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직원들의 ‘반란’에 주주들도 가세할 조짐이 보인다. 대한항공 전체 주식의 50%가 넘는 지분을 가진 7만여 소액주주들을 결집해 조양호 회장 일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려는 움직임이다.
소액주주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제이앤파트너스(J&Partners) 법률사무소는 4월24일 대한항공 전·현직 직원 등 1천여 명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소액주주운동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은 주주 앞으로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대한항공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을 받아 주주와 회사 이익에 부합하는 경영진을 직접 선출하고, 주식 가치를 훼손한 총수 일가가 경영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홍조 변호사는 4월25일 과 한 통화에서 “조 회장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방치하면 주가 하락 등으로 주주들이 큰 피해를 입는다. 이사 해임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주총 표 대결에서 지면 법원에 이사해임 청구소송 등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주의 적극적인 액션이 필요주주들의 행동은 직원들 못지않게 조 회장 일가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주주총회 투표권과 회계장부열람권 등 주주의 권한을 행사해 경영에 간섭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경영진을 교체할 수도 있다.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과 한진칼 등 4개 계열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장남 조원태 사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와 정석기업 등 2개 계열사의 이사를 맡고 있다.
소액주주가 임시 주총을 소집하려면 발행 주식의 3%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대한항공의 지분 구조를 보면 한진칼이 29.96%를 보유하고, 국민연금공단 11.67%, 우리사주조합 3.99%, 나머지 56%는 7만3866명의 소액주주들이 갖고 있다. 따라서 소액주주들의 임시 주총 소집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이사 해임이다. 주총에서 이사를 해임하려면 출석 주식 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소액주주와 국민연금, 우리사주조합의 지분을 합하면 3분의 2가 넘기에 수치상으로는 가능하다. 하지만 소액주주 전원의 찬성을 받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주총 표 대결로 조 회장 일가의 경영권 박탈은 결코 쉽지 않다. 조 회장의 우호 지분은 대한항공 지주회사인 한진칼과 정석인하학원 등을 포함해 33.34%에 이른다.
주주들이 좀더 적극적인 ‘액션’에 나설 수도 있다. 2010년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된 검찰 수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태광그룹 계열사 주식을 갖고 있던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주주 자격으로 회사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확보한 회계 자료를 분석한 뒤 이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검찰에 제보했다. 이 전 회장은 구속 기소되자마자 경영에서 물러난 뒤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돼 징역을 살다 2012년 6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한진 총수 일가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진용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사외이사를 조 회장 개인이나 회사와 인연 있는 인물들로 채워 경영권을 전혀 견제받지 않았다. 한진칼과 대한항공은 각각 3명과 5명의 사외이사를 두었는데,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2013~2017년 5년 동안 한진칼과 대한항공 이사회 안건 240개에 대해 사외이사가 반대 의견을 낸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조 회장 일가의 새로운 일감 몰아주기 혐의 조사에 나선 것도 조 회장 일가를 곤혹스럽게 한다. 공정위는 4월20일 한진칼과 대한항공 기내판매팀 등에 조사관 30여 명을 투입해 현장 조사를 벌였다. 공정위는 한진 총수 일가가 기내면세품을 납품업체에서 공급받는 과정 중간에 조현아·조원태·조현민 삼남매가 소유한 회사를 끼워넣어 납품 수수료인 ‘통행세’를 받은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가 통행세를 걷어간 회사로 지목한 곳은 트리온무역이다. 와인과 주류 등 면세품 중개 업무를 하는 이 회사는 그룹 계열사는 아니지만,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인 정석기업 대표이사 원아무개씨가 삼남매와 함께 공동대표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의 기내면세품 연간 매출액이 2천억원대임을 고려하면 통행세 수입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리온무역은 2010년 설립됐지만, 조 회장 일가가 기내면세품 통행세를 챙겨온 것은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의 창업자 고 조중훈 회장이 1990년 1월 기내면세품 중개업체를 설립해 납품 수수료를 챙겨왔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지분은 조양호 회장을 포함한 네 형제가 24%씩 나눠가졌다. 2003년에는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부사장을 지낸 측근에게 새로운 중개업체를 만들게 한 뒤 이 업체와 거래했다.
조 회장 일가는 앞서 2016년 계열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로 14억3천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기내면세품 온라인 판매 회사인 싸이버스카이와 네트워크 보안 서비스업체인 유니컨버스를 통해 조 회장의 삼남매에게 부당이득을 제공한 혐의였다. 싸이버스카이는 삼남매가 100% 지분을 소유한 일종의 가족회사였다. 대한항공은 일감 몰아주기로 공정위 조사를 받게 되자, 2015년 11월 삼남매가 보유하던 이 회사 지분을 전량 사들였다.
공정위의 칼, 이번엔 통할까대한항공 관계자는 “당시 싸이버스카이가 주식 배당을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삼남매가 이득을 본 게 전혀 없었다”며 “공정위의 지적을 받은 뒤 회사가 지분을 전량 사들였다. 따라서 지금은 일감 몰아주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니컨버스는 사정이 달랐다. 조원태 사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이 회사는 2015~2016년 2년 동안 총 24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는데도 조 사장에게 30억원 가까이 배당했다. 이로 인해 사익 편취 행위 논란이 일자 대한항공은 2017년 9월30일 또 다른 계열사인 한진정보통신에 영업을 양도한 뒤 본사와 합병해버렸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서울고등법원이 2017년 9월 “싸이버스카이나 유니컨버스에 귀속된 이익이 부당이익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대한항공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집행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대법원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공정위 처분이 실제 조 회장 일가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재벌 친화적’인 법원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한다. 이번 공정위 조사는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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