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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라트 폭동의 정치적 이용?

등록 2005-02-17 00:00 수정 2020-05-03 04:24

2002년 폭동의 원인이 된 열차화재 조사 결과 논란…방화가 아니라 단순사고 였다는 발표는 선거용인가

▣ 델리=우명주 전문위원 greeni@hotmail.com

2002년 초 약 2천명의 인도인 목숨을 앗아간 구자라트 폭동은 열차 화재에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 2월27일 사바르마티 익스프레스 열차에는 힌두 성지인 아요디아에서 돌아오던 150여명의 힌두 성지순례단이 타고 있었다. 그 열차가 구자라트의 고드라역에 도착했을 때 일단의 무슬림 폭도들이 한 객차 안에 휘발유를 뿌린 다음 창 밖에서 불타는 천을 던져 화재가 발생했다. 그 화재로 59명의 힌두들이 숨졌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힌두들이 무슬림들에 대한 보복을 감행해 대규모 폭동으로 번졌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힌두들이 피의 복수를 정당화할 수 있게 한 열차 화재가 폭도들에 의한 방화가 아닌 단순한 사고였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인도 전역이 그 진위를 둘러싸고 혼란에 빠졌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승리해 국민회의가 다시 집권한 이후 신임 철도부 장관 랄루 프라사드 야다브는 고드라역 화재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지시했다. 지난해 9월 바네르지 전임 대법원 판사를 대표로 내세워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최근 고드라 사건에 대한 중간보고서를 내놓았다.

힌두의 복수를 정당화한 방화, 그러나…

보고서는 지금까지 화재가 무슬림 폭도들이 미리 기획한 방화로 발생했다는 설을 전면 부정하고 단순 사고가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위원회는 당시 대부분 힌두의 정통 무기인 창으로 무장을 하고 있던 힌두 성지순례단이 누군가 객차 안으로 진입해 불을 지르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불타 죽었다는 것이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보고서는 맨 처음 객차에서 타는 냄새가 난 다음 연기와 불이 뒤따랐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언급하며 객차에 불을 지르기 위해 가연성 액체가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했다. 그런 일은 가연성 액체로 인한 화재에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화상을 입은 승객들이 거의 모두 하체 부분이 아닌 상체에만 화상을 입은 것으로 보아 바닥에 휘발유가 뿌려졌다는 설이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위원회의 주장이다. 출입구로 기어갔던 승객들조차 큰 화상을 입지 않았다는 점이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바네르지 판사는 화재가 객차 내부에서의 요리 때문에 발생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순례단이 객차 내부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조사단이 다른 열차에서 해본 실험과 사고로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한 기차를 조사한 뒤에 고드라 사건의 화재 흔적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문제의 열차 천장에서 나타난 흔적들도 휘발유로 인한 화재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자체 조사를 벌인 한 사설조사팀 역시 화재가 외부적 요인이나 인화성 액체로 인한 것이 아님을 인정했다. 사실 구자라트 정부의 법과학연구소도 문제의 열차 잔해에서 어떤 석유 탄화수소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고 구자라트 주정부가 구성한 조사위원회 또한 그렇게 보고했다. 또 사건 이후 실시된 희생자들의 부검이 겨우 20분 만에 형식적으로 진행되었으며, 27건의 부검조사서 가운데 신원이 밝혀진 주검은 겨우 다섯구뿐이었다.

왜 의회선거를 앞두고 중간보고서 발표했나

폭동이 발생한 당시 중앙에서 집권을 했고 현재는 구자라트에서 집권하고 있는 국민당은 즉각 이 보고서에 반발했다. 국민당은 바네르지 위원회가 제시한 ‘사고설’을 반박하며 그 보고서가 정치적 동기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당은 무슬림 폭도들이 140ℓ의 휘발유를 구입해 어느 숙박시설에 보관하고 또 그곳에서 범행을 모의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또 위원회의 주장대로 자리 아래 등에서 불이 발생했다면 그동안 승객들이 어째서 탈출하려 하지 않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구자라트 경찰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기도 했다. 특별조사팀장은 객차 내부에 쓰이는 자재들은 불연 재료이기 때문에 사고로 불이 났을 가능성이 없다며 그 화재가 외부 테러리스트 단체와 결탁한 폭도들의 방화라고 주장했다.

특히 국민당이 의혹을 보내고 있는 점은 조사위원회의 임기가 3월에 끝남에도 어째서 지금 중간보고서를 발표했느냐는 것이다. 위원회 구성을 지시한 철도청 장관 랄루 프리사드 야다브는 비하르주에서 집권하고 있는 라슈트리야 자나타달당의 당수이다. 비하르주와 다른 2개주는 다음달에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다. 때문에 국민당은 야다브 장관이 자신의 당의 실정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무슬림 표를 얻기 위해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야다브 장관은 조사위원회의 보고서가 발표되기도 전에 사본을 입수, 그것을 힌디로 번역해 비하르주에서 배포했다. 일부 주에서 주의회 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조사위원장인 바네르지 판사의 발언에 대해 국민당은 누가 그것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그가 야다브 장관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또 적절한 시기에 그 보고서를 발표하는 것은 정부의 일인데도 보고서를 제출하자마자 기자회견을 한 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야다브 장관은 “한때 자신이 횡령 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보석을 거부한 사람이 바로 이번 조사위원장인 바네르지 판사였다”며 자신이 이번 보고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부정했다. 그러나 보고서의 미묘한 발표 시점과 프리사드 장관의 행보가 보고서의 신용도에 심각한 손상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야다브 장관은 지난 총선에 출마했을 때도 자신의 포스터만큼이나 많은 구자라트 폭동 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뿌리며 무슬림 표를 끌어모은 전력이 있다.

국민당과 다른 정당들은 선거기간에 야다브 장관이 보고서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해달라고 선거관리위원회에 요청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고드라 사건에 대한 바네르지 위원회의 보고서의 정치적 사용에 불만을 표현했다. “그런 보고서가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불행한 일이다. 정당들은 그런 보고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대신 다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라고 크리슈나무르티 선거위원장은 말했다.

정당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현재 연합정부의 일원인 인도공산당은 보고서가 열차 화재가 종교분쟁으로 촉발되도록 이용한 나렌드라 모디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 말했다. 다른 연맹정당들 역시 이번 보고서가 선거전에서 야다브 장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보고서의 내용을 지지했다. 그러나 비하르주 선거에서 야다브 장관의 라슈트리야 자나타달 정당과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정당들은 국민당과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진실은 없고 정치만 있다?

인도 언론 역시 조사보고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에는 의견을 함께하면서도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보고서 발표 시기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도 그 내용에는 공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들은 보고서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한 영자 신문은 승객들이 집단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켜 자신을 희생시켰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비꼬았다. 구자라트 폭동은, 폭동을 방관하고 심지어 조장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구자라트 주지사 나렌드라 모디를 재집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구자라트 폭동이 모디 주지사에게 해준 역할을 이번 조사보고서가 야다브 장관에게 해줄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은 궁금해하고 있다. 어쩌면 야다브 장관이 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기대하는 것도 화재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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