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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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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어, 우리 손을 잡아봐"

등록 2002-11-28 00:00 수정 2020-05-03 04:23

[한-베 어린이 문예대회 산문 부문 수상작]

베트남 아저씨 차별 없는 우리 아빠 공장…아오자이 패션쇼와 윤도현, 그리고 통일

홍강아저씨와 베트남

인천 부흥초등학교 4학년 4반 이지민

우리 아빠 공장에는 베트남 아저씨가 한분 계신다. 엄마 아빠를 따라서 몇번 보았는데 별로 낯설지 않았다. 난 다른 나라 사람이면 무서워서 한마디도 못하는데 홍강아저씨는 나와 내 동생한테 친절하고 잘 웃어주신다. 난 그 아저씨가 우리 아빠 공장에서 오랫동안 일하였으면 좋겠다. 다른 공장에서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직원으로 쓰는 대신 월급은 주지 않고 일만 많이 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아빠 공장에서는 홍강아저씨에게 월급을 줄 때 다른 직원과 똑같이 주고 점심을 먹을 때도 항상 같이 먹는다. 그 전에는 베트남에서 온 티티아줌마와 가가아저씨가 우리 집에 놀러와서 내 동생과 아빠랑 월미도에 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베트남으로 가고 홍강아저씨만 남았다.

우리 아빠는 베트남 사람들이 돈 벌으러 왔다고 참 불쌍하게 생각하신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한국에 와 있는 베트남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았다. 베트남에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돈 버는 일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하고는 달리 힘든 일 어려운 일들을 불평 불만 없이 열심히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IMF 시절 이전부터 3D라고 하는 어렵고 힘든 생산현장에서의 일들을 안하려고 하여 우리 아빠 공장 같은 작은 회사들은 사람을 구해서 일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고 한다. 그럴 때에 우리 공장에 오게 된 홍강아저씨는 너무나도 열심히 일을 해 주었고 우리 아빠는 사람을 구해야 하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끔 TV에 나오는 뉴스를 보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마구 학대하고 괴롭히는 것을 종종 본다.

나는 그런 것을 잘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지 않으려 하는 힘든 일들을 멀리 외국에서 와서 열심히 해주는데 왜 그렇게 괴롭히는 것일까 나는 우리 아빠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는 것을 보고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참 불쌍해 보였다.

그리고는 그 사람들이 우리 아빠 공장에 와서 일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엄마 말씀이 홍강아저씨 베트남 친구들이 말하기를 대한민국에서 사장님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참 좋았다.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웃이 되는 지금 세상에서 잘 산다고 친해지고 못 산다고 무시하는 그런 일들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어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그날을 기원하며….

수상소감: 어떤 사람들은 쬐끄만 게 뭘 안다고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쓰느냐라고 흉볼지 모르지만 글을 쓰면서 저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제 생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베트남에 관한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순간 아빠를 떠올렸고 아빠 회사가 생각났습니다. 엄마에게 여쭤봤더니 여러 가지 상황을 설명해주셨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베트남 친구들과의 일주일

손혜령/ 경기 고양 강선초등학교 4학년 6반

그 날은 유난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땀이 비오듯 흐를 한 여름인데 이번해에는 장마가 한 일주일 정도는 앞당겨 온 듯 하다. 하늘은 우리 한국 어린이와 베트남 어린이가 만난다고 하자, 우리가 시원한 날씨에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었다.

베트남 아이들이 타고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마음은 너무 두근거려서 마치 터질 듯 하였고 내 시야에 버스가 들어오자 내 마음은 더 두근거렸다. 내 시야에 들어왔던 그 버스는 어느새 멈추어 섰고 우리 아이들과 매우 비슷한 얼굴의 아이들이 웅성거리며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그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정말 놀랐다. 우리와 전혀 다르게 생길 줄 알았던 아이들은 우리 한국 아이들과 정말 비슷했다.

우리는 아직 서로의 말을 몰랐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는 못 나누었다. 그러나 간단한 손짓으로 “안녕!”과 같은 간단한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었다. 그런 베트남 아이들 중에 제일 기억에 남았던 아이는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고 피부는 유난히 까만 여자아이였는데 여기에 오기 전에 한국말을 조금 공부하였는지 나에게 서투른 발음으로 “안녕 반가워”라고 인사를 건네었다. 그 말 밖에 몰랐지만 베트남 아이들 중에서 제일 우리 나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싶은 아이를 고르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아까 말한 그 여자아이를 선택했다. 정말 의외로 그 여자아이에게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 아이를 집에 데려오고 안 사실인데 그 아이가 영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도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그나마 우리는 대화를 조금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로 괜찮은 아이였다. 나에게 베트남 말과 베트남에 대한 것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애에게 한국말과 그 애가 모르는 한국에 대한 것들을 답례로 가르쳐주었다. 정말 아쉬운 점은 우리 둘다 영어를 잘 못해서 충분한 대화는 못했다는 점이다.

그 7일동안 우리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고 놀이를 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때는 우리 둘만의 패션쇼를 할 때였다. 나는 아오자이를 입고 논을 썼고 그 애는 우리 한복을 입었는데 얼굴이 조금만 덜 까맸다면 마치 우리 한국아이인 줄 알 뻔 하였다. 그 애는 나보다 더 재미있어 하였는데 내가 자신의 친구와 똑같아서 웃었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재미있고 즐거웠었던 시간도 이제 끝이 나고 아침에 일어나 달력을 보니 바로 내일이 베트남 아이들이 가는 날이었다. 나는 그 애를 베트남 아이들의 숙소로 돌려보내고 나서 월드컵 응원 티셔츠를 샀다. 빨간색에 흰색으로 ‘BE THE REDS’라고 써있는 티셔츠였는데 그 애에게 선물하려고 그동안 모은 용돈으로 샀다.

하루가 지나고 아이들이 가는 날이 왔다. 아이들이 다시 가기 위해 작별인사를 할 무렵 나는 그 애에게 선물을 주었다. 어제 밤새도록 작별인사말을 준비했는데 그 애를 보니 우리 둘의 추억이 생각나 눈물이 흘렀다. 너무 슬펐다. 아직 못한 얘기도 많은데 가버린다고 하니 아쉬웠다. 어느새, 작별인사 시간이 끝이 나고 아이들이 버스에 올랐다. 부릉부릉 버스가 시동을 걸고 떠나려고 할 때, 나는 그 애에게서 배운 서투른 베트남어로 “나 잊지마”라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생각해 보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남같이 느껴져서 우리라고 부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이 글을 적으면서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충분히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나라와 베트남이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상소감: 상을 타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을 텐데,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같이 행사에 참여한 아이들이 입상을 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점이 있지만 제가 입상했기에 기쁩니다. 앞으로는 이런 좋은 행사에 이전보다 많이 출전해서 많은 경험을 쌓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더 좋을 글을 쓰겠습니다.

우리 친구 베트남

정은수/ 경기 수원 오목초등학교 2학년 1반

엄마랑 서점에 가서 세계지도를 샀다. 우리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작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참 큰 줄 알았다. 우리나라와 가까운 이웃나라는 중국과 일본이 있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조금 크고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엄청나게 컸다. 엄마는 일본과 중국만 이웃이 아니라 아시아의 모든 나라는 전부 우리의 친구나라라고 하셨다. 그리고 아시아의 땅넓이가 지구에서 가장 넓다고 하셔서 괜히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우리나라 부산에서 열렸던 아시안게임을 TV에서 보았는데 정말 무지무지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와서 혹시 올림픽이 아닌가 착각이 들었다.

엄마는 일년 내내 날씨가 더운 베트남이란 나라에서 온 선수들을 응원하신다고 하셨다. 오래전에 우리나라 군인들이 베트남에 가서 전쟁을 한 적이 있었다는데 왜 남의 나라에 가서 총싸움을 했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어른들은 우리한테 싸우는 것이 아주 나쁜 짓이라고 그러면서 왜 같은 아시아의 이웃나라와 그렇게 싸웠을까

하지만 이제는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다시 친해졌다고 하니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조금만 있으면 베트남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운동을 잘 못해서 걱정이다. 이번 가을 운동회 때에도 달리기를 4등을 해버렸다. 운동을 잘 해야 아시안게임에 나갈 수 있는데 아무래도 나는 운동선수가 되기는 힘들 것 같다.

운동을 못 해도 아시아의 여러나라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어디 없을까. 엄마도 그 방법은 잘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이 15등을 해서 엄마와 나는 정말로 기뻤다. 왜냐하면 베트남은 우리보다 어렵게 사는 나라라서 운동선수들이 우리만큼 좋은 시설에서 운동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아시안게임 때는 베트남이 5등안에 들었으면 참 좋겠다. 세계지도를 보니 베트남과 우리나라가 많이 멀지가 않았다. 세계지도만 보고 있으면 세계 어느나라도 쉽게 갈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지구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도 하루종일 가야 하는 나라들도 많이 있다고 엄마가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요즘은 지구의 모든 나라들이 이웃처럼 사이좋게 지내기 때문에 ‘지구촌’이라고 부른다고 가르쳐 주셨다. 우선 베트남 같은 아시아의 이웃들과 많이 친해진 다음에 세계 여러나라 이웃들과도 친해지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집이 가까운 학교 친구들과 먼저 친하게 지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이 다 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엄청나게 무지무지 부자가 된 것 같다. 생각만으로도 부자가 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수상소감: 매주 우편함에 꽂혀 있는 을 하교길에 늘 제가 엄마께 갖다드립니다. 이번 글 응모도 엄마가 권해주셨는데 이렇게 상을 받게 돼 너무 기쁩니다.

이번 일로 ‘베트남’이란 나라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이 세상이 늘 평화로우면 참 좋겠습니다. 베트남의 친구들도 늘 행복하면 참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싸우지 않고 친하게 잘 지낼 거예요. 저를 뽑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노래가 광기적이라고?

유지연/ 서울 한신초등학교 6학년 3반

“윤도현 밴드의 노래는 이곳과 많이 다른 것 같습네다. 무척 광기적이고, 열성적이라 많이 놀랐습네다.”

이번 남북한 평양공연에서 남한 가수들 중 윤도현 밴드라는 록 가수가 있었는데 한 기자가 이 가수에 대한 느낌을 북한 관객에게 물어보자,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대답한 사람은 늙은 할아버지도 아니고, 30대 후반의 남자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윤도현 밴드를 광기적이라며 이상하게 생각할 때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를 들어보아도 윤도현 밴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이 아저씨뿐만이 아니었다.

“아빠, 아빠는 윤도현 밴드가 이상하세요”

“이번 월드컵 때 자주 불리었던 아리랑을 윤도현 밴드가 록 방식으로 불렀었지 그래서인지 얼굴이나 목소리가 낯익은데”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아빠보다 더 젊은데도 록 같은 음악을 모르나봐요. 윤도현 밴드가 광기적이래잖아요.”

아빠께선 빙그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게 바로 문화의 차이란다. 네가 아빠가 좋아하는 박자 느린 곡보다, 최신가요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지. 다만, 북한에서는 록이란 분야를 아예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반응이 좀 더 컸을 뿐이야.”

내 방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남한과 북한은 사람들의 말투 차이나 경제 차이가 있듯이, 문화의 차이도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북한의 차이는 심해지고 있다. 어서 통일을 이룩해야 하는데 북한은 아는지 모르는지 답답하다. 이렇게 교류공연을 할 때에는 정말 통일을 하고 싶고 평화를 원하는 것 같은데 다른 쪽에선 서해교전 같은 참사를 일으켜서 평화를 위협하다니. 서해교전에서는 전쟁의 불씨가 될까봐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독일도 동독과 서독의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을 했다. 이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이 남았는데, 북한도 어서 마음을 열고 더욱 다가왔으면 좋겠다. 솔직히 6.25 전쟁을 생각하면 남한은 옛 일 대신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데 북한은 모른 체 하는 것 같아 괘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이익보다 통일과 평화가 더 중요하기에, 분단국가 차이를 줄이고 손을 잡았으면 한다.

수상소감: 갑자기 선생님께서 날 급히 찾으셨다. 한겨레신문사에 응모한 산문이 우수상을 타게 됐다고 하셨다. 기대하지 않은 소식이라 무척 기뻤으면서도 놀랐다. 신문사에 보낼 사진을 찾으면서도 계속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글에 관심을 갖고 책도 많이 읽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다.

베트남 친구에게

조진미/ 인천 부흥초등학교 5학년 1반

베트남 친구에게...

안녕 난 부흥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진미라고 해. 너희도 예전에 우리나라처럼 남·북으로 갈라졌다고 했지 난 이전엔 몰랐었는데 선생님께 들어서 알게 되었어. 하지만 너희는 지금이라도 통일됐으니 좋겠다. 우리는 6.25전쟁이 있은 후 아직까지도 통일이 안되고 있어. 통일이 안되니까 못 만나는 가족들도 많고, 1년에 몇 번씩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그런 행사를 하긴 해. 하지만 그때만 잠깐 만나고 다시 헤어져서 긴 세월을 지내야 하잖아. 울고 불고 하면서. 너희나라처럼 통일이 된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구. TV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 무척 슬퍼.

너희는 어떻게 해서 통일이 됐는지 모르지만 너희 나라가 무척이나 부러워. 난 말이야. 통일이 되면은 우선 평화를 되찾을수 있을 것 같아 좋을 것 같아. 자기의 자유가 있잖아. 너는 어땠어 통일을 하고 난 후의 소감. 난 통일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아. 금강산에도 한번 가보고, 북한의 살림 구경도 해보고 싶고, 전쟁이 있은 후 말투도 조금씩 다 달라졌을 거구. 내가 지금 너희처럼 전쟁을 했다가 통일이 돼서 평화를 되찾았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너희는 전쟁이 나서 다시 통일이 돼서 다행이지만 우리나라는 전쟁이 있은 후 평생 통일을 안하면 어떡하지 너희처럼 지금 통일이 되었다면 이런 걱정도 없었을 텐데. 너희는 다시 평화를 되찾았지만 우리는 평생 평화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정말 갑갑해. 통일이 안되면 어떨까 말이야.

그런데 통일이 되면 약간의 문제점도 있을 것 같긴 해. 대통령도 한 분만 있어야 할 거고. 북한이 가난하니까 우리가 같이 나누어 줘야 해서 경제문제에도 차질이 있을 것 같고. 하지만 통일만 된다면 뭐. 너희 나라가 정말 부럽다. 우리도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그럼 안녕. 이만 쓸께.

*** 그외 장려상 19편은 지면사정으로 싣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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