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섬세했던 20대 시절을 가로지르는 남미 대륙여행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영화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지만 승산은 별로 높지 않은 소재들이 있다. 5·18 같은 역사적 사건이나 체 게바라 같은 실존인물이 대표적이다. 잘해야 ‘본전치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는 이 매혹적이면서도 부담스러운 소재를 어떻게 조리할 것인가에 대해 영화 모두에서 분명히 한다. “이것은 영웅적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통된 꿈과 열망으로 한동안 나란히 나아갔던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혁명가로 나서기 이전,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삶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던 20대 청년 게바라가 겪는 여행담에 초점을 맞춘다.
의대 졸업을 앞둔 약골의 평범한 대학생 푸세(게바라의 어린 시절 애칭)는 생화학도인 친구 알베르토, 이들을 싣고 갈 낡은 오토바이와 함께 남미 대륙여행을 떠난다. 장장 8개월에 이르는 이들의 여행길 한편을 장식하는 것이 황량한 파타고니아 사막, 페루의 잉카 유적, 유장한 안데스 산맥 등 거대하고 아름다운 남미의 자연인 반면, 다른 한편을 채우는 것은 대주주의 횡포에 땅을 잃은 가난한 부부, 하루벌이에 목을 빼는 탄광 노동자, 평생을 뼈빠지게 일했으면서도 약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노인, 손발이 뭉개진 나환자들이다.
영화는 이처럼 오른쪽 화면과 왼쪽 화면으로 도식화될 수 있는 이야기의 위험을 20대 청년들이 보여주는 생의 활력으로 지워나간다. 넉살 좋은 알베르토와 때로 답답할 만큼 정직하지만 역시 천상 스물셋 청년인 푸세는 이집저집 잠자리를 구걸하고, 때로 밥 한끼를 얻기 위해 악의 없는 거짓말을 하고, 지역의 젊은 여자들과 작은 에피소드를 일으키면서 유쾌한 여행을 이어나간다. 특별히 큰 사건도, 주인공을 혁명가로 ‘떨쳐’ 일어서게 하는 대단한 계기가 있는 것도 아니라 영화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밋밋함이 를 흔해빠진 영웅담의 함정에서 구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조심스럽게 ‘민중’과 가까워지는 게바라의 변화를 응시한다. 나환자촌에서 잠시 자원봉사를 하던 게바라는 의료진과 환자들의 주거지를 가르는 강물을 한밤중에 가로질러 건너감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예견한다. 이 장면을 ‘체’의 탄생이라고 보면 도식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평범한 한 젊은이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느낄 때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영화는 남미의 비참한 현실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대신 마지막에 게바라를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을 흑백의 고정화면으로 연결해 보여준다. 그 장면들이 끝나고 현재 쿠바에서 생존해 있는 알베르토 그라나도(82)의 주름진 얼굴이 클로즈업될 때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져오는 걸 피할 도리가 없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열정과 자신감 넘치는 혁명가 게바라가 아니라 흔들리는 섬세한 눈빛의 청년 푸세를 연기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에서도 주인공으로 출연했으며 스페인에서 최근 상종가를 치고 있는 인기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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