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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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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치닫는 한반도 드라마

미 태평양사령부, 중국의 위협도 이례적 언급 “우선순위는 미사일방어(MD)”
등록 2017-05-07 15:04 수정 2020-05-03 04:28
지난 4월26일 오전 사드 관련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경북 성주 골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26일 오전 사드 관련 장비를 실은 트레일러가 경북 성주 골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한국 시각으로 4월26일은 특기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세 가지 주목할 일이 같은 날에 벌어졌다.

첫째, 이날 새벽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철통같은 엄호 속에 엑스(X)밴드 레이더를 비롯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제 장비의 상당 부분을 경북 성주 롯데 골프장에 기습 배치했다. 둘째, 트럼프 대통령은 100명에 이르는 상원의원 전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자신의 대북정책을 설명했다. 셋째,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미사일방어(MD) 구축이 우선순위라며 북한뿐 아니라 중국까지 입에 올렸다.

4월 중순까지만 해도 백악관에선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 선택을 내렸다. 한국 국민에게 역정보를 흘리며 사드 배치를 몰래 추진하려 한 것인지, 갑자기 생각이 바뀐 것인지, 황교안 권한대행 정부의 설득에 넘어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이날 사드 배치가 기습적인 만큼이나 이례적이고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조차 “미 육군이 예외적인 혁신과 유연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할 정도로 말이다.

사드 배치가 통합 MD의 일환

미국 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설명하기 위해 상원의원 전원을 초청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트럼프는 이 자리에서 달랑 3분만 발언하고 질문은 받지 않았다. 상당수 상원의원들은 ‘왜 이 시점에 우리를 부른 것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상원의원들에게 브리핑을 마치고 자신들 명의로 대북정책 합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역시 처음 있는 일이다.

성명에선 북핵 문제를 “국가 안보에 대한 긴급한 위협이자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경제제재 강화와 동맹·파트너들과 외교적 조치를 추구해 “북한이 핵·탄도미사일, 그리고 핵확산 프로그램을 해체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무력 사용을 언급하는 대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로운 비핵화를 추구한다”며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협상의 문을 열어두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 동맹국들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해리스 사령관의 증언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다수 언론은 기습 배치된 사드가 “곧 가동에 들어간다”는 발언을 집중 보도했지만,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서면 제출 자료를 통해 “태평양사령부의 우선순위는 MD”라며 두 나라의 위협을 지목했다. 하나는 당연히 북한이고, 또 하나는 뜻밖에 중국이다. “중국의 고도 재진입체와 초음속 무기를 비롯한 탄두 실험과 배치는 미국의 전략적·운용적·전술적 이동 및 작전상의 자유에 도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MD를 추진하면서 중국을 이렇게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해리스 사령관은 한국 내 사드 배치가 통합 MD의 일환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일본의 X밴드 레이더, 괌에 배치된 사드, 하와이의 해상 기반 X밴드 레이더 배치를 언급하면서 사드 배치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미 태평양사령부와 주한미군은 펜타곤(미 국방부)의 지원을 받아 미 육군 및 미사일방어국(MDA)과 함께 수개월 내에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하기 위해 한국과 협력하고 있다.”

이를 보면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미 태평양사령부와 육군, 그리고 MDA도 사드 배치 주체로 언급했다. 이는 한국 정부와 언론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라고 표현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실제 주한미군 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의 보조 부대라는 점, X밴드 레이더와 직접 통신 및 원거리 통제가 가능한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MC)이 주한미군 사령부엔 ‘없고’ 태평양 사령부엔 ‘있다’는 점에서 성주 X밴드 레이더의 실제 운용 주체는 태평양사령부가 될 공산이 크다. 해리스 사령관은 “태평양사령부는 완전히 통합적인 탄도미사일방어 체제 구축을 목표로 일본, 한국, 오스트레일리아와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로써 사드 및 X밴드 레이더의 성격은 명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스템이 미국 주도 통합 MD의 일환이며,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겨냥한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박근혜-황교안 정부는 “사드는 MD와 무관하고 오로지 북핵 대응용”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 태평양사령관의 증언은 한국 정부가 하늘을 가리려 했던 손바닥을 치워준 것이다.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해보자. 트럼프는 왜 기습적으로 사드 배치를 강행한 것일까? 북한의 위협이 임박해서?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사드 배치가 불확실해질 것 같아서? 수긍할 수 있는 설명이다. 그런데 왜 4월26일이었을까? 왜 상원의원 전원을 불러다 대북정책을 설명하고, 외교·국방·정보 수장들이 합동성명을 발표하기 직전에 사드 배치를 밀어붙인 것일까?

트럼프의 노림수는?

내 생각으로는 이른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전략의 일환이 아닐까 한다. 북한과 중국을 상대로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예방적 선제타격 가능성을 언급하고 핵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한반도에 보내면서 사드 배치까지 해버리면 북한은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여길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타국을 공격하거나 예방적 공격을 검토할 때, 공격력과 함께 방어용 무기도 투입해왔다. 1991년 걸프전,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시설 타격 검토, 2003년 이라크 침공 및 대북 공격 검토 등이 이에 해당된다. 북한도 이 사례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엄청난 위험이 따른다는 점이다. 북한이 미국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경우 한반도 전쟁 위기는 급격히 고조될 수 있다. 미국의 사드 배치와 대북 성명 발표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지 않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북 성명에선 무력 사용을 암시하는 언급이 일절 없다. 대신 평화적 해결과 협상 의지를 밝혔다. 미국이 북한에 ‘아직은 전쟁할 생각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기습적인 사드 배치와 대북 성명을 통해 트럼프가 의도한 대북 압박 핵심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지금 당장 너를 공격하진 않겠다.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하지 마라. 그러면 협상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끝내 핵무장, 특히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간다면 그때는 각오해라.’

트럼프는 사드 기습 배치로 대북 압박에 몰두하던 중국의 뒤통수도 때렸다. 중국에 사전 양해를 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트럼프는 틈만 나면 ‘고마워, 중국’을 말하면서 대선 후보 때 공언한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고관세 부과 같은 무역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게 ‘당근’(carrot)에 해당된다면, 사드 배치는 ‘채찍’(stick)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대중국 군사작전의 핵심 책임자인 태평양사령관은 “MD의 대상이 중국”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잘하고 있는데, 좀 부족해. 북한을 더 압박해봐. 안 되면 알지?’

정리하자면, 버락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의 종언을 선언한 트럼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북핵 문제를 빨리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플랜 A’는 북한과 중국을 동시에 압박해 자신이 원하는 조건이 충족되면, 즉 북한이 비핵화 의사를 밝히면 협상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패하면 ‘플랜 B’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있다. 바로 공격력과 사드 같은 방어력을 대폭 증강해 대북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코리아 엔드’ 게임이 다가오는 셈이다.

다가오는 ‘코리아 엔드’ 게임

지금까지는 이 판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 한 명이 빠져 있었다. 수구보수 진영이 ‘코리아 패싱’이라는 정체불명의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공방 속에 당사자인 한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5월9일 대선이 끝나면 그동안 뇌사 상태에 빠져 있던 한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등판하게 된다. 그리고 사드 대란을 진압하는 것은 차기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기어코 사드가 배치돼 가동에 들어간다면 ‘코리아 아마겟돈’에 성큼 다가설 위험이 크다.

북한은 세계 최강인 미국의 방어력을 뚫기 위해 핵억제력을 강화할 공산이 크다. 중국은 전략적 균형 유지를 위해 성주 사드 기지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을 강구하는 한편, 핵전력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한-미 동맹 대 중국의 갈등은 격화되고 북한은 이 균열을 핵전력 강화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다. 이는 곧 트럼프가 ‘플랜 B’를 떠올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차기 정부가 사드 배치를 잠정 중단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존재한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규정에 따르면 주한미군에 기지 제공이 완료된 이후에도 “어느 일방 정부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시설과 구역에 관한 협정을 재검토하여야 한다”고 나와 있다. 이를 근거로 미국에 사드 잠정 중단을 요구하고 북핵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자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만 막장으로 치달아온 한반도 드라마의 반전과 ‘해피엔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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