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도 못자고 아이를 닥달하는 초조한 어머니들… 즐겁게 공부를 도와주는 코치가 돼야
▣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www.stresscenter.co.kr
서울 강남에 사는 한 주부가 생각난다. 그를 보면 깔고 앉은 집값과 행복은 별 상관이 없음을 느낀다. 비싼 집에 살지 남편도 돈 잘 벌고 건강하지 애들도 활달하고 공부 잘하지 뭐 하나 아쉬울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늘 초조하고 불안하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짜증날 정도다.
단적인 예로 그는 애들을 한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문제지 다 풀었냐, 숙제 다 했냐, 학원엔 안 늦었냐… 끝없이 확인한다. 거실에서 연속극을 보면서도 안테나는 애들 방으로 가 있다. 아이가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엄마의 불안은 절정에 이른다. 애들은 태연한데 엄마는 죽을 지경이다. 잠도 못 잔다. 큰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원형탈모증에 걸려서 머리가 한 움큼씩 빠지기도 한다. 큰애가 유치원 때부터 그랬다. 계속 다른 집 애들과 비교하면서 이 학원 저 학원을 섭렵했다.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듯 일산에서 목동으로, 목동에서 대치동으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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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시험 때면 엄마는 불면증
문제는 말로만 닦달을 한다는 점이다. 애들을 딱 휘어잡고 이끌어가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뭔가를 집중해서 할 시간을 주지 않아 오히려 방해가 되는지도 모른다. 이건 애들을 위한 게 아니다. 자기 불안감을 달래려고 확인하는 것뿐이다. 애들도 그걸 안다. “엄마 제발 좀 그만 종종거려.”
어려서부터 성격도 활달하고 사교성도 있던 그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에게는 잠재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다. 친정 형제들은 다 공부를 잘했는데 그만 좀 처졌다. 어차피 그쪽으로는 틀렸다 싶어서 그랬는지 능력 있는 남자와 일찍 결혼을 했고, 결혼과 동시에 직장도 그만두고 완벽한 가정을 꾸리는 데 매진했다. 그러나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불안과 열등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가 가장 초조해질 때는 아이가 뭔가에 금방 답을 못할 때다. 애들은 어른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는 게 당연하다. 어른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독창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른이 기대하는 답을 얼른 내놓지 못하거나 엉뚱한 답을 하기도 한다. 그는 이럴 때마다 ‘혹시 내가 옛날에 공부를 못해서 애도 그런 게 아닐까?’ 불안해진다고 한다. 자기가 자신감이 없으니 애를 자꾸 다그치게 된다. 이건 애 문제가 아니라 엄마 문제다.
그의 남편도 사실 힘들어하고 있다. 집에 가봐야 애들은 아내가 밀착 수비를 하고 있으니 자기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괜히 끼어들어봤자 애들 스트레스만 더 주거나 애 엄마에게 모르는 소리 말라고 타박받기 쉽다. 그래서 주말이면 골프장으로 직행하는데, 쿨(cool)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콜드(cold)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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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있게 교육에 나서라
엄마가 불안하고 초조해지면 가족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공부는 애들이 하는 것이다. 어떤 때 제일 공부가 즐겁더냐고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엄마가 공부를 재미있게 도와주는 코치가 돼야지, 공부를 지겹게 만드는 방해꾼이 돼서는 곤란하다. 상황에 따라 코치를 하기 어렵다면 열심히 박수치고 응원해주는 쪽이 낫다.
요즘은 잡종 강세의 시대다. 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는 그 지식이 언제 필요한지 정확하게 판단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보들은 컴퓨터 안에 다 들어 있다. 사람은 컴퓨터가 못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전략을 세우고, 자신감 있게 결단을 내리고, 배짱 있게 밀어붙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강남에는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란 엄마들이 많다. 그들은 애들 집안일도 안 시키고 학원만 뺑뺑이 돌린다. 공공장소에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어도 자기 애를 야단치지 않는다. 그런 엄마들이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애들의 역습이 두렵다.
이번호로 ‘마음 살리기’ 연재는 끝난다. 인간 본연의 행복을 찾는 마음 살리기의 여정은 또 다른 모습으로 독자들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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