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가 많이 날아오면 봄이 오는 것 아니겠느냐.”
근래 여기저기서 자주 들려오는 이 표현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의 한국 배치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갈등 완화에 대한 기대감을 십분 느끼게 한다. 제비는 과연 얼마나, 어디까지 날아왔을까?
10월31일 한국과 중국의 외교부가 동시에 발표한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 문서가 나오면서 기대감이 더욱 높아지는 분위기다. 협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청와대가 이 합의를 사드 문제의 ‘봉인’이라고 표현한 데서 보듯, 한국과 중국이 갈등을 현 상태에서 일단락하자고 합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단체비자 신청 중국 여행사 아직… </font></font>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번 합의를 앞두고 ‘제비’들이 날아오는 건가 싶은 일련의 사건들이다. 10월13일 쉽지 않을 듯하던 통화스와프 협정 연장 체결이 발표됐고, 같은 달 24일 2년 만에 한중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어느 중국 여행사가 단체관광 모객을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고, 저가항공사 한 곳은 중단시켰던 제주 운항을 재개했다. 한국 연예인이 오랜만에 중국 방송에 출연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중국 공안과 한국 경찰의 교류가 다시 시작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중 관계 회복의 전망으로 증시에 훈풍이 불고 기대감 충만한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 봄인가…?
봄을 향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마음은 없다. 다만, 봄이 온다는, 또 제비가 왔다는 확신을 갖기에 미심쩍은 것들이 있다. 가령 중국 여행사의 단체관광 모객은 실질적인 단체관광이 아니었다. 중국 당국이 지난 3월부터 전면 중단시킨 것은 단체비자 발급을 통한 단체관광이었지만, 이 여행상품은 단체로 각 개인의 비자를 모아서 진행하는 편법성이었다. 관련 업계에선 이런 편법 단체여행이 과거에도 있었다고 전한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아직 단체비자 신청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일부 중국 여행사들이 한국에 차량·숙소 등을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당장 단체비자 신청을 하는 여행사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단체비자 신청은 우선 여행상품을 만들어 여러 경로로 손님들에게 판매한 뒤 해당 리스트를 제출해야 가능하다. 모객에 걸리는 기간이나 상품 구성 여건 등을 고려하면, 일러도 2월 춘절(설)이나 평창올림픽 때가 돼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이 또한 당국이 그동안 금지했던 조처를 해제한다는 전제 아래서 얘기다.
10월31일부터 저가항공사 춘추항공의 닝보~제주 운항이 재개된 것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갑작스럽기까지 한 운항 재개를 보며 업계에서는 운항 시간대 유지를 위한 방편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항공 당국은 각 항공사가 신청한 시간대의 실제 연간 운항 기록을 근거로 이듬해 해당 시간대 유지 여부를 결정한다. 올해 실제 기항 비율이 기준치에 이르지 못하면 내년엔 시간대 조정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춘추항공의 닝보~제주 노선은 지난해 11월 개통했다가 지난 7월부터 운항을 중단해 기항 비율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저가항공사는 보편적으로 손님이 몰리는 노선에 항공기를 집중 투입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름철 성수기에 다른 곳으로 항공기를 돌리느라 제주 노선을 일시 중단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10월31일 제주행 춘추항공 에어버스320 항공기(최대 162석)에 탄 손님은 71명이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드 보복 보도 95% 오보</font></font>한류 콘텐츠의 텔레비전 방영이나 한류 연예인의 방송 출연 역시 요원해 보인다. 11월1일 저녁 에 걸그룹 마마무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1년여 만에 중국 방송 무대에 한국 연예인이 출연한 만큼 한류를 제한한다는 ‘한한령’이 해제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마마무가 나온 프로그램은 ABU(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주최의 ‘아시아 송 페스티벌’이란 행사로, 중국 방송사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한국의 마마무, 일본의 리싸 등 14개국의 가수 1팀씩 1곡을 불렀고, 마마무를 섭외한 것은 한국 쪽 주관 방송사인 KBS였다. ABU의 현 회장은 고대영 KBS 사장이다.
일부 한국 매체는 송중기·송혜교 부부의 전날 결혼식 소식이 중국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며, 이 역시 한한령의 완화 조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지난 7월 이 커플의 결혼이 발표될 때도 중국 인터넷에선 관련 소식이 며칠 검색어 1위를 이어갔다. 두 사람을 연결해준 드라마 가 중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린 것에 비춰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단체여행과 한류 콘텐츠 제한은 한반도 사드 배치 이후 불거진 대표적인 사드 피해 사례다. 봄이 온다면 가장 먼저 올 곳이고, 봄볕이 가장 따스하리라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나 서울은 어떤지 몰라도 베이징의 한국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제비가 날아들었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 발아래 동토가 여전히 단단하다.
사드 제재 완화라고 국내에 소개된 것을 한 꺼풀 들춰보면 아직 그와는 무관하다는 판단이다. 이는 지난해 ‘사드 제재’ 관련 소식이 서울과 베이징을 뒤덮던 시기와 닮아 있다. 2013년부터 3년간 주중대사관 상무관으로 일했던 이호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은 지난 8월 말 한국 귀임을 앞두고 한 강연에서 “모든 것을 사드로 설명하면 착시가 발생한다. 화장품, 비데, 설탕 긴급수입제한 등 일부 언론이 사드 때문에 중국이 취한 보복성 조처라고 보도한 것들 가운데 95%는 오보였다. 중국 당국의 정상적인 법 집행이었고, 우리로서는 극복해야 할 일들이었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국, 중국 발전에 있으나 마나”</font></font>사드 갈등이 한창이던 시기, 3월1일치 사설은 “한국은 중국과 육로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선진 기술도 없고, 우리에게 중요한 자원도 없으니, 중국 발전에서 있으나 마나 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사드 갈등이 한국과 중국에 서로의 민낯과 현실을 인식시켜준 만큼, 두 나라는 이제부터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그런 만큼 미세한 현실을 꼼꼼히 보지 않으면 착시와 오해, 그로부터 비롯된 관계 설정을 방치할 위험이 크다. 자칫 엉뚱한 새를 보고 제비가 왔다며 봄옷을 꺼내 입었다가 호된 감기에 시달릴지 모른다.
김외현 베이징 특파원 osca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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