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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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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색’에 빠진 중국 경제

등록 2004-04-23 00:00 수정 2020-05-03 04:23

미녀를 이용한 기상천외 마케팅 성행… 한켠에서는 여성 취업 때 외모 차별하는 그림자도

베이징= 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170cm가 넘는 ‘쭉 빠진’ 키와 몸매,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미모의 여대생이 음식점 ‘식기’가 되었다. 그 미녀 식기 위에는 보기만 해도 저절로 군침이 삼켜지는 갖가지 초밥과 생선회 따위가 즐비하게 차려져 있다. 반나체의 미녀 식기 위에 놓인 뷔페식 식사 한끼는 1명당 인민폐 1천위안(약 15만원)이다. 단 3일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만 한다. 이 미녀 식기 뷔페 요리는 이름하여 ‘여체성연’이다. 혹시 식당 주인(또는 손님들)이 정신이 살짝 ‘맛이 간’ 변태가 아니냐고 비아냥거릴지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멀쩡한 정신으로 이것을 ‘인간과 자연, 예술과 음식의 결합’이라고 강변한다. 때문에 ‘여체성연’은 곧 예술이고 손님들은 그 예술품을 먹는 고품격 예술애호가들이 된다. 지나가는 소도 웃을 법한 이 괴이한 예술론을 둘러싸고 논쟁이 붙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콧방귀를 뀌었다. “벗겨놓은 여체 위에 놓인 음식을 먹는 게 예술행위이면 매일 집안에서 네 마누라와 딸을 한번 그렇게 식기로 이용해서 예술을 감상해라. 비싼 돈 들이지 말고.” 그러자 다른 사람이 응수했다. “문제는 예술품의 질이야 질. 아무나 다 식기가 되면 그거야말로 퇴폐 예술이지. 문제는 그 ‘식기’가 미녀냐 아니냐지.”

미녀 식기 · 미녀 엉덩이 의자…

지난 4월2일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 있는 ‘허펑춘’(和風春)이라는 일식당에서 이른바 ‘여체성연’이라는 요리를 내놓았다. 요리의 내용은 위에서 묘사한 대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중국 언론매체와 인터넷에서는 ‘예술인가 외설인가’ ‘합법적인 상행위인가, 반도덕적인 상술인가’라는 주제로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난처하기는 현지 위생당국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위법이라고 할 만한 법적 근거를 찾지 못했던 쿤밍시 위생당국은 마침내 식기로 사용된 미녀에게 보건증이 없다는 것을 빌미 삼아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영업 개시 나흘 만에 여체성연은 제대로 성연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여론의 등쌀에 밀려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8월, 중국 충칭시의 한 술집에서도 이와 비슷한 쇼를 벌였다. 미끈하게 잘빠진, 하이힐을 신은 미녀의 다리와 그 위로 이어지는 엉덩이 위에 받침대를 놓아서 손님들의 의자로 만든 것이다. 물론 진짜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마치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이 의자는 일명 ‘미녀 엉덩이 의자’다. 이 의자 역시 중국 언론의 가십거리가 되어 두고두고 ‘씹혔다’. 그러면서 중국 곳곳에서는 탄식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중국에도 드디어 미녀 경제의 시대가 도래했다!”

못생겼다는 낙인이 가장 두렵다

지난해 11월9일부터 12월6일까지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중국 하이난다오 싼야에서는 2003년 미스월드 선발대회가 열렸다. 중국 정부의 극진한 대접 속에 전 세계 미인들이 시안·상하이·베이징 등 중국의 대표 도시들을 순회하는 장면이 각국 언론매체를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되면서 중국 정부는 아쉬운 소리 한마디 안 하고 중국의 성공적인 경제발전 모습을 전 세계인들에게 과시할 수 있었다. 미인들을 이용해 국가 홍보를 톡톡히 한 셈이다. 중국이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낸 대표적인 여성의 성상품화 기제라고 인식돼온 미인대회를 개최하겠다고 했을 때, 중국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데 어떻게 그런 자본주의의 퇴폐 산물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중국 당국이 내놓은 그럴듯한 구실이 바로 경제적 효과와 국가 이미지 제고이다. 수십억달러의 경제적 수익은 말할 것도 없고 아름다운 미소를 뿌리며 중국 곳곳을 돌아다니는 미인들의 얼굴만으로도 중국의 이미지를 좀더 부드럽게 각인시켜, 보이지 않는 비경제적 수익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 앞에서 대다수 중국인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녀 경제가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은 셈이다.

미스월드대회를 전후해 중국 내 언론매체들도 앞다퉈 이 기회에 중국 미녀 경제 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고 호소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중국에서는 미녀 경제의 활약이 대단하다. 미녀가 빠지면 경제가 돌아갈지 궁금할 정도다. 비단 화장품 산업이나 성형·패션 산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업종이 미녀들을 내세워 돈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심지어 일반 음식점에서도 미인대회 수상자를 지배인으로 내세워 음식점을 홍보하고 있다. 주간잡지 에서는 최근 중국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는 두 가지 산업으로 부동산 경제와 미녀 경제를 꼽았을 정도다.

중국에서 ‘미녀 경제’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대략 1990년대 후반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혁·개방 이후 광저우·선전 등의 경제특구에서 시작된 ‘아가씨 산업’이 중국 내 미녀 경제의 원조라고도 말한다. 술집·안마소·사우나·이발소 등에서 비롯된 비합법적인 아가씨 경제가 전 경제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지금은 공개적으로 미녀를 팔고 소비하는 미녀 경제의 시대가 되었다. 미녀를 이용한 상업 활동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대도시마다 경쟁적으로 미인대회를 열어 미녀 홍보대사를 뽑고 있다. 각종 기업에서 주최하는 모델선발대회는 일년에도 수십 차례 열린다. 미녀대회와 모델대회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미용업이나 모델학교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고 성형수술 붐도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얼마 전 베이징의 한 젊은 직장 여성이 30만위안(약 4500만원)을 들여 중국 최초의 인공미인 수술을 하면서 중국 내 성형산업이 또 한번 호황을 누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녀 경제 효과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경제적인 수익이라기보다는 중국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는 외모지상주의와 외모콤플렉스이다. 이 현상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상하이의 한 대학에서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 가운데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얼굴이 못생긴 여대생들은 요즘 같은 사상 최고의 대졸 실업시대에는 취직도 힘들기 때문에 미용술과 살빼기에 적잖은 돈을 쓰고 있다. 올해 7월 대학을 졸업하는 펑리홍(馮儷紅·24)도 지금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일이 살빼기와 외모 가꾸기라고 말한다. 졸업을 앞두고 여기저기 취업원서들을 내밀어봤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진 펑은 지금은 한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시간 나는 대로 외모 가꾸기에 열중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둥글둥글하고 뚱뚱한데다 키도 크지 않아서 면접관한테 좋은 인상을 못 준 거 같아요.” 그는 자신이 취업을 하지 못한 원인을 외모 탓으로 돌리고 있다.

사회적 역효과는 생각 안 하나

한쪽에서는 미녀를 식기로 이용해 ‘여체성연’을 벌이는 변태적인 미녀 경제가 호황을 누리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이렇게 못생기고 뚱뚱한 외모 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얼굴이 못생겼다”고 말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외모콤플렉스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학자이자 전국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인 덩웨이즈(鄧偉志)는 인터넷 매체 (www.huasha.com)에서 “지금 중국의 미녀 경제는 단순히 경제적 이익만 추구했지 그것의 사회적 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며 미녀 경제가 몰고 오는 외모지상주의와 왜곡된 미의 가치, 여성의 성 상품화 등 사회적 역효과를 지적했다. 그러나 당분간 중국 사회에서 덩 교수의 이같은 말은 씨알도 안 먹힐 듯하다. 요염한 자태로 누워 있는 미녀의 가슴 위로 “내가 꼬시고 있는 것은 바로 너다”라는 광고가 계속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한 미녀 경제의 유혹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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