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인 나는 요즘 실화극장에 푹 빠졌다. 쥐 그림 사건만 봐도 영화 저리 가라 할 기막힌 장면들이 빼곡하다. 6개월 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행사에 ‘올인’하던 정부에 날아든 쥐벽서는, 한 방의 총성이었다. 물론 장난감 총이었지만, 정부는 진짜 총으로 대접했고, 이제 그 총성은 폭죽놀이가 되어 쥐불처럼 번져간다.
경찰도 웃고만 사소한 낙서2010년 10월31일 새벽 1시께, 112 신고가 접수된다. “G20 포스터에 기분 나쁜 그림이 그려져 있어, 빨갱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신고한다.” 출동한 순경은 박정수와 여대생 박○○를 스프레이통 등 ‘증거물’을 버리고 도주하는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며, “너희는 공범이라서 가중처벌 된다”고 겁을 잔뜩 주었단다. 묵비권을 행사하던 박정수는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됐고, 야간 조사는 불법이니 아침에 변호사가 오면 진술하겠다고 버텼다. 처음 형사과 형사는 단순 재물손괴 사건으로 조서를 꾸미는데, 검찰에서 계속 전화가 왔다. 검찰은 ‘G20 반대투쟁 등 불순한 의도를 가진 조직적인 범죄이니, 소속과 직업을 집중적으로 캐물으라’ 고 닦달했다. 남대문서 유치장이 공사 중이라 박정수는 중부경찰서로 이송됐고,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배당됐다. 나는 네 살배기 딸이랑 남대문서와 중부서를 전전하다 유치장 면회실에서 박정수를 만났다. “아빠, 왜 감옥에 갇혔어?”란 질문에, “쥐를 그려서”라고 답하는 남편과 나는 영화 장면을 패러디하며 낄낄거렸다. 옆에서 녹취하던 순경도 킥킥댔다. 쥐를 그린 게 다라니, 곧 나오리라 예상한 것이다. 다음날 사람은 안 나오고, 박정수를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집단, 흉기 등 재물손괴 등) 위반 혐의로 체포했음을 알리는 우편물이 날아왔다. ‘조폭’도 아니고, 웬 ‘폭처법’? 법제처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공범이라 가중된단 뜻이었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박정수는 TV에서 보았던 밀실에서 6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이번엔 검찰의 주문대로, 정말 공안사건처럼 다루더란다. 영장은 기각됐지만, 박정수는 72시간을 꽉 채우고야 풀려났다. 밖에는 기자들이 취재를 오고, 인터넷엔 쥐 그림이 돌았다. 검찰의 ‘박정수 작가 만들기’ 프로젝트에 입질이 왔다. 댓글과 패러디가 쏟아졌다. 쥐벽서가 G20 홍보와 경호에 열을 올리는 정부의 촌스러운 작태에 염증을 느끼는 시민들에게 비판의 포문을 열게 한 것이다.
“부잣집 잔치에 재를 뿌린 것”?요란했던 G20 행사가 별 볼일 없이 끝났지만, 수사는 계속됐다. 영장 기각과 함께 ‘형사과’ 형사는 징계받고 교체됐다. 시위법이나 인터넷 통신법 위반 사범을 주로 담당한다는 ‘지능과’ 형사와 공안2부 강수산나 검사가 수사를 맡았다. 강 검사는 계속 형사과 형사의 투미한 문제의식을 질타하며, 압수한 박정수의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자료를 근거로 피의자를 5명으로 늘려 심문을 했다. 공범으로 기소된 최○○은 오전 10시에 들어가서 밤 10시에 나왔다. 최○○는 스프레이통 한번 잡아본 적이 없다. 박정수의 연구실 후배로, 현장 부근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 연락하라는 등의 문자를 여러 개 주고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공범이 있어야만 ‘조직적인 공안사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인지, 검사는 최○○에게 “박정수가 왜 잡혔단 문자를 너한테 했나. 둘이 불륜이냐.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게 정상인데 너는 왜 심야에 근처를 돌아다녔느냐” 따위의 저질 질문을 해댔다. 대답은 “제가 법대 출신이라요. 그날은 핼러윈데이라 길에 사람 많았는데요”. 5명의 피의자 휴대전화도 압수하고 “‘수유+너머’는 뭐하는 단체이며, 어떻게 구성·운영되는지”를 캐물었다. 대답은 장자 세미나, 노신 강독, 케포이 등 식미에 안 맞는 것들뿐이다.
박정수와의 ‘병맛’ 일문일답. “도안은 직접 했나?” “표절입니다(뱅크시 그림을 보여준다).” “미술을 한 적이 있는가?” “초등학교 때, 도 미술대회에서 수상한 사실이 있으며,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수채화 과정을 들었습니다.” “쥐라면 도둑이나 하찮음, 부정, 간신과 수탈 등에 비유하는데, 쥐를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발음이 같아서.” 강수산나 검사는 “부잣집 잔치에 재를 뿌린 것”이라며 G20의 계급적 본질을 드러내는 발언을 하며 ‘일반손괴죄’보다 형량이 높은 ‘공용물건손상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수사기록엔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사무관이 포스터 값과 설치 비용이 장당 3만5천원이라고 답한 진술서도 있지만, 4월22일 공판에서 김성현 검사는 얼만지도 모를 ‘청사초롱의 꿈’을 강탈했다는 명연설과 함께 징역 10개월과 8개월을 구형했다. 이창동, 장정일 등 문화계 인사와 네티즌들의 탄원서가 줄을 잇고, 해외 뱅크시 팬사이트 등에서 구명운동이 일었다. 마침 한국의 언론 자유가 축소됐다는 프리덤하우스 등의 발표는 사건에 여론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판사는 “G20을 방해할 목적은 없었다”며 공안사건이 아님을 명시했지만, “타인의 명예나 공중도덕을 침해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며 벌금 200만원과 1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누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냐는 질문이 진보신당 논평과 네티즌 사이에서 쏟아졌다. 그 답을 듣기 위해, 박정수는 항소할 것이다.
쥐 그림은 들불처럼 번져가리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선고 당일 ‘김여진과 날라리외부세력’은 쥐벽티로 벌금을 충당하자고 제안해, 840명의 예약을 받아 제작에 들어갔다. 또 다른 버전의 쥐벽티가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에서 제작돼 장애인 인권운동 벌금 충당용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6월3일 홍익대 ‘두리반’에서 열리는 일일주점 ‘청사초롱’에서는 쥐 포스터를 직접 그려서 가져가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박정수는 쥐 그림을 들고 김여진의 ‘반값 등록금 1인시위’에 연대한 데 이어, G20 국회의장회의에서 ‘금준미주는 천인혈…’이라는 한시가 적힌 쥐 그림을 들고 1인시위를 펼쳤다. 올여름 쥐벽서는 여기저기서 출몰할 예정이다. 이제 무슨 죄목으로 이를 막을 것인가.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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