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개인적인 얘기부터 하려 한다. 나는 1999년 여름에 시민단체인 평화네트워크 창립을 준비하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를 비롯한 미국의 미사일방어(MD)체계 문제를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MD가 한반도 평화에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불안한 확신을 갖고 일관되게 반대 주장을 해왔다. 2014년부터 수면 위로 올라온 한국 내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3불’로 일컫는 전략적 문제</font></font>그런데 지난 9월7일 사드의 ‘임시배치’가 전격 강행됐다. 나는 당연히 이를 공개적으로 강력 비판하면서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최악의 상황이란 중국의 사드 보복이 장기화되어 우리 국민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중국의 군사적 대응을 초래해 한국의 안보 딜레마가 가중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사드 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말하는 대북 ‘군사 옵션’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다짐했다.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나름대로 한국과 중국의 사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이 10월31일 공개된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이하 10·31일 협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국가 간의 문제에 접근할 때 민간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됐다.
한국 정부는 10·31 협의 결과에서 “사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입장과 우려를 인식한다.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고, 이에 대해 중국은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양국은 “한중 간 교류협력 강화가 양측의 공동 이익에 부합된다는 데 공감하고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나가기로 합의”하는 데 성공한다.
이 합의를 통해 한중 관계는 정상화될 수 있을까? 또 사드 문제는 이것으로 봉합된 것일까? 일단 양국 외교 관계가 정상화의 궤도에 오르고 중국의 사드 보복도 점차 완화되리라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양국이 사드 문제와 관련해 소통을 계속하기로 한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복병은 여전히 있다. 현재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3불’로 일컫는 세 가지 전략적 문제가 있다. 현재 한국을 사이에 두고 미일 동맹과 중국이 양쪽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맞붙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 전략적 문제는 △MD 구축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협력을 일컫는다. 이와 관련해 중국은 10·31 문서에 “중국 정부의 입장과 우려를 천명”했고, “한국 측은 그간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밝혀온 관련 입장을 다시 설명하였다”는 내용이 담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한중 합의와 ‘AN/TPY-2 레이더’ </font></font>이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0월30일 국회에서 밝힌 세 가지 입장, 즉 “대한민국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고, 미국의 MD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에 변함이 없으며, 한·미·일 3국 간의 안보 협력이 3국 간의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한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안보 주권을 중국에 넘겨준 꼴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는 중국과 협의하기 전부터, 심지어 박근혜 정부도 밝혔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우려스러운 점이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MD에 한국이 참여하는지 불참하는지 사이의 경계, 중국이 반대하는 한·미·일 군사 협력과 한국 방어를 위해 불가피한 기존 ‘한미 동맹’ 사이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미국 주도의 MD에 참여한다고 선언한 적은 없지만, 미국은 한국을 대표적인 MD 협력 국가로 분류해왔다.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한·미·일 군사정보보호약정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역시 3자 간 MD 협력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또한 3자 사이의 미사일 경보 훈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미일 동맹은 MD를 고리로 삼아 사실상의 한·미·일을 묶은 3자 동맹으로 가려 한다. 이 추세와 북핵 상황의 악화가 계속 악순환을 만들 경우, 문재인 정부가 세 가지 입장을 계속 견지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곧 사드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10·31 협의 결과’를 보면, 사드가 “중국의 전략적 안보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한국의 입장과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는 중국의 입장이 병렬돼 있다. 그러면서 “양측은 양국 군사 당국 간 채널을 통해 중국 측이 우려하는 사드 관련 문제에 대해 소통해나가기로 합의하였다”고 적시되어 있다. 이 행간에 담긴 핵심적인 문제가 사드와 함께 배치된 ‘AN/TPY-2 레이더’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글로벌 MD 네트워크 한 고리</font></font>레이더라는 기계는 미사일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즉, 경북 성주 레이더의 탐지·추적권에 들어오면 북한 것이든 중국 것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관건은 성주 레이더가 탐지한 미사일 비행 정보를 성주 사드용으로만 이용하느냐, 아니면 미국과 일본의 MD 체계로도 이용되느냐이다. 전자는 AN/TPY-2 레이더의 ‘종말 모드’이고 후자는 ‘전진배치 모드’에 해당된다. 만약 성주 레이더가 오로지 종말 모드로만 이용된다면, 한국이 미국 MD에 참여하지 않고 한·미·일 삼각동맹으로 가지 않겠다는 입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주한미군 사령부는 9월10일 ‘사실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성주에 배치한) AN/TPY-2 레이더는 일본의 AN/TPY-2 레이더와 똑같은 것이지만 한국에 배치될 레이더의 역할과 임무는 일본의 레이더와 달라 다른 프로그램이 설치되어 있다. 사드가 한국에 배치될 시 유일한 임무는 북한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것이다. 일본의 레이더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로부터 미국 본토와 일본을 방어한다.”
이 말의 요지는 일본 레이더는 전진배치 모드로 된 반면에, 성주 레이더는 종말 모드로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로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재’에는 종말 모드로 된 것이 맞다. 이게 끝은 아니다. ‘미래’에도 종말 모드로만 운용될 것인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설명이 미래에도 사실에 부합하려면 종말 모드와 전진배치 모드의 소프트웨어는 ‘다른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그런데 회계연도 2017년 미국 대통령 예산 추계서에는 “전체 AN/TPY-2 레이더(전진배치 모드와 종말 모드)를 공통의 안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구성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전략적 균형 와해” 우려 최소화 </font></font>이 문서에 따르면 업그레이드 작업은 2015년에 시작되어 2017년에도 지속될 예정이다. 또한 업그레이드 대상을 ‘전체’라고 밝혀 성주에 배치된 레이더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만약 성주 레이더도 업그레이드 대상이 된다면, 전진배치 모드와 종말 모드로 ‘신속한 전환’ 내지 ‘겸용’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해석을 강력히 뒷받침해주는 내용도 있다. 펜타곤 산하 미사일방어국(MDA)의 2017년 예산 추계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특수화된 통신과 레이더 소프트웨어의 제공에 힘입어, 사드 포대는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BMD) 시스템의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MC) 시스템과 직접 통신이 가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사드 포대는 통상적인 적극 방어용 교전 임무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의) 탐지와 추적 기능도 수행할 수 있다.”
여기서 언급된 ‘사드 포대’에는 레이더도 포함된다. 그런데 사드 포대에는 C2BMC가 없다. MD 체계에서 ‘뇌’에 해당되는 C2BMC는 미국 본토의 전략사령부와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사령부와 같은 핵심 사령부에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사드 포대가 C2BMC와 ‘직접 통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성주 사드가 한국 방어를 초월하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MD 네트워크의 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주한미군사령부는 성주 레이더의 임무가 한국 방어에만 국한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 정부는 모든 레이더를 미국 주도의 다른 MD 체계와 연동하기 위해 업그레이드 작업을 해왔다.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성주에 배치된 레이더를 업그레이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하면 미국과 일본 MD의 연계성이 차단됨으로써, 중국이 제기해온 “전략적 균형 와해” 우려는 최소화될 수 있다.
레이더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최후의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0월11일 와 한 인터뷰에서 북한 미사일의 대처 방안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97%의 확률로 공중에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갖고 있다. 그래서 2발의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면 (북한이 쏜) 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다.”
이 발언이 사드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발언이 나오기 한 달여 전에 성주 사드 배치가 완료되었고, 9월 하순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을 뉴욕에서 만났을 때 이를 확인한 적이 있었다. 트럼프의 발언이 사드 배치 완료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사드를 비롯한 MD의 가장 큰 위험성은 이것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있다. 이러한 믿음에 북한이 미국이 설정한 금지선, 즉 ‘핵탄두 장착 ICBM 보유’라는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판단, 여기에 북핵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면, 한반도는 ‘아마겟돈’에 성큼 다가서게 된다. 그런데 트럼프는 전쟁불사론을 과시하면서 MD에 대한 확고한 믿음까지 표출했다. 트럼프가 추구해온 외교적 접근이 성공할 가능성도 매우 낮아 보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전쟁 의지 아니라 협상 의지를</font></font>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임시 배치’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서 “전쟁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전쟁을 막기 위한 조처들이 전쟁을 앞당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여, 사드 체계가 미국 주도의 MD에 통합되는 것을 최대한 막으면서 북핵 문제 해결을 향한 새로운 외교적 접근을 도모해야 한다. 트럼프의 전쟁 의지가 아니라 협상 의지를 일깨우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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