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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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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고용하면 서비스 질 낮아진다고요?

국민연금공단 콜센터, 정규직 전환 뒤에도 서비스 1위

부산 동구청, 직접고용 뒤 오히려 비용 절감
등록 2019-08-10 14:13 수정 2020-05-03 04:29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월29일 오후 정규직 전환 사업장을 방문했다. 고용노동부 제공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7월29일 오후 정규직 전환 사업장을 방문했다. 고용노동부 제공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이후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양면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고용불안 해소, 임금 인상 효과와 별개로 공공기관 인건비 부담이 늘고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하면 공공서비스 효율이 떨어진다는 부정적 인식도 있었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직접고용과 자회사 전환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지속됐다. 청소·경비·콜센터 등 이른바 ‘비핵심 업무’를 자회사로 전환한 공공기관도 많았다. 이 때문에 자회사로 전환한 공공기관에서는 기존 ‘간접고용’으로 인한 문제점이 지속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논란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 공공서비스 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거나 비용을 절감한 공공기관들도 있었다.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의 책임감, 소속감 증가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정서적 변화가 공공서비스 개선 등 실질적 변화로 이어졌다.

*우아무개씨와 박상민씨의 사례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용역업체에서 소속감과 자부심은 없었다

국민연금공단 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공공기관이 콜센터 노동자를 직접고용한 첫 사례였다. 2012년 국민연금 콜센터 용역업체에 입사한 우아무개(42·여) 상담주임은 2019년 1월1일 정규직 전환 전까지 두 차례 소속 용역업체가 바뀌었다. 10년 넘게 콜센터 상담 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기면서 상담 업무에 대한 정규직들의 이해도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첨부 문서 확인이 필요한 경우 국민연금공단 지사의 담당 부서로 상담 전화를 넘기더라도 “왜 콜센터에서 처리하지 않고 지사로 넘기냐”는 핀잔을 듣곤 했다. 전문 상담을 위해 국민연금 외에 기초연금 기본 업무 등을 익혔던 우씨는 점차 소속감과 자부심을 잃어갔다.

박상민(44)씨는 2012년 11월1일 부산 동구청에서 용역계약을 한 용역업체에 입사했다. 6년 넘게 동구청 건물 내 전기설비를 점검, 관리했지만 신분은 용역업체 노동자였다. 6년 새 용역업체도 세 차례나 바뀌었다. 용역업체가 바뀌면 고용이 승계됐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해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했다. 이 때문에 구청과 용역업체가 갑과 을의 관계였다면, 용역업체와 노동자는 을과 병의 관계였다. 해마다 다시 계약해야 하니까 비효율적으로 업무 지시를 하더라도 시키는 대로 할 뿐, 개인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 작은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우씨는 2019년 1월1일 정규직 전환 후 난생처음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노동절인 5월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국민연금지부 소속 조합원으로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나가기도 했다. 우씨는 콜센터 동료들과 함께 집회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성과급 등으로 동료들끼리 과당경쟁을 붙이거나 불합리한 업무 지시를 해도 근로계약서 조항 때문에 단체행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씨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전환 전 근속 햇수 인정,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 해소 등 처우 개선에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주니까 나도 구성원이 된 것 같더라고요. 아직은 정규직 전환 뒤 이룬 성과는 없지만 노조 활동으로 근무환경이 개선되리라고 생각해요.”

2018년 9월 시설 관리 쪽 노동자 대표에게 “정규직 전환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박씨는 먼저 베트남에 있는 배우자에게 전화했다. 3년 동안 연애하다 지난해 4월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박씨의 생활이 불안정해 어쩔 수 없이 떨어져서 지내야 했다. “오빠 이제 정규직 됐다! 오빠 따라 한국에 와도 안 굶길 수 있다.” 박씨가 배우자에게 전한 첫마디였다. 2019년 1월1일 근로계약서에 이름 석 자를 서명한 박씨는 곧장 배우자의 비자를 신청했다. 7월 베트남에 가서 배우자를 데리고 왔다. 박씨 부부는 자녀 둘을 낳는 가족계획도 세웠다. 근로계약 갱신 여부가 불투명해 결혼은커녕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던 박씨는 비로소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서비스 질 1위, 예산 절감

국민연금공단의 정규직 전환 당시 내부에서도 공공서비스 질 저하로 인한 국민 불만 증가 등의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국민연금공단은 5월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관한 콜센터 서비스품질지수(KSQI) 평가에서 공공부문 48개 기관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정규직 전환 뒤에도 공공서비스 질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15년 연속 1위를 기록한 것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과 한 통화에서 “처우 개선과 갈등·대립 해소, 전문성 강화 등의 과제가 남았지만 노동자 개인의 고용안정과 직장 내 차별 해소가 공공서비스 질 향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구 단위의 비교적 작은 기관이었던 부산 동구청도 전환 인력 관리나 예산 편성 등에 한계가 있었다. 동구청은 직무의 중요성과 난이도를 반영한 직무 중심 임금체계를 만들었다. 정액 급식비와 기본급의 80%에 해당하는 명절 휴가비, 복지 포인트 등 별도 수당도 지급했다. 그 결과 전환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되리라는 우려와 달리, 별도의 추가 예산 없이 정해진 예산 범위에서 충당할 수 있었다. 실제 2019년 정규직 전환 비용(6억4527만원)은 같은 해 용역 예정가(7억4677만원)를 크게 밑돌았다. 용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서 절감한 비용은 휴게실 마련 등 처우 개선으로 선순환했다. 여전히 남은 불씨

2017년 5월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말했을 때 우씨 역시 기대가 커졌다. 하지만 우씨도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집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알고 있었다. “신분 상승이나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해달라는 건 아니었어요. 자신이 하는 일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싶다는 것일 텐데 의미가 잘못 해석돼 안타까울 때도 있어요. 적절한 인정이라는 기준이 모호하고 제각각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 차별과 위험부담 등을 없애려고 시작한 정규직 전환 취지를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인건비 부담, 공정성 논란 등의 이유로 동구청 안에서도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었다. 직원들 사이 견해 차이와 내부 대립, 반발도 감지됐다. 만 60살 정년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 17명 가운데 13명이 50대였던 동료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기도 했다. 박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공무원과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임금을 많이 올려달라’는 것이기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활이 안정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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