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은 대한민국 최초의 신도시였다.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를 뚫으며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를 건설한 이래 시작된 영동지구(지금으로선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지만, 강남은 개발 초기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의 ‘영동’이라 했다) 구획정리 사업은 허허벌판에서 이뤄졌다. 그 덕분에 강남에선 계획적인 도시 설계와 개발이 가능했다.
무계획적인 강북과는 완전히 다른 출발을 한 강남은 경제·교통·교육·문화 인프라의 집적도 측면에서 비교 불가의 우위에 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강북에 있던 경기·서울 등 명문 고등학교가 강남으로 대거 이전했고, 입시학원의 대명사인 대치동으로 표상되는 학원 인프라가 존재하며, 지하철 노선(강남을 통과하는 지하철 노선은 2호선, 3호선, 7호선, 9호선, 분당선이 있다. 이는 강남 전역을 돌며 빈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다)이 이 지역 전체를 거미줄처럼 훑고 지나간다.
2017년 초, 강남·송파 전고점 회복대한민국 발전의 중심축인 경부축선의 출발선이라는 지리적 축복, 계획도시라는 이점, 역대 정부가 시행해온 강남에 대한 아낌없는 교통·교육 등 인프라 투자가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강남에는 기업과 일자리가 넘쳐나게 됐다. 대한민국의 일자리·교통·교육 등에서 압도적 일등인 강남 집값이 다른 지역보다 비싼 것은 당연했다.
지금은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시인 유하가 라는 시집을 출간해 압구정동을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라고 묘사했던 게 1991년이었다. 시집의 압구정동을 강남으로 바꿔 말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요컨대 압구정동으로 상징되던 강남은 아주 오래전부터 풍요와 욕망의 땅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욕망과 풍요는 부동산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이제는 ‘넘사벽’이 된 강남 아파트 가격이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새해 벽두에 송파구 소재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이 3.3m²당 3천만원을 돌파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강남구는 재건축 단지들의 무한질주에 힘입어 아파트 평당 매매가격이 3.3m²당 4200만원을 돌파했고, 서초구가 3700만원대로 바짝 추격 중이다. 심지어 강남구나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 단지들 가운데엔 매매가격이 평당 6천만원을 넘어가는 단지도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의 집값이 지금처럼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은 생각보다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강남 집값은 전세계적 유동성 과잉과 김대중 정부의 무차별적 부동산 규제 철폐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질주했다. 이후 들어선 노무현 정부의 분투에도 대체로 2007년 최고점(2007년 1월 강남구의 평당 평균 매매가격이 3550만원이었다)을 찍었다. 이 시기의 강남 아파트 가격의 폭주는 정말 기록적인 것이었으며, 이 시기를 거치며 강남은 ‘그들만의 리그’로 자리매김한다.
한편 ABR(Anyting But Roh·노무현식 정책만 아니면 된다)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 아래서도 생존한 몇 안 되는 노무현표 부동산 시장 질서 유지 대책(대표적인 것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관리, 재건축 관련 각종 규제 등이다)과 전세계적 금융위기로 강남 집값도 크게 하락했다. 이후 서초구가 2016년 가을께 전고점을 먼저 회복했고, 2017년 초 강남구와 송파구가 전고점을 회복한다. 지금 강남은 명목가격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론·실증적 허구 ‘공급 확대론’흔히 ‘강남 불패’라고 알려졌지만,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2011년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2.2% 하락한 데 비해 강남·송파·강동구는 3.41~4.69% 떨어져 낙폭이 훨씬 컸다. 이뿐만 아니라 2012년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이 6.6% 떨어지며 휘청거리는 동안 강남구는 무려 9.46%, 서초구·송파구·강동구는 7~10%가 폭락하며 시장에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하고 가격이 낮아 기대수익률이 높은 대구나 부산, 광주 같은 지역은 2010년 이후 투기 광풍이 불어 가격이 폭등했다. 대구 수성구는 아파트 평당 평균 매매가격이 2천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0년께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시장의 유휴자금은 돈 되는 곳을 찾아 대구·부산·광주의 부동산 시장을 훑은 뒤, 2014년 무렵부터 강남과 서울로 집결했다고 해석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물론 투기세력과 유휴자금이 강남과 서울 등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직접적인 계기는 LTV와 DTI 완화, 재건축 관련 규제 형해화(내용 없는 뼈대)를 골자로 하는 ‘초이노믹스’였다. 그리고 “빚내서 집 사라”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올인’하며 투기 심리를 부추기는 데 열중한 이명박·박근혜 두 전 대통령의 노력도 강남 집값 상승의 일등 공신이라 할 수 있다.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조선·중앙·동아’ 등 비대 언론과 경제지, 시장 근본주의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강남 집값을 잡으려면 강남을 대체할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강남 집값이 계속 오르는 건 시장 참여자들이 강남을 모두 선호하는 데 비해 공급은 제한적인 탓이니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역이 영향을 받는다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공급 확대론’은 이론적·실증적으로 허구다. 부동산 시장이 수요·공급 법칙의 지배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시장 상황에서다. 투기적 부동산 시장에서는 수요가 폭증해도 공급은 오히려 준다. 최근의 강남 부동산 시장이 극명히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부동산 외의 재화가 거래되는 시장에선 수요가 늘어나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늘면서 수요과 공급이 균형점을 찾기 마련이다. 투기적 수요가 기승을 부리는 부동산 시장은 반대로 움직인다.
실증적 사례도 공급 확대론이 허구임을 증명한다. 지금도 강남 인근에는 강남을 대체할 목적으로 조성된 도시가 많다. 분당·판교·위례 등이 그렇다. 이런 도시를 만들어 공급을 늘렸다고 강남 집값이 안정됐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천당 위 분당, 분당 위 판교’라는 말이 있듯이 판교 신도시 건설은 시장 참여자들의 투기 심리를 자극하는 재료로 기능했다. 2006년 가을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 장관의 인천 검단신도시 확대 발언이 오히려 투기 심리에 불을 붙여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을 미친 듯이 끌어올렸던 경험을 망각해선 곤란하다. 투기 심리가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공급 확대 신호는 집값 폭등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2000년대 초반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강남도 2000년대 초반과는 다르다. 강남은 경제·교통·교육·문화 등의 인프라에서 타 지역을 압도한 결과, 강남 집값은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다른 지역과 강남을 구별짓는 큰 특징이다. 강남이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만큼 문재인 정부도 강남을 다르게 대할 필요가 있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강남 집값과 씨름할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 좋다. 대신 정부와 공공이 만들어낸 강남이라는 가치를 향유하려는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으면 된다.
지금 강남 시민 대부분은 정부와 공공이 만든 가치를 무임승차에 가깝게 누리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강남 시민들도 그리 원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라도 보유세, 양도소득세, 임대소득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을 통해 강남 시민들이 누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서비스에 정당한 비용을 청구해야 옳다.
물론 보유세와 양도세 그리고 임대소득세의 현실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본격 시행하면 강남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역이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 대책은 강남만을 표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다만 강남 시민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입지에 사는 것에 걸맞게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비싼 집을 소유한 만큼 다른 지역의 시민들보다 보유세 등을 더 내는 것을 피할 순 없다. 나는 강남 시민들이 늘어나는 보유세 등의 부담을 흔쾌히 받아들일 공동체 의식과 분별력을 지녔을 것이라 믿는다.
이미 강남은 ‘그들만의 리그’2000~2007년 1단계 점프와 2014~2017년 2단계 점프를 통해 이미 강남은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 우린 그걸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이제 강남 집값에는 신경을 끄는 게 좋다. 문재인 정부의 관심사는 강남이 누리는 서비스에 상응하는 비용을 강남이 내게 하는 것으로 전환돼야 한다.
강남 시민들이 보유세, 양도소득세, 임대소득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으로 공공이 제공하는 강남의 압도적 인프라를 사용하는 대가를 치르는 결과로 강남 집값이 안정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강남 시민들이 누리는 사회적 편익에 상응하는 비용을 내는 결과일 뿐이다. 강남 집값 안정이 정부의 정책적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글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정의센터장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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