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도 58년 개띠는 특별하다. 한국 프로야구의 초창기를 수놓은 최동원·김시진·김용남이라는 당대의 투수들이 배출된 해이기 때문이다.
92학번은 아직도 한국 야구의 전설로 회자되는 학번이다. 임선동·조성민·손경수·박찬호로 이어진 ‘빅4’의 출현은 향후 한국 야구의 신세기를 열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타자에는 박재홍이 있었고, 프로로 직행한 투수 중엔 염종석·정민철이 있었다). 연세대의 임선동, 고려대의 조성민은 향후 최동원과 선동열의 구도를 이어갈 것으로 보였고, 홍익대의 손경수가 구위로는 이들보다 낫다는 평가도 많았다.
이들 중 가장 주목을 받지 못한 선수가 한양대의 박찬호였다. 서울 출신인 3명과 달리 충남 공주에서 야구를 한 박찬호는 늘 이들보다 한 단계 아래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93년 미국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LA 다저스는 박찬호를 발견했다. 그 뒤 이들에게 펼쳐진 미래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을 생략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엔 한국 야구의 황금 세대가 출생하고 있었다. 추신수·이대호·김태균·오승환·정근우 등 82년생만으로도 국가대표급 라인업을 구성할 수 있을 만한 이름들이다.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들은 몇 년 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과 올림픽 금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쓸어담았다. 이들은 ‘그들만의 리그’였던 변방의 한국 야구를 세계의 링으로 ‘멱살 잡고 끌고 간’ 세대다.
지금의 한국 야구는 87년생으로 대표된다. 이전 선배들이 스무 살부터 눈물 젖은 빵을 씹으며 메이저리그의 사막 위에 던져져 길을 개척했다면, LA 다저스의 류현진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강정호는 한국 프로야구 스타가 별다른 우회 없이 메이저리그로 직행해 팀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였다. 한국 야구장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가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이들 87년생의 힘이었다. 시즌 내내 한국의 야구장에서 86년생 박병호를 비롯해 87년생 김현수와 황재균, 88년생 손아섭을 관찰하는 스카우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정규 시즌이 종료된 뒤, 롯데 자이언츠의 황재균(왼쪽)과 손아섭(오른쪽)은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거가 꿈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에 팬들의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야구에서 보여준 이들의 성적을 들먹이며 분수를 알라는 수학적 비판과, 한국 야구를 평정한 용병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선수들이었다는 실증적 비판이 더해진다. 언론에서는 이들이 실패하더라도 한국 야구로 돌아오면 거액의 금전이 보장돼 있음을 알기 때문이라는 추측으로 우회적인 조롱을 하고 있다.
난감하다. 누군가의 꿈 앞에서,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 오랫동안 심장 속에 품어온 꿈을 사람들은 왜 이리 쉽게 비웃는 것일까. 선배 세대가 선동열과 최동원을 보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스타가 되는 꿈을 키웠다면, 87년생들은 박찬호와 추신수를 동경하며 야구를 배운 소년들이었다. 일단 심장에 품은 꿈은 모른 척하기 어렵다. 이들의 꿈의 크기를 알 수 없는, 꿈의 진심을 모르는 사람들만이 조롱과 비아냥을 즐긴다.
메이저리그는 야구선수가 꿀 수 있는 최고의 꿈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들의 몫이다. 계속 한국 프로야구에 있었다면 보장될 돈다발과 명예를 잠시 접어두고, 이 세대는 도전을 선택했다. 박찬호와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아무도 그들의 진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면 87년생들의 진화는 끝나지 않았고, 그들의 전성기도 아직 오지 않았는지 모른다. 도전하지 않았던 성공이 주는 안락함보다, 가서 부딪혀본 뒤 결국 경험해본 실패가 인생의 퍼즐을 완성시키는 법.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그러나 아직 소년의 꿈을 잃지 않은 87년생들의 진격을 응원한다.
김준 스포츠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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