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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 가난한 동네에서 더 포악했다

이종태 고려대 교수팀, 72곳 8년 분석… 사회경제지표 열악한 곳 미세먼지 초과사망률↑
등록 2019-05-11 13:18 수정 2020-05-03 04:29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18년 1월1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차량2부제 확대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서울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2018년 1월1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차량2부제 확대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미세먼지는 평등할까 불평등할까.

부자와 가난뱅이를 가리지 않고 숨 쉬는 사람 모두에게 악영향을 줄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평등하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일수록 미세먼지 때문에 건강이 더 나빠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는 불평등하다.

이 질문의 답은 중요하다. 정부가 미세먼지 정책을 세울 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 누가 얼마나 건강 피해를 심하게 볼지 알아야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미세먼지를 ‘불평등’과 연결 지어 10년 넘게 꾸준히 연구한 학자가 있다. 이종태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다.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미세먼지의 건강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가 서울에서 천식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 15살 이하 어린이들을 조사해 2006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미세먼지 농도는 고소득 지역에서 높은 반면 천식 환자 비율은 저소득 지역에서 높았다.

이 교수는 최근 미세먼지의 불평등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얻었다. 전국 7대 주요 도시 72개 시·군·구를 분석한 결과 사회경제적 지표가 열악한 지역일수록 미세먼지에 따른 상대위험도가 컸다. 미세먼지가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고, 건강불평등을 더욱 키운다는 의미다. 2006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시간별로 측정한 미세먼지(PM10) 자료와 통계청 사망 원인 통계 등을 분석한 결과다. 이 연구는 아직 논문 출판 전으로, 학술지의 심사를 거치는 단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세먼지 똑같이 높아질 때 초과사망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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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와 동료 연구진은 미세먼지가 10㎍/㎥(1세제곱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 높아질 때의 자연사 증가율(초과사망률)을 지역별로 살폈다. 초과사망률이 1%면 기존에 100명이 자연사하던 곳에서 미세먼지가 10㎍/㎥ 높아질 때마다 1명이 추가로 죽는다는 뜻이다. 미세먼지가 평등하다면 어느 지역이나 초과사망률이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지역에 따라 달랐다. 정확히는 박탈지수가 높은 지역일수록 초과사망률이 높았다.

박탈지수는 한 지역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알 수 있는 지표다. 주거 밀집도, 무주택자 비율, 열악한 주거환경률, 자동차 미소유율, 1인 가구 비율, 여성 가구주 비율, 노인 인구율, 고졸 미만 비율 등 12개 세부지표가 반영됐다. 박탈지수가 높을수록 주거 환경이 낙후됐고 무주택자나 저학력층이 많이 산다는 뜻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종로구 2.76% 대 서초구 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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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서울에서 박탈지수가 가장 높은 종로구(초과사망률 2.76%)와 가장 낮은 서초구(초과사망률 0.43%)를 비교해볼 수 있다. 종로구와 서초구에서 자연사한 사람은 각각 연평균 737명과 1115명이다. 서초구의 인구가 두 배 이상 많아서 사망자도 많다. 그런데 미세먼지가 10㎍/㎥ 늘 때 생기는 초과사망자 수는 거꾸로 종로구(연간 20.4명)가 서초구(연간 4.8명)보다 많다. 만약 서초구의 박탈지수와 초과사망률이 종로구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지금보다 연간 26명 정도가 더 죽을 것이다.

박탈지수와 초과사망률이 비례하는 경향은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 교수는 “기타 대기오염(이산화황, 이산화질소) 농도나 65세 이상의 노인 비율, 지역내총생산 같은 지표 등을 고려한 뒤에도 박탈지수와 상대위험도가 유의한 상관관계를 보였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불평등하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지역에서 미세먼지 피해가 더 큰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여러 가설을 가지고 있다. 먼저 주민들이 미세먼지 발생원이나 고농도 영역에 가까이 살 가능성이 있다. 입자 개수는 비슷해도 상대적으로 독성이 강한 미세먼지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미세먼지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형 사업장을 살펴봐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박탈지수가 낮은 편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차 없는 날’을 맞아 시민들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박탈지수가 낮은 편인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차 없는 날’을 맞아 시민들이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현재 법적으로 ‘미세먼지 취약계층’은 어린이·영유아·노인·임산부·호흡기질환자·심장질환자 등 미세먼지 노출에 민감한 이들과 옥외 근로자·교통시설 관리자 등 미세먼지 노출 가능성이 큰 이들이다. 올해 2월15일 시행된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는 미세먼지 취약계층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는 조항(제23조)이 포함돼 있다. 이 교수는 보호 대책을 마련할 때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지역을 먼저 살피거나 지역별로 맞춤형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지역이 아닌 개인 수준에서 분석해도,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미세먼지 피해를 크게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연구소는 올해 1월 ‘미세먼지 및 초미세먼지 측정 자료와 국민건강보험 청구자료를 이용한 호흡기질환에서 의료 이용과 사망 영향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시에 사는 호흡기질환자(천식, 만성폐쇄성폐질환, 폐암)를 대상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질 때 호흡기질환 환자의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사망자가 더 크게 늘었다. 구체적으로 미세먼지(PM10) 농도가 100㎍/㎥를 기준으로 10㎍/㎥ 늘 때마다 사망자가 소득 구간 상위 그룹은 1.05%, 중위 그룹은 1.80%, 하위그룹은 1.86% 늘어났다. 또 초미세먼지(PM2.5)의 농도가 50㎍/㎥를 기준으로 10㎍/㎥ 증가할 때마다 호흡기질환 환자의 사망은 소득 구간 상위 그룹 1.45%, 중위 그룹은 2.10%, 하위 그룹 2.20% 늘어났다.

보고서는 “일부 질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로 어린이와 노년층,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 기도 질환의 경우 여성에게서 미세먼지(PM10), 초미세먼지(PM2.5)에 따른 건강 영향이 크게 나타났다”면서 “이러한 계층을 미세먼지에 대한 민감 계층으로 구분하고 좀더 특화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중국선 소득 따라 공기청정기 구매량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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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가 건강불평등을 악화한다는 사실을 더욱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연구도 있다. 한국보다 미세먼지가 심한 중국에서 진행된 연구로, 소득에 따라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구매량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한 자료다. 중국 칭화대 충쑨 교수팀이 2017년 1월 국제학술지 (Ecological Economics)에 발표한 논문이다. 연구팀은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타오바오’에서 구매자의 소득수준에 따른 2013년 마스크·공기청정기 판매량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1% 진해질 때 마스크 구매량은 소득수준에 따라 큰 차이가 없었다. 절대량으로는 고소득 집단이 3배 이상 컸지만, 기존 구매량과 비교해보면 고소득 집단이 60%, 저소득 집단이 50% 커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공기청정기 구매량에서는 큰 차이가 났다. 고소득 집단과 중위소득 집단은 초미세먼지 농도가 1% 짙어질 때 공기청정기 구매량이 20% 늘었다. 저소득 집단에서는 구매량에 변화가 거의 없었다.

논문에 따르면 마스크와 공기청정기의 대기오염 차단 효과는 차이가 크다. 중국소비자협회 조사 결과 평균적으로 마스크는 초미세먼지를 33% 차단하고 공기청정기는 92% 차단했다. 소득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초미세먼지를 더 효율적으로 걸러내는 제품으로 자신을 보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국선 배출량 백인↑ 노출량 히스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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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의 건강불평등은 세계적으로 활발한 연구 주제다. 미국 워싱턴대의 크리스토퍼 테섬과 동료 연구진은 미국에서 초미세먼지(PM2.5) 발생의 인종별 ‘배출 대비 노출’ 수준을 분석해 올해 3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인종별로 소비·운전·생활 습관 등을 분석해 배출량과 노출량을 비교한 결과다.

분석 결과 백인들은 배출량 대비 노출량이 17% 적었다. 초미세먼지를 100 만들었다면 83만 들이마셨다는 뜻이다. 반면 흑인과 히스패닉은 오히려 초미세먼지 배출량보다 노출량이 많았다. 자신이 만든 초미세먼지보다 각각 56%, 63% 더 많은 양을 마셨다.

연구진은 소비 규모가 큰 백인이 초미세먼지를 더 많이 만들지만,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 사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더 피해를 본다고 분석했다. 인종별 경제력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라는 뜻이다. 로버트 블라드 미국 텍사스서던대 사회학과 교수는 <a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백인들이 오염 물질을 가난한 사람과 유색인종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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