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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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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우주를 통틀어 세계 최초

32살 암 경험자 김태균씨가 보내온 ‘인생 표류기’
등록 2019-07-29 09:35 수정 2020-05-03 04:29
22살에 혈액암 진단을 받았던 암 경험자 김태균씨.

22살에 혈액암 진단을 받았던 암 경험자 김태균씨.

대략 4년의 혈액암 치료와 5년의 추적검사, 잔병치레가 끝나고 난 재작년부터 내 안의 열정이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내 나이 딱 30살이었다.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 피할 수 없는 경쟁과 평가를 겪어야 할 텐데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때린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흠씬 두들겨 맞아버린 느낌이랄까. 유튜브나 책에선 큰 시련을 이겨내면 으레 무언가 특별한 일을 시작하거나, 꿈과 희망의 전도사가 되고는 하던데 나는 그냥 모든 게 지겨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즈음 가장 열정적이었던 때라곤 포장한 피자가 식을까봐 집으로 파워 워킹하던 때밖에 없었으니까. 희한한 일이었다.

햇빛이 너무 밝으면 죽는 개복치 괴담처럼

점점 더워지기 시작한다. 또다시 사상 최악의 여름을 기대하란다. 여름이면 언제나 시간이 발을 삐끗한 듯 약간씩 절뚝거리며 흘러가는 느낌이다. 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이미 도착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요즘 대화 주제는 언제나 회사, 주식, 사회생활에 관한 것뿐이다. ‘어느 회사의 주식이 오르고 우리 부서의 어느 팀장이 라인에서 벗어났다’ 혹은 ‘이런 사업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 꼭 한번 해보고 싶어’ 따위의 것들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하던 대로 거품이 일어나는 맥주를 초점 없이 바라보다 가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에 끼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투병 생활로 약간은 사회에서 이탈해 있었던 존재라는 걸 그때 느끼곤 한다.

그런 날은 아무리 신나게 술을 마시고 돌아가도 아주 약간은 외로운 느낌이 포스트잇처럼 온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꿈이 있는 듯하다. 영화 에서 송강호씨 대사처럼 “친구야, 너희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난 정반대의 길을 걷는 것 같다. 희망차던 아이가 시련을 겪으며 점점 무기력하고 시큰둥한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마치 ‘32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고 할까. 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는 듯해 참으로 유감이다.

친구들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내 안의 열정은 완전히 사라진 듯 사소한 일에도 쉽게 무기력해지고 좌절하곤 하니까. 햇빛이 너무 밝아 죽는다는 괴담이 있는 개복치라도 된 느낌이다. 힘든데 어디 가서 말하기엔 조금은 부끄러울 정도의 힘듦이다. 아직까지도 잔병치레로 고생하는데, 두 달에 한 번꼴로 일주일 정도 알 수 없는 염증으로 얼굴이 부어오르고 감기 걸린 듯 몸이 아프다. “1일에 치료가 끝났으니까, 2일부터는 정상인!”은 아니니까. 인생은 영화가 아니라서 병원 생활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주변 사람들이야 해피엔딩 이후의 삶은 관심 없겠지만, 주인공은 이제부터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다. 오히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하는 셈이다. 게다가 주변의 기대치라는 게 있다. 죽다 살아났다면, 좀더 세상을 즐거워하며 살기를 바란다. 몇천만원을 써서 살려놨으니까 나처럼 ‘아… 살아버렸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상도덕에 어긋난달까. 암 투병 이후 행복하게 살아가야만 할 것 같은 상도덕이 내 목을 조르는 것 같다는 말에 공감해줄 사람이 주변에는 없다. 그럴 때면 정말 개복치와 포유류의 거리만큼 나와 친구들의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 든다. 아가미로 육지에서 호흡하는 게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포유류 친구들이 공감하기는 어렵다.

이 글을 빌려 고백하자면 나는 도움이 되거나 훌륭한, 행복한 사람 같은 거창한 인간이 되기에는 무리다. 타인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그럭저럭 만족이고, 다만 이 한 몸을 유지하며 즐겁게 살고 싶다. 힘들고 견뎌야 하는 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그런 방면으로 에너지를 투병 생활에 전부 쏟아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사회 복귀가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힘들고 견뎌야 할 일은 투병 생활에 쏟아서

암 투병을 마치고 추적검사가 진행되는 5년 동안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건설 보조, 사무직, 판매 아르바이트에, 복학해서 무역학과에서 화학과로 전과도 시도했다. 몇 년 동안 모든 일이 미친 듯이 힘든 건 없었지만, 소소하게 지겨웠다. 지루한 게 아니라 지겨웠다. 지겨워서 못살겠는 건 답도 없다. 뭘 해도, 아니 하기도 전에 이미 지겨워 미칠 것 같았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다. 불행하게도 나는 우울하더라도 개드립(‘개소리 + 애드리브’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을 참을 수 없어 하는데, 사람들이 내가 꽤나 의연한 타입이라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다들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뭐 진지하게 들어준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아무에게나 떠들고 다녀도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은 것처럼 답답하고 외로웠다. 우울함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어서 잠깐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기도 했다.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마음을 다잡은 계기는 혼자 운동장을 산책하면서였다.

그곳에서 운동장을 다양하게 휘젓고 다니는 사람들을 봤다. 그들을 보면서 인생길은 직진이 아니라는 걸, 심지어 길로 걷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 인생은 너무 다양해서 함부로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내 인생은 우주를 통틀어 세계 최초라서, 꽤 많은 철학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내 인생에 대한 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사실은 ‘풍만한 만족감’을 주는 길을 찾아가고 싶다는 거다. 그 길을 걷는 노력은 돈이 많건 적건, 몸이 불편하건 시도할 수 있으니까. 내가 엉망진창인 글솜씨로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도 일단은 여기에 있다. 그 길을 걷다보니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잘 안 팔리는 수필집을 내보기도 한다. 그건 꽤나 만족스럽다. 인생길이 직진만은 아니라는 생각은 암 투병 뒤 사회 복귀라는 부담을 좀 덜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럭저럭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인생길은 직진만 있지 않다

그 원동력으로 올해는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 실력은 형편없고 이 길이 맞는지조차 모르겠지만, 무기력함과 즐거움의 경계를 비틀비틀 걷고 있다. 가끔 이 여정의 마지막이 어디인지 생각한다. 물론 걷다보면 멈추는 날이 오고 그 자리가 나의 종착역이라지만, 종착역 여부를 신경 쓰는 건 아니다. 마지막 길에 지금 30대의 여정이 행복했던 산책으로 추억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여정에 부디 행운을 빈다. 나도 그리고 물론 여러분도.

김태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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