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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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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준비 교육이 필요한 이유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

죽는 것을 받아들일 때 삶의 의미 깨달아
등록 2018-08-21 17:44 수정 2020-05-03 04:29
2017년 5월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가 ‘슬픔의 카운슬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 비통함의 치유’ 워크숍을 열었다.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제공

2017년 5월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가 ‘슬픔의 카운슬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그 비통함의 치유’ 워크숍을 열었다.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제공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준비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삶에 대한 교육이다.”

세계적인 ‘죽음학자’ 알폰스 디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2년 일본에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모임)’를 창설하고 일본 사회에 ‘죽음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시민운동을 펼쳤다. ‘죽음준비 교육’이란 말 그대로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보고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편안히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생로병사와 상실, 슬픔에 대해 토론하면서 삶과 죽음의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준다. 죽음준비는 단순히 죽음을 준비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펴보며 가치 있게 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죽음 교육은 평소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삶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교육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죽음준비는 동시에 삶의 준비”</font></font>

죽음도 삶처럼 준비와 교육이 필요하다.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의 양정연 교수는 “죽음을 이해할 때, 현재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할 수 있다. 죽음의 관점에서 현재를 바라본다면, 욕구 충족의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죽음을 논의하는 것은 결국 삶을 논의하는 것이고, 좋은 죽음은 좋은 삶에 대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삶과 죽음은 생명 과정에서 이뤄지는 양면이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한국산학기술학회 논문지에 실린 ‘대학생들의 죽음 교육 전과 후의 죽음 인식과 결정에 관한 연구’에서 죽음준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전의 한 대학교에서 죽음학 교양강좌를 2016년 8월부터 12월까지 15주 동안 수강한 대학생 210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97.6%가 “죽음준비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죽음준비 교육이 필요한 이유’로 “죽음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를 39%가 꼽아 가장 많았다. “죽음준비는 동시에 삶의 준비라고 생각한다”가 18.1%, “가족에게 주는 슬픔과 폐해를 줄이기 위함이다”가 15.7%였다. ‘죽음준비를 언제부터 해야 하냐’는 질문에 “20살 성인”이 34.8%로 가장 많았고, “중·고등학교”(19.5%), “노인”(18.6%) 순으로 나타났다.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노년기 전부터 죽음준비를 해야 한다고 답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죽음 이야기를 애써 피하거나 혐오한다. 한 예로 숫자 4의 발음이 ‘죽을 사’(死)자와 같아 4를 싫어한다. 엘리베이터 4층을 F층이라 한다. 아직까지 죽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죽음 문화가 성숙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공동묘지나 화장터를 주위에 만든다고 하면 지역사회에서 격렬하게 반대한다. 미국에선 공동묘지가 삶의 공간에 들어와 공원으로 조성돼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만난다. 가족과 함께 묘지공원을 산책하거나 운동도 한다. 당연히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고, 죽음을 삶의 영역과 공간에서 더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9988234’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font></font>

우리 사회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 국내 유일의 죽음문제 연구소인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에서 올해 펴낸 책 에서는 죽음을 자신의 삶과 분리시킨다고 지적한다. “죽음은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현실이고 두려움으로 여기는 것 같다. 죽음은 감당할 수 없는 실재, 수용할 수 없는 실재, 나아가 차마 건드릴 수 없는 실재가 되어 현대인을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9988234’처럼 살고 싶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99살까지 팔팔(88)하게 살다가 2∼3일 앓다 죽고 싶다는 뜻이다. 이 숫자에는 죽음이라는 시간을 최대한 미루면서 죽어감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욕망이 압축돼 있다.

그러다보니 살아가는 존재로서 준비는 하지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는 준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후를 위한 연금이나 보험 등은 준비하지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준비를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 현장에서 이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2016년 제정돼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지난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은 물론 의료 현장에서도 어떻게 죽음의 과정을 준비하고 조처를 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다.

죽음은 누구나 경험한다. 친구와의 이별이나 이혼, 실업 등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보면 죽음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누구나 경험하는 죽음을 충분한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어떻게 죽음을 대면해야 할지, 유가족이나 당사자를 어떻게 대하고 그들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시간과 여유도 없는 죽음을 당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font></font>

양정연 교수는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자연스러운 생명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며 “죽음을 수용할 때, 우리는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세대에 맞게 죽음준비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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