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건 너무 똑같잖아.” 록산 게이가 외쳤다.
2014년 여름,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의 저자 록산 게이와 빌 클린턴 정부에서 건강·인권 담당 비서를 했던 도나 샤랄라, 비혼 여성 100명의 삶을 통해 ‘독립적인 생활양식’을 담은 를 쓴 레베카 트레이스터가 한자리에 앉았다. 이 걸출한 여성들은 모두 ‘백래시 북클럽’ 멤버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목적지</font></font>미국 방송사 MSNBC 기자 이린 카먼이 40여 명의 행정 전문가, 작가, 학자, 영화감독, 활동가, 기자 등을 모았다. 이들이 모여 1991년에 출간한 수전 팔루디의 를 다시 읽었다. 이린 카먼은 “여성의 진격이 반격에 부딪힐 때 나는 수전 팔루디의 ‘미국 여성에 대한 은밀한 전쟁’이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을 펴봤다”고 이 북클럽을 결성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이 20여 년 전의 책을 다시 읽으며 계속 반복하는 외침은 ‘도대체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레베카 트레이스터는 “비혼 여성 100명을 취재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수전 팔루디의 책 속 이미지와 여전히 똑같다”는 데 놀랐고, “저출산으로 인구가 감소한다는 공포감을 주는 게 똑같다”는 데도 경악한다. 작가 케이트 하딩도 “세상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충격받았다. …성차별적인 혹은 퇴행적인 마케팅, 값비싼 상품과 엄청난 시간 투자를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에 숨은 계급적 함의, 예쁘고 위협적이지 않게 보이기 위해 여성들이 견뎌야 할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압력들”의 기시감을 말했다.
수전 팔루디는 “미국 여성들이 몇 세대를 끝없이 돌고 있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 채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가까워지기만 하는 나선에 갇혀 있다”며 “미국 여성들은 늘 조금 더 기다려야 하고. 조금 더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고, 무대 위에 오를 시간이 아직 좀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썼다. 1848년 수전 앤서니 등이 주축이 돼 요구한 여성 참정권, 교육, 일자리에서의 자유, 자발적 모성애 요구 등은 이혼을 금지하는 이혼법 통과와 피임과 낙태가 금지되는 등의 반동에 저지당했다. 1910년대 초 재개된 여성참정권 투쟁도 여성운동 지도자에 대한 ‘빨갱이 사냥’이란 위기를 겪은 뒤인 1920년에야 열매를 맺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엔 여성 고용이 늘어났지만 전쟁이 끝나자 가장 먼저 해고됐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은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먼저 해고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10~20년이 지난 요즘에야 회자된다. 엔 결함도 많다. 북클럽 멤버 40명이 계속 이야기하듯, 백인 중심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이며, 흑인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통찰은 없다. 여성이 역사에서 지워졌듯, 에서도 흑인 여성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팔루디가 남긴 족적</font></font>
이에 대해 책의 한국어판 해제를 쓴 문화비평가 손희정은 말한다. “여성의 몸 위에서 억압과 착취의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반복되는 역사와 벌이는 싸움은 시대적, 계급적, 인종적 한계를 안고 있을지라도 그 한계에 갇혀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운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그 운동이 야기하는 인식의 전환은 다른 문제들을 사고하는 데 뚜렷한 족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팔루디가 멈춘 자리가 우리가 멈추는 자리는 아니기를 바란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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