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열린 대종상영화제는 총체적 촌극이었다. 오래전부터 지적됐던 선정 기준 논란에 더해, 올해는 주최 쪽이 영화제에 참석한 자에 한해 수상을 하겠다는 기상천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 영화제의 위상을 출석 체크 수준으로 훼손시켰다. 일정상 참석이 어려운 유력 후보는 물론, 참석이 가능했던 최고의 배우들까지(출석상이라는 오해가 싫어) 모든 후보들이 영화제를 보이콧했다. 상을 준다면 머리를 조아리는 촌스러운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매년 12월에는 프로야구 골든글러브 시상식이 열린다. 포지션별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선정해 그해의 역사를 기록해두는, 모든 선수들의 꿈이 된 가장 중요한 시상식이다. 1998년 OB 베어스의 1루수 타이론 우즈는 42개의 홈런으로 당시 프로야구 홈런 기록을 경신하며 최초의 외국인 MVP가 되었다. 하지만 그해의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이었다. 물론 이승엽의 기록도 우수했지만, 모든 포지션을 통틀어 시즌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우즈가 자신의 포지션인 1루에서는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는 결과엔 쓴웃음이 나온다. 우즈가 MVP를 받았으니 골든글러브는 이승엽에게 주자는, 외국인 선수 차별이 기저에 깔린 기자들의 심리가 반영된 투표 때문이었다.
2001년 KBO 리그 포수 최초로 20홈런과 20도루, 0.858의 OPS(출루율+장타율)를 기록한 현대 유니콘스의 박경완을 제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것은 8홈런과 0.693의 OPS를 기록한 두산의 홍성흔이었다. 그해는 두산이 우승했으며, 현저한 기록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승팀의 선수에게 골든글러브를 안겨준 대표적 사례다. 그해 0.306의 타율과 2홈런, 53타점, 52도루를 기록한 정수근은 0.335의 타율, 36홈런, 102타점을 기록한 펠릭스 호세를 밀어내고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정수근 역시 우승팀 두산의 선수였다). 이것은 우승팀 프리미엄과 외국인 선수 차별이 동시에 반영된 사례다. 골든글러브 수상자에 대한 투표권을 기자단에게 주면서, 기자들의 호감도에 따라 성적과 무관하게 수상자가 된 사례는 그 외에도 허다하다.
올해 골든글러브 1루수 수상자로 이승엽이 선정됐다. 경쟁자였던 롯데의 최준석은 4번 타자의 상징인 3할 타율과 30홈런-100타점을 달성한 강력한 후보였으며 타율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적에서 이승엽을 앞섰다. 그러나 기자단의 투표 결과는 246표(이승엽) 대 77표(최준석)라는 압도적 차이를 보였고, 이승엽은 사상 첫 골든글러브 10회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이루었다. 나는 올 시즌 이승엽의 성적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최준석을 169표 차이로 압도적으로 누를 만한 성적이었다는 것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결국 선수의 이름값과 골든글러브 10회 수상이라는 기삿거리가 필요했던 기자들의 힘이었다. 이승엽이라는 선수는 굳이 골든글러브 10회 수상이라는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그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이미 모두가 동의하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다. 기자들의 인기투표로 상 하나를 더 안겨주는 것은 오히려 이승엽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일이다. 압도적 성적을 보인 넥센의 신예 유격수 김하성이 우승팀의 유격수인 김재호에게 골든글러브를 뺏긴 것은, 김하성도 김재호도 모두를 다치게 하는 결과였다. 2015년 우승을 통해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라인업은 두산 베어스의 9명이라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우리는 모든 배우들의 꿈이었던 대종상이 한국 영화의 치부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목도했다. 아직 한국 프로야구의 골든글러브는 대종상만큼 타락하지는 않았다. 올해 MVP를 수상한 에릭 테임즈는 슈퍼스타 박병호를 제치고 1루수 골든글러브를 받기도 했다. 한국 리그가 공정한 평가와 구성원들에 대한 예우가 보장된 기회의 땅임을 보여줄 때, 젊고 유능한 외국인 선수들을 KBO 리그로 견인하며 리그의 품격을 높일 수 있다. 팀 성적이나 국적과 무관하게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리그의 역사에 공정하게 기록될 필요가 있다.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이 그들의 기사에서 늘 얘기하듯,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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