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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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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라를 꿈꾼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직함 쓰고 ‘퍼스트레이디’와 동행 잦아

연이은 정상회담이 정상국가로 향하는 북한의 돌파구 될까
등록 2018-04-03 17:07 수정 2020-05-03 04:28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월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오빠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2월10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오빠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은 진짜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 대표단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면담하고 온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3월26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내놓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평가다. 국제사회에서 특별한 나라가 아닌 평범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인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되길 북한이 원한다는 뜻이다.

‘원 오브 뎀’ 원하는 북한

정상국가가 되길 원하는 북한의 지향은 이미 김정일 체제 때부터 관찰됐다. 북한은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하며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수교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십수 년 전부터 북한이 타이의 정치 시스템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주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이 입헌군주제라는 국제사회가 수용하는 정치 시스템에 주목했음을 뜻한다. 이를 위해 북한이 타이에 대표단을 파견한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도록 유도해 정상국가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국제규범으로 묶어내기보다 제재와 압박으로 고립화의 길을 걷게 했다. 물론 그 한복판에 난제인 북핵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꾸던 정상국가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1994년 미국과 맺은 제네바 합의는 조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며 깨졌고, 2005년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도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은 정상국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11년 12월 숨을 거뒀다. 이제 그 꿈을 김정은 위원장이 이어가는 듯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3월5일 남쪽 특사단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그리고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과 회담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 위원장은 3월25~28일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한 회담에서 “김일성 및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에 따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주력하는 것은 우리의 시종일관된 입장”이라고 강조하며, “한·미가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안정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미국과 대화를 원해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미국과 대화해 돌파구를 열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핵이 북한의 정상국가화의 발목을 잡아온 고질병이었던 만큼 이번에는 이 문제를 꼭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사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김일성 주석·김정일 위원장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정상국가 이미지를 쌓아왔다.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다르지 않다는 신호를 줘서 정상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장 먼저 김정은 위원장이 ‘국무위원장’ 직함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 표준에 맞추려는 노력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월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친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이란 직함을 사용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이 포함된 유엔 연설 내용을 강하게 비난하는 자신 명의의 첫 성명을 발표했을 때도 ‘국무위원회 위원장’ 직함을 사용했다. 물론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 등과의 관계에선 ‘노동당 위원장’ 직함을 쓰지만, 다른 곳에선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지도자를 의미하는 국무위원장 직함을 빈번히 사용한다. 특히 북한은 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꾸었다. 이 역시 비정상적 형태를 바꾸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두 번째로, 김정은 시대 들어 퍼스트레이디인 리설주씨가 자주 공식 석상에 있는 것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CCTV)이 3월28일 공개한 북-중 정상회담 영상을 보면, 베이지색 정장 차림의 리설주씨가 김 위원장, 시 주석,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과 함께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 때는 부인을 공개한 적이 없어 누가 진짜 부인인지 알 수 없었고, 김일성 주석 때는 내부 행사에 공개한 적은 있지만 외교활동에 동행하지는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과 관련된 움직임뿐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북한은 나름 ‘글로벌 스탠더드’에 다가서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발표한 ‘북한 과학자의 국제학술논문(SCI) 분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학자는 2005~2011년 7년간 SCI(Science Citation Index·과학기술논문 색인지수)급 학술지 총 90종에 112편의 학술논문을 실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동안에는 112종의 저널에 논문 148편을 게재했다. 특히 2015년에는 논문 65편이 실렸다.

북한의 변화는 김정은 위원장의 ‘과학기술 강국’ 정책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권력 승계 직후인 2012년 4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일꾼들에게 한 담화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을 높여 우리나라를 지식경제 강국으로 일떠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2016년 9월 김일성대학 창립 70주년을 맞아 보낸 서한에서 “우수한 학술논문들을 집필하여 권위 있는 국제토론회와 국제학술잡지에 발표하도록 하고 ‘김일성종합대학학보’를 국가적인 전문학술잡지로 정해 세계적인 학술잡지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조선노동당 기관지 은 2014년 4월 북한의 첫 습식제련소인 3월5일청년광산 제련소를 선전하면서 “환경보호 지표를 국제 허용 수치보다 훨씬 낮췄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생산시설을 지으면서 관련 기준을 국제 표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기점 될 2018년 봄

북한은 유일지배 체제라는 독특한 정치 시스템으로, 한국전쟁 이후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렇기에 북한이 자신의 비정상성을 버리고 정상국가가 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하지만 북-중 → 남북 →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2018년 봄을 잘 보낸다면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 더 활짝 열릴지 모른다.

장용훈 통일외교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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