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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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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신인류의 탄생

등록 2008-04-04 00:00 수정 2020-05-03 04:25

치솟는 인기와 고관절 부상에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김연아의 밴쿠버 무대를 기대하며

▣ 조범자 기자 anju1015@hanmail.net

소녀는 울지 않는다. 믿기 힘든 역전 드라마를 쓴 환희의 순간에도 그저 씩 웃을 뿐, 기쁨의 눈물을 보이진 않는다.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을 견디며 힘겹게 얼음 위를 날다 그만 엉덩방아를 찧어도, 소녀는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도도하게 날아오른다. 고통과 속상함이 어우러져 눈물 한 방울 찔끔 날 만도 한 열여덟 나이인데도.

통증 딛고 세계선수권서 역전극 펼쳐[%%IMAGE4%%]

‘피겨 여왕’ 김연아(18·군포 수리고)는 그래서 단단한 ‘바위’ 같다. ‘여왕’과 ‘바위’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김연아의 흔들림없는 연기와 어떤 무대에서도 변하지 않는 담대한 표정을 떠올리면 금세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지난 3월23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막을 내린 2007∼2008 국제빙상연맹(ISU)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또 역전극을 펼치며 2회 연속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쇼트프로그램에선 실수를 해 5위에 그쳤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특유의 우아한 연기를 펼치며 단번에 3위로 올라섰다. 유럽 텃세로 인한 편파 판정을 차치하고라도 김연아의 동메달은 ‘금메달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점프를 할 때마다, 허리를 조금만 틀어도 고관절 부상은 그의 통점을 예리하게 찔렀다. 하지만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연기 내내 그는 지상에서 가장 편안한 미소로 천상의 연기를 펼쳤다.

많은 이들은 김연아의 ‘강심장’이 없었다면 극심한 통증과 실수, 체력 저하의 삼중고를 뛰어넘어 끝까지 선전을 펼치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큰 무대라 해도, 아무리 극적인 상황이라 해도 ‘깡다구 소녀’는 흔들리거나 우는 법이 없다. 김연아의 열혈팬들은 이런 그를 가리켜 ‘대인배 김슨생’이라고 부른다. 조그만 것에 휘둘리지 않는 대범함을 지녔다고 해서 붙인 별명인데, 이 역시 ‘바위’만큼이나 ‘여왕’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이다. 그러나 김연아의 무대를 오랫동안 보아온 팬들이라면 역시나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김연아와 함께 여자 싱글 라이벌 구도를 이루는 2007 세계선수권자 안도 미키(21)와 2008 세계선수권 챔피언 아사다 마오(18)의 눈물은 한 번쯤 본 기억이 있다. 안도는 이번 대회에서 종아리 근육 파열을 딛고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다 중도 포기하며 아쉬움의 눈물을 보였다. 아사다는 기쁠 때나 속상할 때나 동그란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그런 모습에 일본 팬들은 또 열광한다.

하지만 김연아는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늘 한결같은 얼굴이고 한날 같은 마음이다. 방상아 SBS 피겨스케이팅 해설위원은 “연아는 큰 무대에 강한 담대한 성격을 가졌다. 어느 무대에서나 대범하고, 어쩌다 실수를 했다고 해서 기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력 차가 거의 없고 실수 하나에 순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시니어 피겨 무대에서 연아의 침착함은 어떤 기술보다도 훌륭한 경쟁 무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목표 높게 잡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아”

‘담대함’이 세밀한 피겨스케이팅 무대에서 훌륭한 무기가 될진대, 그렇다면 이것도 훈련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사실 ‘골프 여왕’ 박세리(31)의 강심장은 아버지 박준철씨의 냉혹한 훈련으로 단련된 것이라고 했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두려움과 긴장이 앞서는 딸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는 한밤중에 공동묘지로 딸을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샷 훈련을 하며 담력을 키워줬다. 이를 무기 삼아 박세리는 연장 접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대담하게 경기를 이겨나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김연아는 어떨까. 어머니 박미희씨에게 물었다. 박세리에게 ‘골프 대디’가 있다면 김연아에겐 피겨스케이팅 시작부터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피겨 맘’ 박씨가 있다. 박씨는 “담력 훈련이란 걸 따로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연아는 그런 강심장을 타고난 것 같다”며 웃었다.

하지만 김연아의 아버지 김현석씨는 색다른 해석을 했다. “연아의 강심장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대담한 성격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무리하게 꿈을 좇지 않고 가능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씨는 “연아라고 왜 안 떨리겠나. 하지만 자기 실력을 과신해서 목표를 높게 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레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자기 실력이 100이면 딱 100만 믿고 가는 아이다. 그래서 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아에겐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내 딸이긴 하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른다”며 껄껄 웃었다. 그는 “이번 대회도 사실 포기할 뻔했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고,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연아의 기술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딱 하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연아의 ‘정신력’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피겨스케이팅을 하려면 체중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어린 선수들이 한창 자랄 나이에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겠나. 부모, 코치들이 못 먹게 하니까 화장실에 가서 몰래 밥을 먹는 아이도 있고, 초콜릿 같은 건 안 보이는 데서 많이들 먹는다. 하지만 연아는 어렸을 때부터 밥 한 공기를 주면 반을 덜어낸다. 자기는 이만큼만 먹으면 된다며. 그때부터 좀 다르다고 느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김연아의 자기 컨트롤 능력은 경기장 밖에서도 나타난다. 과거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은 조금만 인기가 오르고 언론과 팬들의 집중을 받으면 금세 그저 그런 선수가 돼버렸다. 과거로 갈수록 더했고 아마추어 선수일수록 더 그랬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방송에 출연하고 광고를 찍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훈련에 소홀해지고 마음이 해이해진다. 당연히 성적은 곤두박질친다. 그러면 신나게 목말을 태워주던 팬들은 이들을 내동댕이치고 다른 스타를 좇는다. 어쩔 수 없는 이치다.

광고·TV 출연 등에 휩쓸리지않는 모습

하지만 김연아는 달랐다. “한국 피겨사 100년 만에 나온 천재”라는 칭송과 함께 각종 인터뷰, 광고 촬영, 예능 프로그램 출연, 심지어 패션 잡지와 패션쇼 무대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김연아는 딱 거기에서 끝이었다. 오랜 시간 스폰서 없이 힘겹게 운동하다 갑자기 여유로운 환경이 주어지면 다소 게을러지기도 하고 피겨 외의 관심사에 기웃거리고도 싶겠지만, 김연아는 그가 잘 쓰는 말처럼 “그냥” 제자리로 돌아온다.

한 피겨스케이팅 관계자는 “그런 면에서 김연아에겐 다른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큰 무대에 나서고 많은 유혹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는 걸 보면 정말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 이제까지 봤던 우리나라 다른 선수들과 어딘가 좀 다르다”고 혀를 내두른다.

2년 뒤엔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이 열린다. 김연아의 눈은 오래전부터 밴쿠버올림픽을 향해 있다. 한순간의 긴장과 한 가닥의 흔들림만이 백지장 차이의 실력을 가진 정상급 선수들을 순위 매길 것이다. 그래서 ‘신인류’이며 ‘강심장’에 ‘깡다구 소녀’인 김연아의 밴쿠버 무대가 더욱 기다려진다. 프리스케이팅 연주곡의 마지막 한 음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거란 믿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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