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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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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나라’에서 덩크슛!

등록 2004-12-24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르헨티나 귀화인’ 경희대 김민수 선수의 성공적 데뷔… 360도 회전 덩크슛까지 구사하며 대학농구에 활력

▣ 박상혁/ 농구전문 프리랜서

경희대학교 주전 센터 김민수(22·201cm). 그의 ‘본토’ 이름은 훌리안 파우스토 페르난데스다. 그는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농구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농구를 즐겼다. 그는 보카 주니어스 유소년클럽을 거쳐 2002년까지 소셜 라누스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단 하나다. 힘들게 자신을 키운 어머니를 좀더 편안하게 모시는 게 그의 꿈이다. 지난 2002년 아르헨티나의 경제 사정이 악화돼 생활고를 겪기 시작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마저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월급 300달러(약 36만원)를 받고 옷가게 점원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빨리 프로에 진출해 어머니를 한국에서 모시고 싶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어머니가 내색은 하지 않지만 힘드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의 한국행이 성사된 것은 아르헨티나 동포의 도움이 컸다. 그를 잘 아는 동포가 에 연락을 취했고, 이 신문의 한 기자가 경희대 최부영 감독에게 그를 소개해줬다.

동포 도움으로 경희대 훈련 시작

그는 2m에 이르는 신장에 탄력을 갖춘 선수다. 최 감독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입국부터 입학까지의 모든 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최 감독의 지도 방식은 엄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훈련 방식에 익숙해진 국내 선수들까지 때때로 위축될 정도다. 김민수가 경희대에 합류하던 날 최 감독은 평소처럼 선수들을 꾸짖고 혹독하게 다루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고는 김민수를 향해 “나는 이런 방식으로 선수들을 가르친다. 네가 외국에서 생활했다고 특별 대우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와 함께하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김민수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이때부터 경희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김민수는 2002년 11월부터 경희대 농구부에 합류해 경기 출장 없이 혹독한 훈련으로만 1년을 견뎌냈다. 김민수는 2004년 대학입시에서 외국인 특례입학 자격으로 경희대 스포츠지도학과에 들어가면서 경희대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1월 최종적으로 국적 취득 인가를 따냈다.

그는 올 3월 안산에서 열린 MBC배 대학농구대회에서 국내 무대 첫 데뷔전을 치렀다. 그의 리그 참가를 놓고 약간의 논란이 있긴 했지만, 대한농구협회와 대학연맹이 아마농구의 활성화를 위한 대승적 차원에서 그의 출전을 허가했다.

기량 면에서 미국인 선수 못지않은 그는 국내 경기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201cm·90kg이라는 뛰어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튄공잡기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미국의 NBA 선수들이나 하는 360도 회전 덩크슛까지 구사하며 센터가 없어 고전하던 경희대 농구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 지난 7월에는 비록 대학선발팀이긴 하지만 존스배 대표팀에 선발되며 생애 처음으로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의 태극 마크를 다는 감동을 누리기도 했다.

대학농구 최강자 연세대를 꺾은 기쁨

그는 최근 끝난 2004 산업은행배 농구대잔치에서도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가세로 경희대는 높이를 이용한 입체적인 농구를 구사할 수 있었고, 대학 농구의 최강자 연세대를 3년 만에 꺾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경희대 김현국 코치는 “점프력과 슈팅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좋은데, 특히 손목의 스냅이 매우 좋다. 전체적인 움직임이 부드럽고 유연하다. 다만, 클럽 농구를 해서 그런지 팀 플레이에 약한 단점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11월 이태원에서 김민수를 만난 적이 있다. 2004년 입학식 때 입을 정장을 맞추러 온 그는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정도로 미남이었다. 그는 어머니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김주성(TG삼보)과 같은 좋은 선수가 돼 아르헨티나에 계신 어머니를 하루빨리 한국으로 모셔오고 싶어요.”



맥도웰도 한국인 되나



한때 ‘한국형 용병’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조니 맥도웰도 최근 귀화 의사를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전주 KCC의 전신인 현대 걸리버스의 3연속 정규 리그 우승과 2번의 플레이오프 우승을 이끌었던 맥도웰은 지난 시즌 모비스에서 활약하다 시즌 도중 성적 부진으로 퇴출된 뒤 현재 애틀랜타에서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맥도웰은 애틀랜타에서 고가의 집을 구입한 뒤 변변한 벌이가 없어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전성기가 지나 외국인 선수로서는 기량이 좀 떨어지지만, 그가 귀화해 한국 선수로 뛰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내 선수 신분인 그를 보유한 팀은 실질적으로 외국인 선수를 3명 보유하는 셈이 된다. 그의 귀화를 추진 중인 ‘스포츠 P&D’쪽은 맥도웰의 한국 국적 취득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설명한다. 맥도웰은 외국인의 한국 귀화를 규정한 국적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없고, 한국농구연맹(KBL)도 “국적만 취득한다면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언제든지 국내 프로농구 무대에서 뛸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각각 캐나다와 미국 출신의 동포인 브라이언 킴(21)과 리처드 한(19)도 내년 시즌 KBL 진출을 노리고 있다. 브라이언 킴은 현재 캐나다 밴가드대학에 재학 중인 선수로 198cm의 장신 가드다. 미국대학농구리그(NCAA)에서 폭발적인 득점력을 인정받아 국내 프로팀 관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001년부터 2년 동안 포틀랜드대학에서 벤치 멤버로 있다가, 2003년 밴가드대학으로 전학해 경기당 평균 18점 이상의 득점을 기록하는 주전으로 성장했다. 리처드 한은 180cm의 포인트가드로 롱비치 폴리 고교를 졸업했다. 그의 소속팀인 폴리 고교는 전미 고교 랭킹 30위 안에 드는 농구 명문으로, 그는 이 팀에서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라이언 킴과 리처드 한은 내년 2월에 열리는 2005 KBL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 지원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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