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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살아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원인, 미 ‘의도된 실패’ 분석… 북한 계속 압박 땐 ‘독자적 생존’ 우려도
등록 2019-03-09 15:21 수정 2020-05-03 04:2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EPA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월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EPA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정상끼리 만나서 성과가 없으면 나라 안팎에 체면도 구기고 정치적 타격이 크다. 실무진이 합의 내용 조율을 마치고 정상끼리 만난다. 군대로 치면,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이겨놓고 싸우는 셈이다. 상당수 정상회담은 양쪽 정상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는 목적으로 연다. 설사 회담에서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서로 ‘성공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또 만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실패한 정상회담이 없다고 했는데… </font></font>

‘실패하는 정상회담이 없다’는 말과 달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실패(또는 결렬)했다는 해석이 많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수차례 북-미 실무회담을 거쳐 성사된 것을 고려하면, 실패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실무회담에서 마련된 합의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은 의도는 불명확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 청문회 같은 국내 정치 변수, ‘슈퍼 매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역할 등을 실패 원인으로 꼽은 의견이 많다. 정세현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배경으로 볼턴 보좌관을 지목하고 그를 “매우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미국의 ‘의도된 실패’로 보인다. 미국의 상황 인식과 셈법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렇게 분석했다. “제재가 유지되는 한 시간은 미국 편이므로 장기적으로 이번 정상회담의 결렬이 비핵화 달성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선택한 것이다.”

북한이 대미 협상에 나선 배경을 두고 서울과 워싱턴의 생각이 많이 다르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남북대화, 북-미 대화에 적극 나선 것은 핵개발과 경제성장을 이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서울에서는 본다. 이와 달리 워싱턴의 민간 전문가, 국무부와 중앙정보국 관료 등은 대북제재가 성과를 거두었다고 여긴다. 견디다 못한 북한이 대화에 나섰다고 본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유지해야 비핵화를 촉진하거나 이룰 수 있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시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한 배경에는 시간은 미국의 편이라는 인식과 대북제재 효과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3500㎞를 60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왔다 빈손으로 되돌아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북한은 3월10일 남한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치르면서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국내에 과시하고 대북제재 완화를 바탕으로 경제건설 속도를 내려고 했을 것이다. 북한 처지에서는 2020년에 마무리해야 하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을 성공시키려면 올해 대북제재를 풀거나 느슨하게 만들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이런 북한의 구상이 헝클어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미국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font></font>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심거리다.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엿새 만인 3월6일 기록영화로 정상회담 결과를 재차 보도하면서 미국과 대화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했다. 는 6일 저녁 8시30분부터 약 1시간15분 동안 ‘김정은 동지께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을 공식 친선방문하시었다. 주체 108(2019). 2.23∼3.5’라는 제목의 기록영화를 내보냈다. 이 기록영화는 “서로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원칙에서 공정한 제안을 내놓고 올바른 협상 자세와 문제 해결 의지를 가지고 임한다면 전환의 첫걸음을 뗀 조-미 관계가 우여곡절과 시련을 이겨내고 전진할 수 있으며 새로운 역사, 새로운 미래를 써나갈 수 있다는 것을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대화를 계속하겠다’는 북한의 태도를 보고 북한을 계속 압박하면 결국 굴복할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미국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은 북한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경제적 어려움을 감내할 수도 있는 체제라는 점이다. 미국의 요구 조건을 맞춰주기 쉽지 않다는 점을 하노이에서 확인한 가운데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한다고 믿게 될 경우 북한 정권이 경제건설 총력 집중 노선을 포기하고 미국과 대결하면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권 생존에 유리하다는 판단이 설 경우 이런 길도 선택할 수 있는 지도자이며, 북한에는 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면 이런 길도 걸을 수 있는 체제가 구축되어 있다.”( 109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font size="4"><font color="#008ABD">“남북,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해야” </font></font>

최대한 속도감 있게 한국이 북-미 중재자 구실을 해야 한다. “이번에는 타결을 보지 못했지만 대북 경제제재 해제 문제는 다음 회담의 필수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의도된 실패였기에 희망은 살아 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더 커지고 중요해졌다. 그동안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남북이 빨리 대화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

중국 작가 루쉰은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썼다. 희망이 길이듯이, 한반도 평화도 길과 같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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