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있을 때 기자들이 생존자 가족이라고 거짓말하고 들어와 인터뷰하려 했다.”(제1221호 천안함 사건 생존자 최광수씨 인터뷰)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8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당신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기록을 뒤졌지만,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을 찾은 2010년 3월 그날, 비가 왔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기사를 송고하느라 바쁠 늦은 오후, 병원 주위를 배회했습니다. 모든 언론사의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격리된 구조자 52명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열영상 장비를 보고 있던 해안초소 일부 장병을 제외하면) 현장을 보고 겪은 것은 당신들뿐이었으니까요. 해군이 구조 장병에게 함구령을 내렸다고 알려졌습니다(당신은 “그런 적이 없다. 오보”라고 말했지만요).
속보 경쟁에 취재 윤리는 뒷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감추려 했던 군도, 찾으려 했던 기자도 구조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우선이었습니다. 행여 의도치 않은 말이 새나갈까 전전긍긍하는 군이 친 장벽 앞에서, 동료 기자들보다 앞서 무엇이든 알아내야 한다는 조급증이 일었습니다. 군 시설이라 경비가 삼엄했습니다. 길은 하나, 위병소를 대신하는 면회실 입구였습니다. 발 빠른 언론사들은 이미 면회실 안팎에 진을 쳤습니다. 저라고 뾰족한 수는 없었습니다. 별수 없이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옆에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면회 신청자가 많아서였을까요. 무리 가운데 한 사람만 신원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버스로 안내를 받는 ‘패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심히 그 틈에 섞였습니다. 가족들을 따라 버스로 병원 본관까지 가는 데 1분이 채 안 걸리더군요. 때를 기다려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도서실에서 책을 보는 이, 그 옆 피아노를 두드리며 동료와 웃는 이, 휴게실에서 천안함 중계를 보며 한숨짓는 이 등 밝고 어둡고 웃고 우는 당신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굳이 기자를 피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세 명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비보도를 약속했고, 기사를 쓰지는 못했습니다). 그 뒤로 천안함 사건을 보도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날의 광경을 떠올렸습니다. 2012년 천안함을 취재하겠다고 국방부를 출입할 때도, 정권이 바뀌었다며 지난 1년 동안 천안함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3월 에 “2010년 어느 비 오는 날, 국군수도병원에 입원 중인 (언론을 의식하지 않는)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했고, 또렷하게 기억한다. 진실은 그 안에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고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은 인터뷰 도중 영화 에 등장하는 귀환한 병사의 얘기를 꺼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멍해졌습니다. 8년 동안 당신을 포함한 58명의 삶은 아예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저 내 안의 상상만 키워가며 진실을 찾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말하고 있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살아 돌아온 당신들 앞에서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실을 구하기 전에 당신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새기겠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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