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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머리띠를 매고 앓아누울까요

등록 2012-08-07 13:24 수정 2020-05-03 04:26
Q.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배우가 머리띠를 매고 앓아눕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정말 머리띠를 매는 것이 두통에 효과가 있나요?(jk87***@gmail.com)

A. 결론부터 말씀드리지요. 없답니다. 효과가 있다 해도 일시적일 뿐이랍니다. 한방과 양방은 병의 진단부터 치료 방법까지 충돌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에는 소견이 일치합니다.

드라마에서 머리띠를 묶는 분들은 주로 시어머니인 경우가 많지요? 자식이 소개한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알고 보니 두 사람이 이복남매였다는 식으로 출생의 비밀이 있을 때 머리를 싸매고 눕습니다. 물론 아들이나 며느리가 하는 짓이 괘씸할 때도 머리띠는 시어머니의 든든한 무기입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도 곁들이십니다. 일종의 시위지요. 전문용어로는 ‘쇼’라고 합니다. 물론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드라마에서라면 ‘머리띠’라는 클리셰가 가장 간단하고도 빠른 방법일 테니까요. 굳이 두통약을 사먹는 장면을 추가할 필요는 없겠지요.

어쨌든 두통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두개골 밖의 근육이 지속적으로 수축해 발생하는 긴장성 두통이 가장 흔합니다. 편두통의 원인은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지만 머리의 혈관에 문제가 생겨 나타난다는 ‘혈관가설’이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긴장성 두통일 때는 머리띠 등으로 두피에 압력을 가하면 상대적으로 덜 아픈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답니다. 하지만 편두통에는 그마저도 효과가 없다는군요.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조양제 교수는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의학적으로 설정이 잘못된 내용이 상당히 많은데, ‘두통에 머리띠’라는 것도 그중의 하나”라며 “통증이 지속된다면 머리띠를 두를 게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머리띠를 둘러서 완화될 정도의 통증이라면 안 해도 자연스럽게 나을 겁니다. 그보다 증상이 심하다면 즉각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방의 설명도 비슷합니다. 한방은 우리 몸의 통증을 허증(虛證)과 실증(實證)으로 나눕니다. 허증은 원기가 부족해 신체의 저항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고, 실증은 외부에서 병이 들어와 사악한 기운이 강해지면 나타나는 증상이랍니다. 두통에도 물론 허증과 실증이 있습니다. 경희밝은마음 한의원의 임재환 원장은 “허증의 투통이라면 머리띠가 어느 정도 통증을 완화할 수 있지만 실증 두통은 머리를 압박하면 증상이 더 심해진다”고 경고합니다.

취재를 하다 보니 이런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꼭 두통이 아니더라도 머리띠가 등장하곤 하지요? 운동선수나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머리띠를 묶는 장면이 그런 경우일 텐데요, 과연 머리띠가 운동 능력이나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용이 없답니다. 조양제 교수는 “심리적인 자기암시의 효과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눈에 땀이나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의미를 빼면 하나 마나 한 일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시험을 앞둔 학생이 갑자기 머리띠를 매고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다면 ‘용돈 좀 올려주세요’라거나 ‘성적표 나와도 혼내지 마세요’라는 읍소의 몸부림으로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네요. 수험생 여러분, 폭염에 고생 많습니다. 부모님들, 용돈 좀 올려주세요.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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