GDP) 중심의 경제발전 전략만으로는 갈수록 골이 깊어가는 인민 내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덩샤오핑식의 ‘선부론’보다는 모든 계급계층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건설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은 중국 공산당의 21세기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절대적인 사회 안정과 모든 계층의 이익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아니고서는 중국공산당 중심의 체제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후진타오는 한쪽 얼굴에는 사상 재무장이라는 독기를 품고, 다른 한쪽 얼굴로는 ‘조화와 화합’이라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면서 인민들을 어르고 달래는 중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아침햇발] 윤석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아침햇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8/53_17668955612172_20251228500976.jpg)
윤석열,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여기면 [아침햇발]
![[단독] 김병기 아내 “체크해보세요”…구의원 일 시킨 ‘920호 소통방’ [단독] 김병기 아내 “체크해보세요”…구의원 일 시킨 ‘920호 소통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9/53_17669575916516_20251228502164.jpg)
[단독] 김병기 아내 “체크해보세요”…구의원 일 시킨 ‘920호 소통방’

이 대통령, 청와대 첫 출근…1330일 만에 막 내린 용산시대

쿠팡 5만원 탈 쓴 ‘5천원 쿠폰’ 보상…“이러면서 재가입하라고?”

김건희 특검 “대통령 권력 업고 매관매직…국가 시스템 무너뜨려”
![[단독] 김병기 아내 법카 의혹 “무혐의 종결”주장에 경찰 “당시 수사대상은 일부” [단독] 김병기 아내 법카 의혹 “무혐의 종결”주장에 경찰 “당시 수사대상은 일부”](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8/53_17669256030809_20251228502095.jpg)
[단독] 김병기 아내 법카 의혹 “무혐의 종결”주장에 경찰 “당시 수사대상은 일부”
![이 대통령 지지율 53.2%…대구·경북서 8.9%p 급락 [리얼미터] 이 대통령 지지율 53.2%…대구·경북서 8.9%p 급락 [리얼미터]](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9/53_17669655530114_20251229500278.jpg)
이 대통령 지지율 53.2%…대구·경북서 8.9%p 급락 [리얼미터]

이혜훈 “‘적군’에게 내주기 어려운 예산처 맡기는 건 이 대통령의 진정성”

정규재 “속좁은 국힘, 이혜훈 축하해야…그러다 장동혁·전한길만 남아”

국힘, 이혜훈 예산처 장관 후보자 제명 “이 대통령과 협잡…최악의 해당행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