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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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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판 개혁 개방 선언?

경제 살리기 위해 ‘핵’ 들어낸 노동당 7기3차 전원회의 ‘정신’ 의미는?…

북-미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진행 상황 따라 평가 달라질 것
등록 2018-05-09 10:26 수정 2020-05-03 04:28
‘맞잡은 북-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3월2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북-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맞잡은 북-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3월26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북-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공화국 창건 일흔 돌을 자랑찬 노력적 성과로 맞이하자.”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은 지난 5월3일치 1면 머리기사에 이런 제목을 올렸다. 부제목에 적힌 ‘9월의 대축전장을 항하여’는 북한 정권 창립 70주년을 맞는 9월9일을 뜻한다. 신문은 ‘자력갱생, 견인불발하여 4월 인민경제계획 빛나게 완수’란 소제목 밑에 △전력공업 부문 △탄광 △기계공업성 △수산성 등이 이뤄낸 경제적 성과를 자세히 전했다.

‘4월 전원회의 정신’이란?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갈 준비를 마친 걸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북한은 개혁·개방으로 갈 준비를 마친 걸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환한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1면 하단에서도 마찬가지다. 신문은 함경남도 함흥에 11만5500㎡(3만5천 평) 규모로 들어선 노동자 1만여 명 규모의 ‘용성기계연합기업소’에선 “역사적인 당 중앙위원회 4월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새로운 전략적 노선 관철에 한 사람같이” 떨쳐나섰다고 보도했다. ‘대홍단 감자’로 유명한 양강도에선 “도 안의 농업 근로자들은 당 중앙위원회의 4월 전원회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감자 심기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고 전했다.

“올해의 인민 생활 향상에서 전환을 가져와야 합니다. …배무이(선박 건조)와 배수리(선박 수리) 능력을 높이고 과학적인 어로전을 전개하며, 양어와 양식을 활성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지난 1월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신문은 “당 중앙위원회 4월 전원회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함경북도 협동 수산 경리위원회 일꾼들과 어로공들이 배무이와 배수리에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해북도와 함경남도에서도 ‘당의 양어정책 관철에 큰 힘을’ 쏟고 있다는 특파기자의 보도가 이어졌다. 1면에 실린 5개 기사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당 중앙위원회 4월 전원회의 정신’은 무엇인가?

역사적인 4·27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은 바삐 움직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정치국 회의(4월9일)와 우리의 정기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4월11일)가 이틀 간격으로 열렸다. 이어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지난 4월20일엔 노동당 중앙위 제7기 제3차 전원회의(7기3차 전원회의)가 전격 소집됐다. ‘당의 영도’에 따르는 국가인 북한에서 당 중앙위 전원회의는 가장 권위 있는 의사결정 기구다. 북한이 이른바 ‘핵·경제 병진노선’(핵무기와 경제 건설을 동시에 추진)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한 것도 2013년 3월 말 열린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통해서였다.

“우리 혁명 발전의 중대한 역사적 시기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단계의 정책적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기 위하여….” 회의를 이틀 앞둔 4월18일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은 짤막한 결성서를 내, 7기3차 전원회의 소집의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중대한 역사적 시기’와 ‘새로운 단계의 정책적 문제들’이란 표현에서 북한이 중대한 결정을 앞두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그랬다.

역사로 사라진 핵·경제 병진노선
김정은 위원장(앞줄 왼쪽 두 번째)이 4월2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손 들어 의결 표시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위원장(앞줄 왼쪽 두 번째)이 4월20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손 들어 의결 표시를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회의 다음날인 4월21일 은 김정은 위원장이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긍지 높이 선언하고,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을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병진노선의 위대한 승리’를 선언했다는 건, 더 이상 병진노선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 밝힌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됐다”며 “병진노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됐다고 말했다. 병진노선의 공식적 ‘종료’ 선언인 셈이다.

파격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이제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었다”고 말했다. ‘협상 카드’로 삼을 수도 있는 함북 길주군 풍계리 핵시험장을 선제적으로 폐기하겠다는 얘기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 공화국이 세계적인 정치사상 강국, 군사 강국의 지위에 확고히 올라선 현 단계에서 전당, 전국이 사회주의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 이것이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다. … ‘사회주의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여 우리 혁명의 전진을 더욱 가속화하자!’라는 전투적 구호를 높이 들고 혁명적인 총공세, 경제 건설 대진군을 힘차게 벌여나가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뒤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7기3차 전원회의의 결정은 무엇을 뜻하는가? 북이 국가 전략의 핵심 축을 ‘경제 건설’로 돌리기 위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핵’을 들어낸 게다. 더 이상 ‘핵’ 때문에,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전체 인민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것”을 수정된 국가 전략의 목표로 내걸었다. 7기3차 전원회의 결정을 북한판 ‘개혁·개방 선언’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전체 당 사업의 중점과 전국 인민의 관심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전환한다.”

얼핏 북한 노동당 7기3차 전원회의 결과와 똑같아 보인다. 40년 전인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11기3중전회)에서 결정된 내용이다. 11기3중전회는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정리하고, 중국을 시장화와 세계경제 체제 편입으로 이끌어낸 계기였다. 11기3중전회를 통해 중국은 당 사업의 중심을 경제 건설로 전환했고, 이후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개혁·개방 세력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해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냈다.

중국 11기3중전회와 닮은꼴
1991년 1월 중국개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나선 ‘남순강화’ 때,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오른쪽 세 번째)이 건물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민음사 제공

1991년 1월 중국개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나선 ‘남순강화’ 때,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오른쪽 세 번째)이 건물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민음사 제공

북한 노동당 7기3차 전원회의는 중국 공산당 11기3중전회와 여러모로 비교해볼 만하다.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정치·군사적 토대는 △1964년 10월 원자폭탄 실험 △1967년 6월 수소폭탄 실험 △1970년 4월 ‘둥팡훙’ 인공위성 발사 성공 등 이른바 ‘양탄일성’(원자탄·수소탄과 인공위성) 체제 완성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밟아온 길과 고스란히 닮았다.

2013년 3월 ‘핵·경제 병진노선’을 내세운 이래 북한은 쉼 없이 핵·탄도미사일 개발에 몰두했다.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지금까지 모두 6차례 핵실험을 했다. 이 가운데 4차례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이뤄졌다. 2016년 1월6일(4차)과 2017년 9월3일(6차) 실시한 핵실험을 북한은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북한은 2012년 12월12일(은하 3호/ 광명성 3호)과 2016년 2월7일(발사체 미상/ 광명성 4호) 두 차례에 걸쳐 쏘아올린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1월29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은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권으로 한다. 이 실험 직후 북한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판 ‘양탄일성’이 완성된 셈이다.

김정일 사망 전후 경제 법령 정비

대외관계 측면에서도 닮은꼴을 찾을 수 있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으로 물꼬를 튼 미-중 관계는 1978년 12월15일 두 나라가 이듬해 1월1일부터 외교 관계를 맺기로 했다는 공동 발표를 내놓으면서 정상화했다. 개혁·개방으로 가는 길을 여는 11기3중전회는 그로부터 사흘 뒤인 1978년 12월18일 개막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 7기3차 전원회의는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렸다.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갖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1기3중전회의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마오쩌둥 주석 사후인 1976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문화대혁명의 대혼란을 딛고, 인민들의 삶에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모색됐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부터 준비돼,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본격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례를 들춰보자.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펴낸 을 보면, 북한의 외교·대외경제 부문 법령은 모두 31개다. 이 가운데 조약법·출입국법·무역법 등 대외관계의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10개를 뺀 나머지 21개 법령이 대외경제 관련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법령 가운데 상당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전후한 시점에 대대적으로 정비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실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불과 20일 남짓 앞둔 2011년 11월29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191~1195호를 통해 △외국인투자법 △합영법 △합작법 △외국인기업법 △토지임대법을 수정했다. 같은 해 12월3일엔 라선경제무역지대법과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법을 손봤다.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12월17일)한 지 나흘 만인 같은 해 12월21일엔 △외국투자은행법 △외국투자기업 및 외국인 세금법 △외국투자기업노동법 △외국투자기업 파산법 등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법령 7개를 정비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장례식이 12월28일 치러진 점에 비춰, 예정됐던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잇따른 경제개발구 지정의 의미는?

중국 공산당 11기3중전회 공보에는 ‘개방’이란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후 중국의 국가 전략이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됐기에, 역사는 11기3중전회를 개혁·개방의 시발점으로 기록한다. 북한 노동당 7기3차 전원회의가 북한판 개혁·개방 선언이란 역사적 평가를 받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북은 ‘경제’의 발목을 잡는 ‘핵’을 떼낼 준비가 됐다는 뜻을 안팎으로 분명히 했다. 북-미 정상회담과 이후 비핵화-평화체제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7기3차 전원회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앞서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한 지 불과 두 달 남짓 만인 2013년 5월 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는 정령 제3192호를 채택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제개발구법’이다. 모두 7개장 62개조로 이뤄진 법의 제1조는 “대외 경제협력과 교류를 발전시켜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고 인민 생활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고 돼 있다.

이후 북한은 2013년 14개 지역을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2014년(7개)과 2015년(3개) 잇따라 국가·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지정·발표했다.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조성된 위기감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해 12월23일에도 평양 강남군 고읍리 일대를 경제개발구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금까지 경제개발구로 지정된 지역은 모두 24개로 늘었다. 북은 이미 개혁·개방을 향해 내달릴 준비를 마쳤는지도 모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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