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과 북한 그 자체를 파괴하기 위한 군사적 옵션이 존재하며, 만일 그들(김정은 세력)을 막을 전쟁이 있다면 그건 저쪽(한반도)에서 있을 것이다. 수천 명이 사망한다고 해도 바로 거기일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8월 위기설 </font></font>누구의 말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했다는 발언이 흘러나와 백악관이 발칵 뒤집혔다. 7월1일 미국 방송 <nbc>에 출연한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트럼프에게 들은 말”이라며 폭로한 내용이다. 이 발언은 항간에 오가는 ‘8월 전쟁 위기설’에 기름을 부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8월엔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다. 로널드레이건호, 칼빈슨호 등 미국의 항모전단과 핵추진 잠수함이 훈련에 참가한다. 같은 날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분명히 북한에 대해 느끼는 점을 얘기했다. 우리는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다”며 “어떻게 할지 공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은 상대적인 것이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모멸적 말의 대척점에 선 것은 북한이다. 북한의 태도도 강경하다. 북한에 핵과 미사일은 더 이상 협상 도구가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왔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북한의 속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2016년 1월 ‘김정은 신년사’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2차 실험 직후인 지난 7월31일까지 조선노동당 기관지 의 보도를 분석했다.
2013년 3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당시 직함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핵·경제 병진 노선을 채택한 이후 핵·미사일 개발은 당연한 국가적 과제가 됐다. 마침 새로 등장한 박근혜 정권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그 앞에선 무용지물이 됐다. 박근헤 정권은 핵·미사일 실험이 있을 때마다 완전한 핵무기를 보유하려면 “수년은 걸릴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비현실적인 ‘북한 붕괴론’에 경도돼 있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7년 7월27일 북한은 새로운 탄도미사일 ‘화성 14형’을 고도 3700km 이상으로 쏘아올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기술을 확보했음을 입증해냈다. 그러나 지난해만 해도 ICBM의 핵심 기술은 여전히 모의실험 단계에 그친 상태였다.
2016년 3월15일 ‘탄도로케트 전투부첨두의 대기전재돌입환경모의시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자. 기사에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핵공격 능력의 믿음성을 보다 높이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핵탄두 폭발 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여러 종류의 탄도로케트 시험발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올해 초 수소탄 실험으로 고무된 상태에서 핵탄두 기폭장치와 ‘운반체’인 미사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도가 배어나온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지 않은 4월9일 ‘대륙간탄도로케트 대출력발동기지상분출시험’이란 제목의 기사에선 ICBM 추진체 실험에 나섰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기사에는 “미제의 가증되는 핵위협과 전횡에 대처하여 핵공격 수단들의 다종화·다양화를 보다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겠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미사일 개발의 목적과 이유를 분명히 하고 최종 목표(다종화·다양화)를 밝힌 것이다.
4월24일엔 9일 언급한 다양화를 실천하듯 김 위원장의 현지 지도로 전날 이뤄진 함대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사실을 공개했다. 은 ‘전략잠수함 탄도탄수중시험 발사에서 또다시 대성공’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강력한 핵공격의 또 다른 수단을 가지게 되었다”고 선언하며 “남조선 괴뢰들과 미제의 뒤통수”를 “아무 때나 마음먹은 대로” 타격할 수 있음을 자랑했다. SLBM은 적에게 쉽게 탐지되지 않고 적의 1차 핵공격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위력적인 전력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이날 보도대로라면 북한의 SLBM 능력은 2015년 5월 수중사출시험 단계를 넘어 비행시험 단계에 들어서는 성과를 보인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ICBM 핵심 기술 확보 공포 </font></font>
그로부터 다시 두 달 뒤인 6월23일엔 “지상대지상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0’ 시험발사는 탄도로케트의 최대 사거리를 모의하여 고각 발사 체제로 진행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날 은 “태평양 작전지대 안의 미국놈들을 전면적이고 현실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이는 북한이 태평양의 일본 오키나와와 미국령 괌 등에 산재한 미군부대를 타격할 수 있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실제 이 미사일은 고도 1천km를 돌파해 괌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한·미·일 3개국은 이 미사일을 ‘무수단’이라 추정했지만 북한에선 이를 ‘화성-10’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 일본과 미 태평양사령부가 바짝 긴장한 것은 물론이다.
1년 전 2016년 여름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더욱 뼈아프다. 북한은 지난해 여름을 거치면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9월6일 은 화성포병부대의 스커드미사일 훈련이 이동식 발사 차량을 이용해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미사일 공격이라는 것은 상대국의 미사일방어 체계를 무력화한다는 것을 뜻한다. 같은 달 20일 보도는 한 걸음 나아가 현재 ICBM 엔진의 초기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백두산 계열 엔진’이 등장했음을 알린다. 은 이를 ‘정지위성운반로케트용’이라면서도 “이번 시험 성과에 토대하여 위성 발사 준비를 다그쳐 끝냄으로써 (중략) 큰 승전 소식을 안겨주자”고 주장했다. ICBM의 핵심 기술을 확보해가는 과정이란 사실을 감추지 않은 셈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책 없는 트럼프 행정부</font></font>
9월 실험 이후 북한은 미 대선 기간 내내 핵·미사일 공개 실험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이듬해 1월1일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다시 한번 개발 의지를 공표한다. 김 위원장은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 준비사업이 마감 단계”라면서 동시에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핵위협과 공갈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의 문전 앞에서 연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연습 소동을 걷어치우지 않는 한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북한이 지금까지 주장해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례적으로 벌어지는 한-미 연합훈련과 각종 제재 위협이 중단되지 않으면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개발 과정에서 협상 여지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1월 첫발을 뗀 트럼프 행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트럼프 정부가 ‘최대 압박과 관여’ 정책으로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북한은 본격적으로 ICBM을 포함해 다양한 미사일 실험을 한다. 은 5월15일 ‘지상대지상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12형 시험발사 성공’이라는 보도를 내놓는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5일 만이다. 이어 운명의 시기가 다가왔다. 북한은 7월4일과 7월28일 연속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 14형’을 발사했다. 은 이번에 쏘아올린 ICBM 화성 14형의 기술적 성과를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다. 또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의문을 품었던 재진입 기술과 목표 수역 도달 등의 기술을 “확증했다”고 주장했다. 은 7월29일 “(28일 발사를 통한) 재확증”을 거듭 언급하며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케트를 기습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되었으며,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북의 ICBM은 완성 단계에 다다른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미국에 보내는 선물보따리 </font></font>
7월 두 번의 ICBM 실험 뒤 보도에서 눈에 띄는 것은 ‘선물보따리’라는 단어다. 7월5일 은 4일 ICBM 시험발사를 두고 “‘독립절’에 우리에게서 받은 ‘선물보따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 같은데 앞으로 심심치 않게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들을 자주 보내주자”는 김 위원장의 말을 전하고 있다. 뒤이은 8일 외무성 담화에서는 “대륙간탄도로케트시험발사는 다른 그 어느 나라도 아닌 바로 미국에 보내는 ‘선물보따리’”라고 했다. 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선물보따리’가 주는 의미는 복합적이다. 우선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한 핵·미사일 실험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또 향후 협상의 진행 상황에 따라 ‘선물보따리’는 지금처럼 반어법이 될 수도, 말 그대로 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진희관 인제대 교수는 “미국의 정책이 바뀌면 북한은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이라크나 리비아처럼 공격받을 여지를 만들지 않고, 철저한 안전 보장이 있을 때만 협상 테이블로 올라올 것이다. 선물보따리라고 표현하는 것은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에서 일정 궤도에 올랐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은 과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북한이 문재인 대통령이 제시한 ‘베를린 구상’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 7월8일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의 말을 따 “남조선 당국이 내든 ‘대북 전략’은 담고 있는 내용과 추구하는 목적에 있어서 허황하고 불순하기 그지없는 궤변에 불과하다. 이명박, 박근혜 보수 역적 패당이 ‘북핵 포기’와 ‘흡수통일’을 떠들어대며 내들었던 ‘비핵, 개방, 3000’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본질상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꼬집었다.
지난 9년에 걸쳐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보여온 강경한 대북정책을 떠올릴 때 ‘베를린 구상’에 대한 북한의 어깃장은 다소 의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재인 정부는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회담과 군사분계선상 적대 행위 중지를 위한 남북 군사당국자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 문제를 푸는 데 운전석에 앉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상황이다. 북한은 한발 더 나아가 “조선반도 핵문제는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 공갈에 의해 산생되었다. 그것은 철저히 조-미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끼어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핵·미사일을 개발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목표는 (개발 수준에서 보면) 9부 능선을 넘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를 이어온 오랜 목표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뒤늦게 협상을 이끌 여지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핵·경제 병진 노선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이산가족 상봉, 남북 경제협력 등의 제안을 당장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때도 2년 정도는 북한의 무시를 견디며 신뢰를 얻어갔다. 때를 기다려 우리도 다양한 접근법을 고민해 공통적 의제를 찾으면 못 풀 문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실패가 우리 것이어서는 안 된다</font></font>
“(미국 정책은) 북한 정부를 지금 있는 그대로 다뤄야지, 우리가 바라는 모습을 가정하며 대해서는 안 된다.”
1999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포괄적 대북 해법을 제시한 윌리엄 페리가 주도했던 ‘페리 프로세스’에 나오는 핵심 문구다. 페리는 자신의 회고록 에서 “2015년에 마주하게 된 것은 6~10개의 핵무기로 무장한 채 더 많은 핵폭탄을 만들기 위한 핵분열성 물질을 생산하며 장거리 미사일을 실험하는 도전적이고 분노로 가득한 북한이다. 결과로 보자면 아마 이것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실패한 외교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페리의 말대로 ‘전략적 인내’라는 말로 포장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철저한 실패였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가 우리 운명을 결정짓게 해선 안 된다. 실패가 우리 것이어선 안 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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