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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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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우리는 왜 ‘더’ 불안한가?

미국보다 근거 없이 기준 높고

정부 제공 ‘대응요령’도 부작용 많아
등록 2019-05-11 13:27 수정 2020-05-03 04:29
서울에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5월5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미세먼지 신호등이 ‘나쁨’을 나타내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서울에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된 5월5일 오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설치된 미세먼지 신호등이 ‘나쁨’을 나타내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지난 4월29일 회원 수가 4만7천여 명에 이르는 서울 강북의 한 지역 맘카페에 ‘미세먼지 신경 쓰는 초등학교 있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교육은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는 이 학부모는 자녀의 입학을 앞두고 이 지역 초등학교 세 곳 중에 “미세먼지 신경 많이 쓰는 학교가 어디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다른 학부모는 댓글에서 “ㅇ초 작년에 OOOO 공기청정기 들어왔어요. (중략) 젊은 선생님들은 공(기)청기 꼭 돌리시고 창문 못 열게 하고 아이들 하교시 마스크 착용하라고 말씀도 해주세요”라며 해당 공기청정기 자료 사진까지 첨부해 올렸다.

미세먼지 대책을 ‘학교 선택 기준’으로 여기는 학부모가 등장할 정도로 한국의 ‘미세먼지 공포’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2018년 한 해 서울시교육청에 공식 접수된 미세먼지 관련 민원만 252건에 이른다. 김현철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은 “공기청정기 설치, 휴교령, 자율등교제, 미세먼지 관련 야외활동 시정 요청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교 현장에서도 미세먼지 ‘나쁨’인 날엔 비상이 걸리고, 아이들도 육체적·심리적으로 영향받는다. 서울 문래초등학교 5학년 김노을양은 5월7일 전화 인터뷰에서 미세먼지 고충을 털어놨다. “미세먼지가 ‘나쁨’인 날엔 학교 보안관실에 노란 깃발이 꽂혀 있어요. 노란 깃발이 있는 날은 운동장에 못 나가요. 등굣길에 노란 깃발이 꽂혀 있으면 되게 기분이 나빠요.”

초등학교 체육 시간은 고작 일주일에 두 차례 총 2시간인데, 미세먼지 탓에 강당 또는 교실에서 하는 실내 체육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나마 강당 체육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고, 나머지는 교실 체육 혹은 대체 수업이다. 노을이는 “체육 시간 등 놀 시간에 제대로 못 놀고, 교실 안에 있으면 답답하니까 불쾌하다”고 했다.

괜한 불편 자초하는 건 아닌가

교실에서 어떻게 체육을 하는지 물었더니, 한 반 30여 명이 교실에서 책상을 치워놓고 “침묵의 피구” 같은 걸 한다고 했다. “말을 안 하고 뛰지 않고 사뿐사뿐 걸으면서 하는 피구인데, 공을 피하다보면 뛰게 될 때도 있다”고 한다. 노을이는 “노란 깃발이 있으면 창문을 닫고 교실에 한 대 있는 공기청정기를 돌린다”며 미세먼지가 나쁨인 날 답답함도 나쁨에 이르는 교실 풍경을 전했다.

미세먼지가 나쁨인 날, 한국의 대부분 유치원과 초·중·고·특수학교에서 문래초와 비슷한 풍경이 연출된다. 2018년 4월 강화된 환경기준을 반영한 교육부의 ‘고농도 미세먼지 대응 실무 매뉴얼’에 따른 조처이기 때문이다. PM2.5(미세먼지 입자 크기가 지름 2.5㎛ 이하·초미세먼지) 농도가 36㎍/㎥ 이상이거나 PM10(미세먼지 입자 크기가 지름 10㎛ 이하) 농도가 81㎍/㎥ 이상인 상황이 1시간 이상 지속되면, 각급 학교는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에 따른 관계 기관의 협조 요청 사항을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해당 매뉴얼에는 실외 활동 자제하기와 창문 닫기 등 조치 사항이 제시돼 있다.

노란 깃발을 싫어하는 노을이 역시 “미세먼지가 건강에 안 좋은 것은 확실”하고 “학생들의 건강이 중요하니까” 학교에서 실외 활동을 자제시키는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경부와 교육부 등 관련 부처에서 발표했고, 교사도 학부모도 학생도 정부 발표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확실’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는 미세먼지와 관련한 불편 중에서, 국제 기준으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해로운 불편을 감당하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것이 PM2.5와 PM10에 대한 환경기준이다. 환경부는 미세먼지 오염도를 ‘좋음’ ‘보통’ ‘나쁨’ ‘매우 나쁨’으로 평가하는데, 이 기준이 미세먼지 정책 선진국인 미국보다 엄격하다.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아주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미국 정부가 권고하는 행동 요령이 우리나라보다 자기 국민의 건강을 소홀하게 생각하며 만든 허술한 것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며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촉구한다. 근거 없이 환경기준만 높여놓고 저감 조처는 부실할 경우, 결과적으로 미세먼지 나쁨 일수만 늘려 괜한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준, 왜 미국보다 엄격할까

환경부는 ㎥당 PM2.5 농도가 36~75㎍일 때 ‘나쁨’, 76㎍ 이상일 때 ‘매우 나쁨’으로 고시한다. 미세먼지 대책 선진국인 미국은 한국보다 이 기준이 훨씬 느슨하다. 미국은 PM2.5 농도가 24시간 평균 ㎥당 36~55㎍일 경우 일반인에게는 영향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고 ‘민감군 나쁨’으로 분류한다. 56~150㎍이 되어야 ‘나쁨’에 해당하고, 151~250㎍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매우 나쁨’이다.

PM10 기준은 차이가 더 크다. 한국은 81~150㎍일 때 ‘나쁨’, 151㎍ 이상일 때 ‘매우 나쁨’이다. 미국은 55~154㎍은 ‘보통’이고 155~254㎍ 역시 일반인에게는 영향이 별로 없는 ‘민감군 나쁨’이다. ㎥당 255~354㎍이 되어야 ‘나쁨’이고 355~424㎍이 되면 그제야 ‘매우 나쁨’으로 평가한다.

미세먼지 환경기준에 따른 한국 정부의 행동 요령도 장 교수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PM2.5 농도가 36㎍/㎥, PM10 농도가 81㎍/㎥ 이상인 ‘나쁨’ 상태가 1시간만 지속돼도, 모든 시민에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을 삼가고 창문을 닫으라는 등 비과학적이며 오히려 건강에도 나쁠 수 있는 대책을 권한다.

미국은 미세먼지 오염 수준에 따라, 건강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육체 활동의 강도나 시간을 줄여나가도록 권고한다. 활동 강도에 따른 호흡량 차이로 오염 물질 흡수량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모든 사람에게 실외 육체 활동을 피하도록 권고하는 기준은 PM2.5 농도가 24시간 평균 250㎍/㎥을 넘거나, PM10 농도가 425㎍/㎥ 이상일 때다.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PM2.5 기준 7배, PM10 기준 5배 높을 때 비로소 일반인에게 ‘실외 활동 자제’라는 초강력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셈이다.

환경부 푸른하늘기획과 담당자는 “환경기준은 한 국가의 환경 목표이기 때문에 국가마다 다르다”며 “기준이 너무 낮으면 개선 노력을 소홀히 할 수도 있고, 환경기준을 강화해달라는 국민의 요구도 있어 기준을 강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목표만 높여놓고 실제 저감 효과가 없으면) 국민한테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기 때문에 (민감군과 일반인 기준을 달리하는 등) 좀더 섬세하게 제도를 다듬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인정했다.

환기·운동 안 하면 더 해로울 수도

한국의 각급 학교에서 미세먼지 농도가 PM2.5 기준 36㎍/㎥ 이상이거나 PM10 기준 81㎍/㎥ 이상일 때 ‘고농도 미세먼지’라며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은 오히려 학생 건강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가령 실외 체육 활동을 자제하면, 가뜩이나 부족한 한국 학생들의 신체 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될 우려가 높다. 교육부가 2018년 3월 발표한 2017년도 학생 건강검사 표본통계를 보면, 한국 초·중·고 학생 상당수는 이미 권장 운동량(주 3일 이상 격렬한 운동)에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몸을 안 움직인다. 권장 운동량 실천율이 초등학생 58.30%, 중학생 35.69%, 고등학생 24.38%다. 미세먼지가 의학적으로 건강에 해로운 수준인 날이 아니라면, 오히려 운동 부족에 의한 면역력 저하를 더 걱정해야 할 정도다.

실내체육시설(강당)에서 체육을 한다지만 좁은 강당에서 한 번에 수업할 수 있는 학급 수는 제한적이다. 또 4월 기준 전국 410개 학교는 강당이 구비돼 있지 않은데, 학생 수가 적거나 학교 터가 좁아 앞으로도 강당 신축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다수다. 강당이 아닌 교실에서 권장 운동량을 충족할 ‘격렬한 운동’은 어지간해서는 쉽지 않다.

정부는 창문을 닫고 공기정화시설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학부모들 역시 환기보다 공기청정기를 더 믿는다. 하지만 창문을 열고 환기하지 않아서 생기는 피해가 창문을 닫아서 얻는 이득보다 더 클 수 있다. 환기하지 않고 공기청정기를 돌리면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해 뇌에 산소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고, 휘발성유기화합물(VOC)과 오존 등 유해 물질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ㅇ초 학부모를 안심시킨 OOOO 공기청정기 제조업체 홍보 담당자 역시 에 “공기청정기를 사용하더라도 하루 30분씩 한 번, 혹은 15분씩 두세 번은 창문을 열어 환기하도록 사용설명서에 안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기청정기를 돌리더라도 환기는 필수인데, 정부에서는 국제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미세먼지 기준을 들이대며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돌리라고 권장하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학교보건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7월부터 각급 학교에 공기측정기와 환기 설비가 포함된 공기정화기가 설치되면 해결될 문제라고 우려를 일축한다. 그러나 입법 예고된 개정령안을 보면, 공기정화기가 아니라 ‘공기정화설비와 공기청정기 등 공기를 정화하는 설비’를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축 학교는 환기 설비를 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미 공기청정기를 들여놓은 학교에서 환기 설비는 의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에너지 절감·환기 등 ‘상식’ 회복해야

장재연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교실마다 공기측정기를 다느냐?”며 현 상황이 얼마나 비정상인지 한번쯤 되돌아보도록 하는 질문을 던졌다. 장 교수는 “미세먼지가 걱정되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환기를 자주 하는 등 상식적인 대처를 하면 되는데, 창문은 닫고 에너지 사용이 느는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운동을 못하게 하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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