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당 지배 체제가 끝났다. 새로운 민주당도 첫발을 내디뎠다. 더 젊고, 인종적으로 다양하며, 성소수자도 많고, 여성과 제대 군인 출신도 늘었다. 미시간주에서도, 펜실베이니아주에서도, 오하이오주에서도 이길 수 있다. 사상 첫 무슬림 여성 의원, 사상 첫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의원을 배출했다. 매사추세츠주에선 사상 첫 흑인 여성 의원이, 텍사스주에선 사상 첫 라틴계 여성 의원이 당선됐다. 그러니 ‘파란 바람’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무지개 바람’이다.”
백인 남성 후보자 역대 최저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정치평론가 밴 존스는 11월6일 〈CNN〉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의 면면은 유례없이 다양하다. 2016년 대선 패배의 충격을 딛고 하원을 탈환한 민주당으로선 ‘좋은 출발’일 게다. 사실 선거에 앞서, 일찌감치 예견된 바다.
“미국 역사상 가장 다양한 후보자가 출마했다.”
미국 일간 신문 는 10월31일치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전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 964명을 분석해보니, 이 가운데 411명이 여성·유색인종·성소수자였단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여성 272명, 아프리카계·라틴계·아시아계·아메리카 원주민 등 소수인종 216명, 동성애·양성애·성전환자 등 성소수자 26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후보자 가운데 58%를 차지할 정도로 백인 남성의 비율이 여전히 높긴 했지만, 이 또한 역대 최저 수치란다.
샤리스 데이비스(38)는 캔자스주 3번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공화당 소속 4선의 케빈 요더 의원을 꺾고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이번 선거 당선인 가운데 ‘최초’ 타이틀이 가장 많은 인물 중 하나다. 1980년 캔자스주 아메리카 원주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직업군인인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콘월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다.
선거운동 누리집에 올린 그의 이력을 보면, 그의 어머니가 2016년 뒤늦게 대학 졸업장을 따내기 전까지 집안에서 첫 대학 진학자였다. 그는 현직 프로 종합격투기(MMA) 선수이기도 하다. 2006년 아마추어로 시작해 5승1패의 전적을 쌓은 뒤, 2013년 프로 무대에 올라 1승1패를 기록 중이다.
‘최초’를 따져볼까? 여성인 데이비스의 성적 지향은 동성애다. 따라서 데이비스는 사상 첫 동성애 아메리카 원주민 하원의원, 사상 첫 캔자스주 출신의 성소수자 의원이자 연방 공직자, 사상 첫 아메리카 원주민 하원의원 등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이번 선거에서 뉴멕시코주 1번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뎁 할란드(57)가 데이비스와 함께 ‘사상 첫 아메리카 원주민 하원의원’ 타이틀을 공유했다.
라쉬다 틀라입(42)은 미시간주 13번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하원에 입성했다. 그는 1976년 디트로이트의 팔레스타인계 집안에서 14남매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자동차공장 노동자였고,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2004년 웨스턴미시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틀라입은 2008년 미시간 주의회 하원의원에 출마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민주당 진보파의 상징인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일원이기도 한 틀라입은 미네소타주 5번 선거구에서 당선된 일한 오마르와 함께 ‘사상 첫 무슬림 여성 하원의원’ 기록을 세웠다.
‘공직에 출마해선 안 되는 부류’들의 선전코네티컷주 5번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조하나 하예스(45)는 2016년 전미 올해의 교사에 선정된 사회 교사 출신이다. 그는 선거운동 누리집에 올린 홍보 영상에서 “마약중독자였던 홀어머니 대신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17살에 첫아이를 가진 미혼모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유세 때마다 “밖에서 총소리가 나는 상황에서 잠자리에 들 때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는 말로 자신의 성장 배경을 설명했단다.
이제 막 정치에 입문했음에도 하예스는 지역 유력 정치인인 공화당의 매니 산토스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서며 넉넉하게 당선됐다. 떨어진 산토스 후보는 멕시코 국경 분리장벽 설치, 오바마 케어 폐기, 총기 소지 권한 강화 등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적극 지지했단다. 하예스는 코네티컷주 출신 첫 아프리카계 여성 하원의원이다.
이색 경력자도 있다. 뉴저지주 11번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된 미키 셔릴(46)은 미국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해군에서 10년간 헬리콥터 조종사로 복무했다. 제대 뒤 2007년 조지타운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그는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인 2016년까지 연방검사로 일했다.
버지니아주 7번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하원의원에 당선된 애비게일 스팬버거(39)는 중앙정보국(CIA) 대테러 담당 요원 출신이다. 스팬버거가 접전 끝에 6천여 표 차이로 물리친 공화당 현역 의원은 데이브 브랫이다. 브랫은 극우 성향의 티파티 바람이 불었던 2014년 당내 경선에서 당시 공화당 원내대표인 중도 성향의 에릭 켄터를 밀어내고 하원에 진출한 바 있다.
의 집계를 보면, 11월6일 중간선거에 출마한 백인 남성은 민주당이 205명, 공화당이 353명이었다. 여성과 소수인종, 성소수자 등은 민주당이 294명인 반면, 공화당은 109명에 그쳤다. 현재 백인 남성은 미국 인구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주지사와 연방 상·하원 의원의 69%를 차지한다.
“저 같은 여성은, 공직에 출마해선 안 되는 부류입니다. 저는 부유하거나 권력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교육운동가이자 활동가이자 노동계급에 속하는 뉴욕 사람입니다.”
‘무지개 후보’ 민주당 294명 공화당 109명이번 선거에서 뉴욕주 14번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오카시오 코테즈(29)는 ‘변화를 위한 용기’란 제목의 선거 홍보영상에서 “이제는 우리 중 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젊은 여성 유색인종 노동자 출신인 그는 지난 6월 말 당내 후보 경선에서, 나이가 두 배 가까이 많은 남성 백인이자 민주당 내 서열 4위인 10선의 조 크롤리를 15%포인트 차이로 꺾고 본선에 올랐다. 11월6일 선거에서 무려 78%를 득표한 그는 압도적으로 사상 최연소 여성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무지개 바람’이 제법 거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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