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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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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108강의실’들

등록 2003-05-29 00:00 수정 2020-05-02 04:23

요즘 대학생들은 세미나가 끝나도 막걸리집을 찾지 않고 호프집을 찾는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사회과학 책으로 세미나를 끝내고 라면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팔뚝질로 민중가요를 불러젖히던 문화는 80년대 대학의 주류문화였다.
당시 학교 앞 주점은 술과 음식을 주는 ‘식당’ 그 이상의 장소였다. 시내로 데모라도 나가는 날이면 가방을 모아둔 뒤 식당 아주머니께 “무사히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게 생활이었다. 함께 나간 선후배가 연행이라도 되는 날이면 주점의 막걸리가 동나는 게 예사였다.
2003년 전국의 대학가에는 또 다른 ‘108강의실’들이 가물에 콩 나듯 있다. PC방과 당구장, 외래음식점 등에 ‘주류’ 자리를 내주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연세대 앞 ‘연희집’은 80년대 중반부터 신촌 뒷골목 한켠에 위치한 전형적인 주점으로, 학생들이 벽에 붙은 큰 종이 위에 외상술값을 스스로 적어놓게 하는 곳으로 이름나 있었다. 신촌에는 ‘섬’이나 ‘페드라’가 유명한 주점이다.
이 밖에 80년대식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주점으로는 서울대 앞 ‘태백산맥’, 고려대 앞 ‘고모집’, 성균관대 앞 ‘종로분식’, 서강대 앞 ‘물레야’, 중앙대 앞 ‘안전지대’ 등이 있다. 이곳은 재학생들은 물론이고, 최루탄에 찌들어 막걸리를 들이켰던 대학생활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가끔씩 찾는 직장인들도 주요 고객이다.

글= 서재철 |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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