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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푸껫을 잊었는가

등록 2005-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쓰나미, 그 뒤]

<font color="darkblue">64일 만에 다시 찾은 쓰나미 현장… 파괴와 죽음마저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는 타이 정부에 시민들 분통</font>

▣ 푸껫=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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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이 감돈다.
쓰나미 강습 64일 뒤, 빠똥 비치(Patong beach)의 기운이 심상찮다. 정부는 9억6300만바트(약 280억원)를 퍼부어 다음 관광 성수기가 돌아오는 9월 전에 빠똥을 비롯한 푸껫을 말끔히 청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타이관광국(TAT)은 빠똥처럼 푸껫 전역이 거의 정상을 되찾았다고 온 세상을 향해 줄기차게 나발을 불고 있다. 그러나 빠똥 비치 사람들 마음은 영 편치가 않다.

파라솔과 의자를 같은 색깔로 통일하라?

“20년째 여기서 먹고살았는데, 그냥 떠나라고 하니 말이 되는가!” 쓰나미에 파라솔 50여개를 모조리 날려버린 깔라야(51)는 억울함을 털어놓았다. “정부가 나서 도와줘도 신통찮을 판에… 이 해변이 어떤 해변인데….” 말주변이 없는지 감정이 북받치는지, 깔라야는 말을 잘 잇지 못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생빚을 내서 새로 산 파라솔 10개를 해변에 내다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깔라야와 노닥거리자 해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뚜까따(42) 같은 아주머니들은 정부를 향해 대놓고 퍼부어댔다. “그냥 호락호락 물러서지 않는다. 진짜 우릴 몰아낸다면 전쟁을 보게 될 거다.” 분통을 터뜨리던 뚜까따는 “우리도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폭도가 될 수도 있고 천사가 될 수도 있다”며 한술 더 떠 상당한 자신감마저 드러냈다.

이같은 빠똥 사람들의 분노는, 지난 2월21일 푸껫 부지사 윈나이(Winai Buapradit)가 빠똥 시장 삐안(Pian Keesin)에게 “빠똥 비치에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쓰나미 전처럼 다시 뒤죽박죽되고 있으니 속도를 내서 말끔히 몰아내라”고 닦달하면서부터 끓어올랐다. 게다가 우돔삭(Udomsak Usawarangkura) 푸껫지사는 빠똥 비치에 펼칠 파라솔과 침대의자 모두를 같은 색깔로 통일하라고 명령을 내렸고, 푸껫 당국은 이참에 빠똥을 쥐고 흔들던 마피아도 모조리 몰아내겠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하겠다는 게 다 좋은 일이긴 한데, 같은 색깔로 통일한 파라솔을 보려고 푸껫에 오는 건 아니다. 사람이 좋고 자연이 아름다워서 해마다 여길 찾는 거지….” 해변에서 한잔 걸치며 인터뷰를 기웃거리던 오스트레일리아 관광객 스티븐 네틀(56)이 던진 이 뼈 있는 한마디는 타이 정부가 관광의 ‘주인공’들 마음을 제대로 읽고나 있는지 의심하던 대목과 딱 맞물렸다. 아무튼 그의 말에 신이 난 해변 사람들은 “정부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이 바닷가에서 관광객들을 잘 모셔서 오늘날 빠똥이 유명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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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선전포고다. “올해 안에 푸껫을 완벽하게 원상 복구하라.” 탁신 친나왓 총리는 틈만 나면 푸껫을 찾아 복구 전선을 독려해왔다. 이른바 ‘공해 없는 산업’- 자연과 사람을 모두 엄청나게 타락시키지만, 어쨌든- 으로 불리는, 사실은 ‘현금 작물’인 관광산업에 목맨 타이 정부고 보면 오해하고 말고 할 일도 없지만, 관광 당국은 요즈음 유럽을 비롯한 온 세상을 향해 ‘로드쇼’를 벌여가며 관광객 유치에 온 정열을 쏟아붓고 있다. 한해 1200만명 관광객이 몰려들고 그 가운데 300만명이 푸껫을 찾아 정부 세입 3%를 메워주는 형편을 놓고 본다면, 실제로 타이 경제는 쓰나미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타이 정부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조건 관광객을 잡아들여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니 타이 정부 ‘관광전’의 전진기지 격인 푸껫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푸껫 관광산업 관련자들은, 그들이 공무원이든 숙박업자든 누구이든 간에 마주칠 때마다 건재한 ‘요새’를 강조한다. “이미 푸껫은 복구가 끝난 상태다. 완파당한 팡응아와 푸껫을 비교하지 마라. 푸껫 전체를 놓고 보면 쓰나미가 할퀸 곳이 5%에 지나지 않는다.”

푸껫관광협회 산하 관광복구센터 관장인 솜차이(Somchai Silapanont)는 “손님 맞을 모든 준비가 끝났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의 바람일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는 500개 호텔 3만개 객실 가운데 피해를 입은 곳이 기껏 10%에 지나지 않는다며 성수기로 접어드는 ‘11월 예약 이상 없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솜차이는 그 증거로, 지난 1월 한달 동안 예년과 비교해 20% 수준에 머물렀던 관광객이 2월 들어서면서 40%대로 높아진 수치를 제시했다. 그의 설명을 듣노라면, ‘80%’에 마지노선을 친 올해 푸껫 관광산업을 놓고 내기를 걸 만도 하다.

환영받지 못한 ‘쓰나미 트레일’ 계획

그런데 빠똥 비치로 나가보면 그의 말을 별로 실감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물론 지난 1월에 비하자면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빠똥 거리를 헤집고 다니는 건 분명하다. 또 푸껫 어디를 가든 관광객들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년에 비해 40% 수준까지 회복됐다는 근거를 찾긴 힘들다. 호텔 객실 점유율 같은 것들은 늘 선전도구로 사용돼왔으니 크게 믿을 바도 못 되는데다, 지난 12월 국제선으로 주당 37회 푸껫을 연결했던 국적기인 타이에어웨이스(Thai Airways)마저 1월과 2월 주당 10회로 줄인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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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최전선에서 조준경으로 관광객을 훑어온 빠똥 비치 아줌마들 말을 들어보자. “예년 같으면 지금쯤 적어도 1만명이 넘어. 근데 요샌 겨우 1000~1500명쯤이야.”

깔라야는 작년 이맘때쯤 하루 1만바트(30여만원)를 오르내리던 수익이 지금은 1천바트 수준이라는 말로 관광객 수를 대신했다.

“그런 말을 믿나? 이젠 정부나 공무원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절대로 안 믿어.”

쓰나미가 덮친 뒤 ‘말이 많다’는 죄목으로 유치장까지 갔다왔다는 뚜까따로부터 대정부 불신감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전쟁. 1월 중순, 타이관광국(TAT)은 베트남 전쟁을 승리로 이끈 ‘호찌민 트레일’(Ho Chi Minh Trail)을 연상시키는 이른바 ‘쓰나미 트레일’이라는 계획을 내놓았다. 관광객들에게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패키지’로 돌리겠다는 이 계획이 피해 주민을 비롯해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타이관광국은 “피해 지역뿐만 아니라 지원단체들, 고아원, 임시 숙소 같은 곳을 보여주면 관광객들로부터 기부금도 받을 수 있고…”라며 잽싸게 말꼬리를 내렸다.

환영받지 못하는 타이 정부의 전략·전술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정부가 방니앙 비치(Bang Niang Beach) 앞바다에다 대형 ‘쓰나미기념관’을 지어 관광객들이 그 물을 밟으며 쓰나미를 체험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내걸었다. 초현대식 크리스털 돔을 세워 희생자 이름을 적어넣겠다는 그 야심찬 ‘쓰나미기념관’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이 자그마치 20억바트(약 560억원)라니, 간 큰 정부의 넘치는 전비 앞에 기가 죽을 수밖에.

이쯤 되면 타이 정부의 관광정책을 ‘전쟁’이라 불러도 별 탈이 없을 듯싶다. 지난 12월26일 밀어닥친 쓰나미로 푸껫과 팡응아를 비롯한 타이에서는 현재까지 밝혀진 사망자 수만도 5395명에 이르고 아직도 실종 상태인 사람들이 2974명을 웃돈다. 부상자도 8457명이나 된다. 뿐만 아니라 피해 지역 사람들은 몸을 누일 자리마저 제대로 없다.

자, 이런 희생자들을 앞에 놓고 쓰나미를 통한 ‘파괴’와 ‘죽음’을 관광상품으로 팔아도 좋을 것인가? 그 피해자들은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미소를 흘리며 타이식 “마에 펜 라이”(아무 문제 없어요)를 읊조려야 옳은가, 아니면 비통한 표정으로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야 옳은가?

만약 정부가 그 560억원을 전비로 조달할 수 있다면, 그 돈은 마땅히 피해 복구와 희생자들 보상에 모두 투입해야 정상 아니겠는가?

올여름엔 푸껫으로 가자

남은 건 반전운동이다.

정부가 관광을 마치 전쟁처럼 몰고 가겠다는 건, 그야말로 철 지난 유행이다. 푸껫을 전쟁터로 만들 수는 없다. 이미 푸껫은 쓰나미로 그 어떤 전쟁보다 더 큰 전쟁을 겪었다. 참한 사람들, 멋들어진 저녁 노을, 빛나는 바다, 입맛 당기는 해산물…. 없는 게 없는 그 푸껫을 살리는 길은 시민 관광객들에게 달렸다. “알고 보면 재미가 열배”라는 관광 금언을 듣고 푸껫을 가는 길이 푸껫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마치 초상집에 재 뿌린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나 푸껫은 분명 건재하다. 형편 되는 독자라면, 올여름 여행 계획을 푸껫으로 돌려보기를 강력히 권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푸껫엔 요즘 나도는 소문과 달리 귀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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