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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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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급등은 조작이었나

등록 2002-07-24 00:00 수정 2020-05-02 04:22

시장흐름과 다른 길 걸었던 에쓰오일 주가…조작 혐의 둘러싸고 경찰과 회사측 팽팽히 맞서

경찰은 지난 7월18일 에쓰오일 김선동 회장 등 임원 9명이 주가를 조작하고 분식회계를 한 혐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에쓰오일 쪽이 혐의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는데다, 수사를 지휘한 검찰도 경찰에 영장청구 전 보강수사를 지시함에 따라 사건 실체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이 발표한 김 회장의 혐의사실 중 대표적인 것은 ‘주가조작’이다. 경찰은 김 회장 등이 에쓰오일의 주식 유통물량을 줄인 뒤 고가주문 등의 방식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김 회장 등은 지난 99년 12월 임직원 등 명의로 증권계좌 2만3천여개를 개설한다. 그리고 이 계좌를 이용해 회사자금 3390억원을 들여 1020만주의 자사주식을 사들였다. 이어 2000년 3월부터 지난 5월까지 박아무개씨 등 14명의 이름을 빌려 만든 계좌에 1천억원을 입금해 이 돈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주가를 끌어올렸다고 한다.

갑작스런 주가 반등의 원인은?

경찰이 발표한 에쓰오일의 행태는 전형적인 주가조작이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경찰의 발표내용만으로 보면, 임직원들의 주식매입은 주식시세 조종의 첫 단계다. 주식유통 물량을 줄여 주가를 끌어올리기 쉽게 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에쓰오일의 주식매입은 단위금전신탁을 통해 이뤄진 일로 모두 공개된 일이었다. 주가조작을 위한 매집과는 전혀 다르다. 에쓰오일 쪽은 임직원들의 주식매입은 적대적 인수합병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회사 쪽은 “임직원들이 회사의 소유 및 지분구조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장기보유 주주 확보정책에 자발적으로 호응한 것”이라며 “회사에 돈을 빌려 산 주식의 주가변동으로 인한 손익은 모두 당사자가 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99년 말 임직원들의 주식 매입은 회사 쪽이 임직원의 차명계좌로 주식을 사들인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투자’한 것이며, 당사자들은 회사의 돈을 빌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종업원들이 회사에서 돈을 빌려 자사주를 사들인 것은 당시 흔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뒤 회사 쪽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렸는지 여부다. 경찰은 “회사 쪽이 2000년 3월부터 차명계좌에 넣은 1천억원으로 회장실·회의실 등에서 사이버 거래를 통해 2만3571차례에 걸쳐 고가주문, 허수주문을 했다”며 “이를 통해 1만5500원대이던 주가를 최고 5만6천원(액면가 5천원 기준)까지 끌어올렸다”고 발표했다. 회사 쪽은 이 또한 회사 쪽에 우호적인 관계자가 주식을 매매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회사 쪽은 “주가상승은 전체 주식시장의 활황국면에 힘입은 내재가치 실현과정으로 파악돼야 한다”며 “주가가 올랐으나 이를 통해 시세차익을 실현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경찰도 회사 관계자들이 주가가 끌어올린 뒤 팔아 시세차익을 실현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일이 벌어졌다면, 시세차익을 얻지 않았다고 해서 주가조작 혐의를 벗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증권거래법은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종하는 것 자체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를 끌어올리려다 오히려 주가가 떨어져 손실을 입었다고 해도 ‘시세조종’은 성립될 수 있다는 게 금융감독원의 설명이다. 문제는 에쓰오일 쪽이 주가를 정말 조작했는가, 그리고 했다면 왜 그랬는가 하는 점이다.

당시의 주가 움직임은 에쓰오일 쪽의 항변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회사 쪽의 주가조작이 있었다고 경찰이 지적한 시점에, 에쓰오일의 주가는 전체 주식시장과는 매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그래프 참조). 2000년 초부터 2001년 9월까지 종합주가지수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에쓰오일의 주가는 2000년 3월 반등을 시작해 6월 이후에는 연말까지 큰 폭으로 올랐다. 2001년 들어서도 주가 상승세는 이어졌다. 이런 주가 상승은 주가를 ‘관리’한 것 아니었느냐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주가상승이 에쓰오일의 내재가치를 반영한 것이었다는 회사 쪽 주장도 공감을 얻기 어렵다.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99년 4013억원에서 2000년 3717억원, 지난해 2162억원으로 줄었다. 순이익도 99년 2878억원에서 2000년 53억원, 지난해 191억원으로 2000년 이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주가가 내재가치를 반영해 상승했다는 설명과는 다른 점이다.

더욱이 경찰은 2001년 실적과 관련해 회사 쪽이 분식회계를 한 혐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은 “에쓰오일이 재고자산 평가의 기준이 되는 12월 판매가격 단가를 높여 경상이익을 293억원, 당기순이익을 268억원 과대계상했다”고 밝혔다. 경찰의 주장이 맞다면 에쓰오일은 2001 회계연도에 당기순손실을 냈을 것이다. 회사 쪽은 이에 대해 “이런 회계처리는 매출액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실거래 가격을 적용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저평가된 보유재고자산을 적정하게 평가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회사 쪽의 주장이 맞다고 해도 2001년 에쓰오일의 실적은 주가가 내재가치를 반영해 올랐다는 설명을 수긍하기 어렵게 한다. 오히려 이처럼 실적이 나빴던 것은 회사쪽에 ‘주가 관리’의 유혹을 불러일으킨 것 아니냐는 시각도 많다. 회사로서는 2000년 이후 주가가 계속 떨어졌다면, 99년말 주식을 산 임직원들의 반발을 살 가능성이 컸다.

기업 관행에 경종 울릴 듯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분식회계 부분에 대해 경찰에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실제로 비자금 조성 혐의의 경우 지난 94년부터 99년 사이 30억원을 조성했다는 내용이어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주장하는 분식회계도 주가조작과 직접적 관련은 없어 보인다. 경찰이 주장하는 주가조작은 2000년 3월부터 시작됐으나, 분식회계는 올 들어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내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에쓰오일 쪽이 주가조작 혐의까지 벗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경찰은 검찰의 수사 보강 지시에 따라 에쓰오일 쪽 차명계좌로 주식을 사고 팔 때 당사자들이 서로 짜고 주식을 매매했는지,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고가주문을 했는지에 대한 증거를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분이 명확해지면 김 회장은 주가조작 혐의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주가조작은 확실히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99년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계열사들의 도움을 얻어 현대전자의 주가를 ‘관리’한 데 대해서도 시세조종 혐의로 기소했으며, 법원의 유죄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하지만, 증시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을 일반적인 주가조작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즉, 김 회장 등 회사 임원들이 주가를 끌어올려 제 잇속을 채웠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기업들이 관행적으로 해오던 비정상적인 ‘주가 관리’에 이번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경종을 울리게 됐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에쓰오일의 주가는 사건이 발표된 뒤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한 증권사 리서티팀장은 “에쓰오일 사건으로 외국에서 퍼지고 있는 ‘신뢰의 위기’가 우리나라에도 밀려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부 있지만,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을 고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증시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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