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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국 북한을 위한 트럼프의 선물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앞두고 비핵화 보상 언급
등록 2019-02-15 15:35 수정 2020-05-02 04:29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8일 북한이 엄청난 경제 대국이 될 것이고 앞으로 새로운 ‘경제 로켓’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거론하며 경제 로켓이란 표현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핵 위기가 고조됐을 때인 201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꼬마 로켓맨’이라고 조롱한 바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인민군 창건 71주년인 2월8일 핵무력이 아니라 군의 경제 건설 참여를 강조했다. 그는 “혁명 발전에 새로운 전환적 국면이 열리고 사회주의 강국 건설이 새로운 발전 단계에서 전개되는 격동적인 시기”라며 “국가경제발전 5개년 수행의 관건적인 해인 올해에 인민군대가 한몫 단단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상회담을 앞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경제 발전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경제 발전 패키지를 비핵화 로드맵과 연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모두 올해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에 직면했다.
하노이는 미국과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고 고도성장 중인 베트남의 수도이다. 베트남전은 제2의 한국전쟁이란 평가도 받았다. 한국전쟁에서 싸웠던 남북한, 미국이 다시 베트남에서 총부리를 겨눴기 때문이다. 20세기 냉전의 한복판에서 남북, 베트남, 미국이 치열하고 복잡하게 얽혔던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과 미국이 ‘발목 잡는 과거’를 뛰어넘어 화해와 평화의 새 역사를 펼치는 데 하노이는 최적지다.
북-미 정상회담 한두 번으로 70년 넘게 쌓인 북한과 미국 사이의 문제가 모두 풀릴 수 없다. 첫술에 배부르기는 어렵다. 베트남전 때 미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미국과 베트남 양쪽 지도자가 좀더 현명했더라면 베트남전은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맥나마라는 베트남전 같은 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한 교훈으로 ‘적을 이해하고 계속 대화하라’고 조언했다. 하노이에서 만날 북-미 정상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말이다.
_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2017년 4월13일 북한 시민들이 평양에 새로 건설된 주거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REUTERS

2017년 4월13일 북한 시민들이 평양에 새로 건설된 주거단지를 둘러보고 있다. REUTERS

“김정은은 북한을 엄청난 경제 대국으로 만들 기회를 갖고 있다.”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경제 대국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2월 초 미국 《CBS》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였다.

수조원대 경제 패키지 거론되기도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을 향해 ‘경제 발전’이라는 당근을 꺼내든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차 정상회담 직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눈부신 잠재력이 있으며 경제적으로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며 분위기를 한껏 띄운 바 있다.

그러나 1차 때와 달리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서는 비핵화 프로세스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제 개발 문제도 함께 다루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좀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스티븐 비건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문희상 국회의장 일행을 만난 자리에서 하노이 정상회담 의제가 12개나 된다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대국’ 발언 직전 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수조원대 경제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조건부 출금이 가능한 에스크로 계좌를 만들어놓고 북한이 구체적 비핵화 조치를 시작하면 현금 지급 방식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대국 발언은 어느 정도 과장과 허풍이 담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한은 국민총소득(GNI) 기준 한국의 47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2017년에는 가뭄과 대북 제재 영향으로 3.5%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대국론을 뒤집어보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가장 먼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고 애드벌룬을 띄운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더욱이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과 미국의 정치 일정과 내부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보면 경제 발전 패키지를 비핵화 로드맵과 연계하는 방식이 아주 불가능한 접근법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경제 발전 급한 김정은

먼저 북한의 정치 일정과 김정은 위원장의 계산법을 들여다보자. 김 위원장은 2018년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 노선의 승리를 선언하고 사회주의 경제 건설 집중 노선을 당의 새로운 전략 노선으로 선포했다. 2019년은 경제 집중 노선 선언 1주년을 맞아 중간점검에 나서야 한다.

2020년은 김정은 정권에 더욱 중요한 해이다. 2016년 5월, 36년 만에 개최한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채택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완성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2016년 5개년 전략 발표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전략적 목표로 인민경제 전반의 활성화, 경제 부문 간 균형 보장, 나라 경제를 지속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 마련 등을 꼽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경제 부문 간 균형 발전을 강조한 부분이다.

김정은 시대 들어 2017년을 제외하면 전반적인 경제 회복세가 유지되는데도 산업별 불균형 현상이 심화하는 것은 북한 경제의 지속적 성장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서비스업과 건설업, 그리고 농업 분야의 성장이 두드러지지만 제조업 분야의 발전이 여전히 뒤처졌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는 5개년 전략에서 공언한 대로 인민경제 전반을 활성화하는 것도, 지속적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외교 치적 목마른 트럼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

북한은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를 설치하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산업 구성의 다양화와 경제 전반의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경제제재에 가로막혀 별다른 진전이 없다. 게다가 경제제재가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최대 교역국인 중국 경제의 석탄 의존도가 줄어듦에 따라 대중 무연탄 수출이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대로 누리도록 하겠다’(2012년 4월)던 김정은 위원장 집권 직후의 약속은 이행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북-미 간 담판에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국가 전략 노선으로 선포한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집중을 관철하는 데 김 위원장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2월 현재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막 돌았다. 그러나 2019년부터 정치적 일정표가 만만치 않다. 신년 벽두부터 지난해 중간선거로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과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사태를 놓고 35일간 기싸움을 벌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해온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조사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조사보고서 공개 여부에 따라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고 민주당 쪽에서 언제 탄핵 논의가 불거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미-중 무역전쟁의 3개월 휴전 시한 종료를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담판해 승리를 선언하려던 계획은 아직 안갯속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지지율이 여전히 40%대에서 갈지자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2020년 말 재선 여부를 판가름 짓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4년 임기 중 외교정책의 최대 치적으로 북한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시리아 철군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 병력 감축을 추진하면서 국제분쟁에서 발을 빼는 한편, 유럽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위비 분담금 갈등을 겪는 상황에서 대외 정책 어느 한 군데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 치적을 위해 북핵 문제의 판을 키우면서 비전공 분야인 비핵화의 기술적 프로세스를 하루빨리 매듭짓는 동시에, 전공 분야인 투자와 경제 개발 분야에서 솜씨를 발휘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다. 스티븐 비건 대표가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양자 관계의 ‘근본적 전환’(Fundamental Transformation)을 거듭 강조한 것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비핵화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눈앞의 징검다리

상호 견제와 의심이 풀리지 못한 상황에서 비핵화 프로세스를 최대한 늦추면서 최단기간에 제재 완화를 끌어내려는 김정은 위원장과 지속적 제재와 압박을 무기로 비핵화 프로세스를 최대한 앞당기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공통의 목표에 완벽하게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북한의 경제 발전 목표와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병진’시키는 것이 비핵화만 추구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수는 있다. 외교 협상은 직선주로가 아니므로 이슈를 연계해 교차로와 우회로를 설정하는 것은 협상 타결을 위해서도 나쁜 일은 아니다. 트럼프의 경제 대국 구상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눈앞의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성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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