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들 사이에서 ‘진성 올드 팬’을 가리는 체크 포인트 중 하나는 ‘서말구를 아느냐?’라는 질문이었다. 1979년 그가 세운 100m 기록은 2010년 김국영이 0.03초를 당길 때까지 31년간 계속된 100m 한국 기록이었다. 재밌는 것은 그가 프로야구 초창기 대주자 요원으로 잠시 롯데 자이언츠의 선수로 활동했다는 사실이다(실제 공식 경기에 나선 기록은 없다).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 확정되던 당시 더그아웃에 있던 스프린터 서말구는 누구보다 빨리 투수 최동원(사진 오른쪽)에게 뛰어들었고 그 순간을 찍은 사진 속에서 우리는 ‘서말구’라는 선수를 수차례 발견하게 된다.
31년이 지난 올해 11월30일,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스프린터 서말구는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어린 시절의 야구만화에서 지구상 최강 야구팀은 쿠바였다. 쿠바팀은 야구를 위해 태어난 사이보그 같았고, ‘쿠바’라는 묘하게 강렬한 어감과 어울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라는 이미지까지 더하여) 한국에 그들은 늘 세상 저 너머에 있는, 강력한 미지의 적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국가 대항전에서 한국은 쿠바에 늘 위닝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모두, 군사정권에 의한 한국 프로야구 태동의 배경을 알고 있다.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를 지탱한 지역 연고제는 한국의 지역주의와 융합되어 폭발적인 인기와 대중적 흥분을 끌어모았다. 당시 선수들 또한 구단이 싫어도 지역의 팬들만 바라보며 야구를 했고, 타 지역팀으로 트레이드되어 심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선수들은 자멸하기도 했다.
2013년 부산 출신인 정근우(당시 SK 와이번스)가 자유계약(FA) 선수로 풀리자 롯데 팬들은 ‘롯근우’라는 애칭까지 만들어 그의 부산행을 기대했으나 정근우가 택한 팀은 대전의 한화 이글스였다. 올해 역시 부산 출신으로 FA가 된 정우람(전 SK 와이번스)에게도 롯데 팬들은 ‘롯우람’이라는 애칭을 붙여주며 고향 팀과의 계약을 학수고대했으나 그가 택한 팀은 한화 이글스였다. 영원히 대구의 3루수일 것 같았던 박석민도 역대 최고 대우를 받으며 NC 다이노스로 팀을 옮겼다.
더 이상 선수들은 ‘고향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는다(유한준은 예외적인 경우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해보고 싶다’라는 유행어만 양산해낼 뿐이다.
1983년, 롯데에 입단할 당시 최동원이 받은 계약금은 (공식적으로는) 5천만원이었다. 2014년 FA 윤석민은 90억원, 장원준은 84억원을 받았다. 2015년 FA가 된 불펜 투수 정우람의 총 계약 액수는 84억원이며 3루수 박석민은 최대 96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제 곧 100억원 계약 시대가 열린다. 물론 이를 선수들의 욕심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구단들 앞에서, 더 높은 계약금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욕망이다.
연일 FA 선수들의 초대형 계약 소식이 전해지고 있을 때, 각 구단은 약 60명의 선수를 방출했다. FA를 선언한 선수들 한명 한명의 인터뷰 기사가 시시각각 터져나올 때, 한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퇴출당한 꿈들이 60명에 이른다. 60명이면 한 구단의 선수 총원과 맞먹는 규모이다. 이들의 연봉을 모두 합해도 이제 누군가 받게 될 100억원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절대 개인’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시대. “실력이 모자라니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덧정 없게 말하지는 말자.
한국 야구는 실력도 시장도 놀랍게 성장했다. 철저한 분업화가 이루어지고, 지역팀이란 개념도 희석되고, 쿠바와의 경기에서도 자주 이긴다.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이 어떠했든 지금은 철저한 자본주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 화려하고, 부유해졌고, 잔인해졌다. 야구선수들이 부자가 될수록, 한국 야구에서 받아오던 위로와 낭만이 사라져간다는 느낌은 기분 탓일까. 백만장자들이 뛰고 있는 야구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응원의 열기도 자꾸 식어간다.
연일 수십억원의 FA 계약 소식이 터져나오는 걸 지켜보다가, 문득 30년 전 그 촌스러운 유니폼들과 육상선수를 대주자로 기용하려 했던 투박한 야구가 그리워지는 올드팬의 두서없는 푸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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