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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씨 왕국에 직원 행복은 없다

‘항공 MBA’ 기자가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최고경영자 리더십 비교해보니…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
등록 2018-05-08 15:52 수정 2020-05-03 04:28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는 직원들과 친구처럼 어울린다. 표정이 익살스럽다. 교육방송 제공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는 직원들과 친구처럼 어울린다. 표정이 익살스럽다. 교육방송 제공

2000~2001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항공경영학을 공부했다. 항공산업에 특화된 경영학석사(MBA) 과정이었다. 그때 우상이 있었다. 사우스웨스트항공, 그리고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였다. 사우스웨스트는 한국에서 저비용항공사의 원조로 알려졌지만, 이미 항공업계를 넘어 세계 최고 기업 반열에 섰다. 재무 실적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같은 조사에서 맨 앞쪽 순위를 놓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는 내 친구 vs 총체적 ‘불량 리더십’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면 누구나 켈러허의 리더십으로 시작한다. 그 리더십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바로 ‘직원’이다.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직원이)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켈러허는 이 소박한 생각을 기업문화로 정착시켰다. ‘조양호 리더십’의 붕괴를 일으키는 지점도 바로 ‘직원’이다. 직원들이 “우리도 일터에서 행복하고 싶다”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켈러허는 2008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5년 더 직원으로 일하면서 새 경영진을 거들었다. 세습 경영자인 조양호의 리더십이 왜 지속할 수 없는지, 허브 켈러허의 성공한 리더십과 비교해본다.

켈러허는 직원들 이름과 개인사를 많이 기억한다.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직접 축하 노래를 부른다. 늦은 밤 비행기 정비를 마칠 때쯤 맥주를 들고 불쑥 나타난다. 그런 경영자를 직원들은 마음으로 좋아한다. 10여 년 전 켈러허의 생일에는 직원들이 감사의 글을 잔뜩 담은 전면광고를 일간지 《USA투데이》에 실은 적도 있다. 켈러허는 승객이 항공기 자리에 앉으려 할 때, 짐칸에 숨어 있다 튀어나오는 깜짝쇼도 벌였다. 그는 ‘재미 경영’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청소 거드는 조종사 vs 부서마다 ‘네 탓’ 공방
2014년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 조양호 회장이 사과하는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2014년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 대해 조양호 회장이 사과하는 모습. 한겨레 이종근 기자

‘대한항공’ 하면 악쓰고 고함지르는 조씨 일가와 주눅 든 직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한항공의 한 임원은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조씨 일가의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3세인 아들딸들이 직원과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조씨 가족의 총체적 ‘불량 리더십’이 공공연히 확인되기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장 가까이 승진할수록 자발적 노예근성에 더 빠져든다고 자조한다. 한 과장급 직원은 “한없이 쪼그라드는 임원을 보면 이 회사에서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사우스웨스트에서는 조종사들이 승객의 짐을 올려주거나, 휠체어를 실어주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종사들이 윗옷을 벗고 기내 청소를 도와주기도 한다. 부서 간 협력 문화가 정착돼 있다. 미국에서 정시 출발률이 가장 높고 목적지에 도착했다가 다시 출발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가장 짧은 항공사로도 평가받는다. ‘청소 거드는 조종사’로 상징되는 협력 문화가 경쟁력 향상을 낳았다. 직원들의 자발성도 두드러진다. 기상 문제로 출발 시각이 지연되면, 직원들이 지루해하는 승객과 즉석에서 재미있는 놀이를 한다. 승객을 사우스웨스트 ‘광신자’로 만드는 힘이다.

항공사는 예약-수속-수하물-출입국-탑승-객실로 이어지는 업무가 물 흐르듯 이뤄져야 한다. 대한항공에서는 업무와 업무가 연결되는 지점마다 마찰이 벌어진다. 서로 ‘네 탓’을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같은 부서 안에서도 아래위 소통이 단절되고 현장의 고충이 일방적으로 억눌러진다. 조 회장의 마음을 살펴 결정해야 하는데, 조 회장을 직접 만날 길이 막혀 있다. ‘까라면 까는’ 고질적인 문화에 발목 잡혔다.

직원 스톡옵션 쑥쑥 vs 회장 퇴직금 듬뿍

저비용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직원의 연봉은 크게 높지는 않다. 대신 스톡옵션을 직원에게 넉넉히 제공한다. 사우스웨스트는 1972년부터 2017년까지 45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냈다. 해마다 주가가 뜀박질하니, 직원들의 자산가치가 쑥쑥 올라간다. 켈러허가 회사 설립 뒤 단 한 차례도 자신의 급여와 보너스를 올리지 않았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또한 스톡옵션을 대신 받았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 같은 저비용항공사를 안정적으로 끌어가려면, 최고경영자의 연봉부터 낮게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리더십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은 2015년 주주총회에서 자신의 퇴직금을 50% 올리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그의 연봉은 2016년 66억원에 이르렀다. 지금 자리에서 물러나면 600억원대 퇴직금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평창동의 조 회장 집을 짓는 데도 수십억원의 회사 자재가 투입됐다. 자신과 부인이 몰랐다고 항변해, 구속은 겨우 면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연봉은 대기업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직원 행복 먼저 vs 고객 만족만 추구

사우스웨스트 성공 요인의 핵심은 ‘직원 행복 먼저’라는 말로 요약된다. “직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철학이 모든 업무에서 일관되게 관철된다. 직원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데 회사의 에너지를 집중한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인성’을 주로 본다. 동료들과 잘 협력하고, 잘 어울리는 사람을 뽑는다.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 “고객 권리만 있고 직원 인권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고객의 소리’다. 고객이 ‘고객의 소리’에 불만을 올리면, 해당 부서에 비상이 걸린다. 조 회장이 수시로 들여다보고, 직접 의견을 달기 때문이다. 5월4일 직원들의 촛불집회 팻말엔 ‘No Mercy!’(무자비), ‘Shame on You!’(부끄러운 줄 알아라) 같은 영어 문장이 등장했다. 그런 짧은 영어 표현으로 ‘고객의 소리’ 의견을 다는 조 회장을 비꼰 것이다. 직원들은 설사 자신의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항변할 길이 없다. 그들은 징계위원회로 불려가거나 급여로 고객 손해를 메워줘야 한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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