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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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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한국교민은 안녕한가

등록 2001-08-08 00:00 수정 2020-05-02 04:22

연이은 납치사건, 비자문제도 이슈화… 정부 차원의 인권보호와 현지 시민사회단체 지원 시급

여름 휴가철이 돌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찾아 해외나들이에 나선다. 특히 풍부한 자원의 나라 필리핀은 한국과 가까우면서도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나라이기에 한국인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필자에게도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어학연수를 준비하는 사람들, 시민사회단체들의 연수 프로그램에서부터 “신혼여행을 갈 예정인데, 요즘 필리핀 상황과 안전 여부”를 묻는 글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사실 한국에 전해지는 필리핀 관련 소식은 온통 범죄이야기, 납치사건, 정치불안 아니면 화산폭발 등 사건 소식만 접할 수밖에 없으니 좀더 객관적인 정보를 얻고 싶은 욕심이야 자연스러운 것이다.

필리핀 관련 소식 중에 단연 공포스런 이야기는 납치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필리핀 남부지역 민다나오섬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과격행동파 단체 아부 샤아프가 최근 두 차례 벌인 외국인 인질사건은 여름 휴가철의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낼 만하다. 올해 일어난 크고 작은 납치사건은 전년도에 비해 훨씬 늘어나서 공식집계만 해도 100여건에 달하고 있다. 신고를 하지 않은 수치를 생각하면 이보다 곱절은 된다. 주로 돈 많은 중국 화교를 대상으로 일어나는데, 필리핀에서 돈을 많이 번 만큼 내놓치 않는다는 불만의 방증이다.

납치는 주로 교민사회 내에서 벌어져

지난 2년간 한국인 대상으로 일어난 납치사건은 총 4건, 이중에 필리핀인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단 한건이다. 지난 7월8일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온천 휴양지를 운영하는 서울컨트리클럽 사장 오모씨가 납치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대사관과 현지 경찰의 긴밀한 협조로 다행스럽게 사건 발생 이틀 만에 몸값 50만페소(1300여만원)를 지불하고 오모씨는 풀려났다. 이후 범인들 중 일부를 검거해서 몸값 중 반을 회수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또 있었다. 지난 7월1일에는 노래방기기 판매업을 하는 우모씨를 대상으로 필리핀인과 공모한 한국인들이 납치사건을 벌였다. 이 사건 역시 몸값 3천여만원을 지불하고 우모씨가 다음날 풀려났으며 이틀 뒤에는 범행을 주모한 한국인 박모, 김모씨 중에 박모씨가 검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보석결정으로 석방되기도 했다.

서울컨트리클럽의 오모씨 납치 범행을 주모한 필리핀인은 평소 클럽에서 일했던 종업원이었다. 한국인 사장과 관계가 좋지 않아 불만을 품던 중 해고를 당하자, 복수심에서 일으킨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민에 대한 크고 작은 사건들은 대부분 교민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필리핀에서 새로운 일자리와 꿈을 찾아 나간 우리 교민들 중에는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생각보다 사업이 안 풀리면 빈손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에 같은 한국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노래방기기 사업자 납치사건도 노래방을 운영하는 박씨가 생각보다 영업이 안 되자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인 사업자를 납치한 사례이다.

필리핀 노동자 추방에 한국여행객이 운다?

현재 필리핀에는 장기 거주민 이외에도 어학연수 및 단순한 관광을 하기 위해 오는 한국인들로 붐비고 있다. 필리핀 관광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에스트라다 정권이 붕괴한 올해에도 관광객이 줄어든 유럽 국가에 비해 한국과 대만은 오히려 관광객 수가 늘어났다고 밝혔다. 또한 필리핀 주재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현재 필리핀에 거주하고 있는 교민 수는 관광객 수를 포함해 약 2만5천여명이라고 집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필리핀을 방문하는 숫자는 이보다 크게 상회하고 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에 따르면 지난 6월 한달간 필리핀을 방문한 방문객은 1만4660명, 여기에 부산·김해 국제공항과 해외에서 필리핀을 방문한 사람 수, 특히 여름과 겨울 성수기에 방문객 수를 고려한다면 연간 약 25만여명이 필리핀을 왕래하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반면 필리핀에서 한국에 방문하는 수는 같은 기간 3497명 수준으로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제 이렇듯 많은 필리핀의 한국교민들과 여행객들에 대해 안전과 인권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한국교민들 사이에 여권·비자문제가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통상 필리핀 관광비자는 21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락하고 있으며, 이를 연장할 경우 1년까지도 체류할 수 있었다. 대개 많은 어학연수생들이 관광비자로 들어와 보통 6개월 정도 영어 어학연수를 하고 돌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22일, 필리핀 이민국은 새롭게 규정을 정했다. 여행비자를 단 한 차례만 연장할 수 있도록 하여 최대 59일까지 머물도록 한 것이다. “여행 비자로 왔으면 2개월이면 충분히 여행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이곳 이민국의 입장이다. 필리핀당국이 단기 어학연수를 위한 비자제도를 마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처럼 태도가 돌변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대사관쪽은 최근 한국 정부가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1만5천여명에 대해 불법체류를 이유로 강제출국 조처를 결정하자 ‘상호주의’에 입각한 조처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국 정부의 해외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한 조처 때문에 엉뚱하게 한국여행객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꼴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기 어려울 때 불법과 부패가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다. 양국간의 강경한 입장은 음성적으로 다양한 수법의 위조 여권이 고가에 거래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에는 오랜 기간 불법 위조여권을 만들었던 한국인들이 적발, 검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잠시 조용했던 위조여권은 5월 이후 다시 고개를 들고 있고 피해를 보는 것은 대다수 선량한 교민들이다.

교민들은 세계화시대에 해외여행을 사치로 몰아붙일 수 없는 만큼, 이제는 정부의 적극적인 보호와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유문화를 미신이라 가르치는 선교단체

일본은 정부 산하에 국제교류재단, 일본국제협력은행, 일본재단 등 ‘삼두마차’를 위시하여 다양한 국제활동을 하고 있다. 2차세계대전 직후 만들어진 이 단체들은 각국의 시민사회단체(NGO)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얻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한 통계에 의하면 일본이 이들 단체를 통해 쏟아붓는 해외원조개발기금(ODA)을 통해 얻는 국익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을 서서히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등 일부 선진국 대사관에서는 자국 해외교포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할 뿐만 아니라 인권문제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관의 경우에는 해마다 연례회의를 통해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인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초청해서 미국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본 대사관은 필리핀 시민사회단체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시민사회와 적극적인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부족한 예산과 인력 때문에 사건이 발생하면 수습하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한국도 시급히 교민들의 인권과 해외 비정부기구에 대한 다양한 지원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정부의 노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민간 차원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단순한 눈요깃거리 해외관광을 넘어서서 현지민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체험을 나누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지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하여 농촌과 빈민지역을 방문, 서로의 문화를 나누는 체험적 관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가르치기보다 배우고 나누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리핀의 경우에는 그나마 한국의 개신교 선교단체들이 지역사회사업에 관심을 갖는데 일부에서는 이에 관한 잡음도 적지 않은 편이다. 지난 6월23일부터 27일까지 민다나오섬 다바오시에서 열린 아시아 교회협의회 회의에서 부족대표로 나온 원주민은 “몇몇 한국 선교사들이 우리 부족 고유문화는 미신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자그마한 부족에만 서로 다른 한국 교파 3개 교회를 세우고 서로 자신의 교회를 다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85%가 천주교인 필리핀에서 천주교를 개신교로 개종하라는 ‘선교’에 대해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최근에는 지구촌 나눔운동(이사장 강문규)에서 370만명에 이르는 어린이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기획하고 필리핀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사업을 모색하고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화시대에 해외 교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와 지원은 가장 기본적인 과제이다. 또한 70∼80년대 많은 해외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국의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에 대한 보답의 차원에서라도 한국은 국제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확장해야 한다.

마닐라=나효우 통신원 nahyowo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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