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페널티킥은 골키퍼와 키커 사이의 ‘고도의 심리전’이다. 그러나 골키퍼가 키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페널티킥(승부차기 포함)은 성공 확률이 높아서 그 자체로 한 골이라고 여겨 골키퍼는 골을 허용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키커는 당연히 성공을 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페널티킥 성공률이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30번의 페널티킥이 주어졌는데, 23번밖에 성공시키지 못해 76%의 성공률에 그쳤다. 통상적으로는 80%로 알려져 있었고, 월드컵·국제대회·국내대회의 모든 페널티킥을 분석해봐도 80% 안팎의 성공률을 보여왔다.
그동안 페널티킥에서 키커의 슈팅 방향을 분석해보면 골키퍼 기준으로 왼쪽, 가운데, 오른쪽의 확률이 거의 3분의 1씩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도 골키퍼의 94% 정도는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다이빙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골키퍼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것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안토닌 파넨카 선수다. 파넨카는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헤미안스 1905’에서 보냈다. 킥력이 좋아서 198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올해의 축구선수’에 선정되기도 했다.
파넨카가 지금의 ‘파넨카킥’을 처음 선보인 것은 클럽 경기가 아니라 체코슬로바키아 대 독일의 국가대표 경기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1976’에 출전해 결승전에서 서독과 만났다. 두 팀의 결승전 경기는 연장전까지 갔으나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UEFA 유럽 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 사상 처음으로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두 팀 모두 세 번째 선수까지는 성공했으나, 서독의 네 번째 선수 울리 회네스가 공을 골대 위로 차서 실축했다. 이제 체코슬로바키아가 4-3으로 한 골 앞선 상황에서 네 번째 키커 파넨카가 골을 성공시키면 체코슬로바키아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서독의 골키퍼는 당대 최고의 골키퍼 제프 마이어였다.
파넨카가 킥을 하려 하자 제프 마이어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지만, 파넨카는 공을 가볍게 차서 정면으로 날려보냈고 공은 그대로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뒤 그러한 형식의 페널티킥을 파넨카의 이름을 따서 ‘파넨카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파넨카가 ‘파넨카킥’을 고안해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파넨카는 보헤미안 1905에 있을 때 팀 훈련을 모두 마치고 골키퍼 즈데네크 흐루시카와 초콜릿바 또는 맥주 내기 페널티킥 연습을 하곤 했다.
파넨카는 즈데네크 흐루시카와 수많은 페널티킥 내기를 한 결과 대부분의 골키퍼는 키커가 공을 차기 전에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미리 다이빙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골키퍼가 서 있는 자리, 즉 가운데로 차면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얻었다.
파넨카는 그 전에도 친선경기나 리그경기에서 한두 번 파넨카킥을 성공시켰는데, 당시에는 경기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UEFA 유로 같은 중요한 대회, 더구나 우승이 걸려 있는 결정적인 순간, 하필 자신의 앞에서 서독 선수가 실축을 한 뒤라 킥을 성공시키면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에 이를 써먹은 것이다.
통계를 기반으로 분석할 때 페널티킥에서 골키퍼가 행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은 먼저 예측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운데에 몰린 공을 보고 쳐내는 건 높낮이에 관계없이 모두 가능하지만 좌·우측을 향하는 공은 막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서 있자니 왠지 불안하다. 그 불안 때문에 파넨카킥을 막기 어려운 것이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기영노 스포츠평론가가 전해주는 스포츠 역사 속 반전의 순간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과 좋은 글 써주신 기영노 스포츠평론가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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