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심이 유동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대세론으로 다져지는 듯하던 판이 요동치고 있다. 4월3일 문 전 대표가 ‘사실상 본선’이라는 치열한 민주당 경선을 뚫고 후보로 확정되고 나서의 일이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안철수 후보는 1~2주 전에 견줘 적게는 10%포인트, 많게는 20%포인트 넘게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한 달 남은 대선 판도가 단박에 ‘문재인 대세론’에서 ‘2강3약’ 구도로 재편된 모양새다.
균열이 시작된 것은 헌법재판소가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였다. 촛불집회의 최대 동력인 ‘정권 교체’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어떤’ ‘누구에 의한’ 정권 교체냐에 대한 질문이 표심에서 감지되기 시작했다. 당 경선을 치르던 민주당 후보들도 ‘더 준비된’(문재인), ‘정권 교체 그 이상’(안희정), ‘진짜 교체’(이재명) 등 ‘어떤’ 정권 교체로의 영점 조정에 들어갔다. 안철수 후보가 ‘대신할 수 없는 미래’로 ‘누구’에 의한 정권 교체냐에 힘줘 얘기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흐름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각 주자들은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주목했다. 지역으로는 충청과 대구·경북, 정치 성향으로는 중도·보수가 중심인 안 지사 지지층의 특성 때문이었다. 이들은 대들보가 주저앉은 보수정당을 떠나온 표심이었다. 따라서 중도에서 보수에 가까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나 중도에서 진보-보수를 오가는 안철수 후보는 안 지사를 지지했던 민심이 결국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바빴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 충성도를 고려할 때 문 후보의 대세론을 흔들 뇌관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판단했다.
‘아넥시트’, 문 대세론 흔든 첫 진앙지예상은 적중했다. 문 후보의 대세론을 흔든 첫 진앙지는 이른바 ‘아넥시트’(Ahnexit·안 지사 지지층 이탈)였다. 4월3일 민주당 경선 직후 안 지사의 패배로 갈 곳을 잃은 표심이 먼저 도달한 곳은 안철수 후보였다. 4월7일 한국갤럽이 4~6일 전국 성인 1005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안 후보는 직전인 3월 5주차 조사에 비해 지지율을 무려 16%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이로써 안 후보의 지지율은 35%로, 1위 문재인 후보(38%)의 턱밑까지 차오르게 된다. 지역별로는 서울 21→39%, 충청 12→42%, 대구·경북 12→38%, 이념성향별로는 중도 26→39%, 보수 21→42% 등의 추이를 보였다. 안철수 후보 지지로 대거 돌아선 이들은 안희정 지사가 강점을 보여온 지지층과 거의 궤를 같이한다.
4월6일 가 내부 조사연구팀에 의뢰해 4~5일 전국 유권자 1500명에게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 후보가 어떻게 선거판을 뒤흔들었는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기존 안희정 지사 지지자 가운데 무려 59.9%가 안철수 후보 지지로 자리를 옮겼다. 안 지사에게 ‘충청대망론’을 기대했던 지역 여론도 안 후보의 상승세를 거들었다. 지지 후보를 바꾼 응답자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충청이 30.2%로 가장 높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nesdc.go.kr 참조). 안희정 캠프의 총괄실장을 맡았던 이철희 민주당 의원은 “안희정 지사의 지지가 중도층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다른 구심점을 만나 다시 모여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론의 흐름상 급반등 뒤 조정기를 거치게 돼 있다. 그럼에도 당분간 안 후보의 강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지지 그룹의 분위기는 어떨까. 경선이 끝나고 나흘이 지난 4월7일. 1만여 명 회원을 거느린 안 지사 지지 그룹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좌절’과 ‘분노’를 토로하는 여진이 이어졌다. 커뮤니티 운영자 ㅇ씨는 “문재인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분위기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고 했다. 후보의 준비 부족과 전략적 실수, 조직의 열세 등 객관적인 정세 분석이나 반성보다는, ‘문빠’(로 추정되는 누리꾼)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 글들이 도드라졌다. 일부 ‘비문’ 의원을 겨냥한 ‘18원’ 문자 등에 대해 문재인 후보가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말해주는 양념’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원망을 쏟아내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좌절과 분노 속 “그래도 문 찍겠다”그 와중에 커뮤니티에 안희정 지사가 경선에서 탈락한 충격 탓에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안희정 지지자분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복수심에 문재인은 아니라는 감정을 버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죄송합니다. 몰매도 제가 다 맞겠습니다. 욕을 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글쓴이는 “한 걸음이 아닌 반걸음을 위해서라도 안철수보다는 문재인을 찍자. 나는 문재인을 찍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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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철수 후보로 쏠리는 안희정 지사 지지자들의 감정적 선택을 의식한 듯 문재인 후보의 민정수석 경험, 민주당의 당내 상황 등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그러나 글쓴이는 들끓는 원망에 몰매를 맞고 커뮤니티 탈퇴를 고민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 지사의 지지자들이 이 글을 자신들의 상처를 헤집는 ‘문빠’의 무례한 행위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ㅇ씨는 “원래 안철수 후보 쪽으로 떠날 표도 있었을 것이고, 전략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 (문 후보를 택하지 않고 안 후보 쪽으로 흐르는) 대다수의 선택은 정서적, 감정적인 것”이라고 했다.
의외의 진앙지도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 그룹이다. 수도권 한 지역의 대의원인 ㅈ씨는 과의 통화에서 “투표장에서 문재인을 찍을 것”이라면서도 “마음을 잡기 어렵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ㅈ씨는 ‘문재인을 지키자’며 2016년 겨울 온라인 당원으로 입당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촛불집회에서 이 시장의 연설을 들은 뒤 이 시장 지지자가 됐다.
ㅈ씨가 입은 민주당 경선에서의 상처 또한 깊었다. 그가 속한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ㅈ씨 등 이재명 시장 지지자들이 문 후보 지지를 주저하는 이유는 “문 후보가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안 후보 또한 기득권이 아니냐”고 묻자, 이내 “논리적으로 따지지 말아달라.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 논리적인 이념 성향만 따져보면, 이 시장을 지지했던 이들은 문재인 후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지지로 돌아서야 한다, 그러나 4월6일 여론조사를 보면 이재명 시장 지지를 밝힌 그룹에서 30.1%가 안철수 후보 쪽으로 이동했다. 4월7일 한국갤럽의 발표를 봐도 자신의 이념 지향을 진보라고 밝힌 유권자들 가운데 ‘안철수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이들은 한 주 만에 12%에서 26%로 급등했다.
마음 둘 곳 없는 TK “문보다 안이 편하다”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갑작스러운 표 쏠림 현상도 판을 흔드는 주요 변수다. 주목할 점은 이들의 표심 변화에 정서적 측면이 크다는 것이다. 대구·경북 쪽 한 의원은 과의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나서 새누리당은 아예 존재감을 잃어 마음 둘 사람이 없어졌다는 게 이쪽 분위기다. 안희정 지사가 말하는 태도를 보고 정서적으로 반응해서 안 지사를 지지했다가 탈락하고 나니 문재인이 남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사람들은 문재인과 비교하면 안철수가 편하다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경험상 이 반응만으로는 지지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대구·경북의 표심이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했던 호남 표심처럼 독자적 판단에 근거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긴 어렵다는 견해다. 이 경우 안 후보에 대한 대구·경북의 지지세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빠질 수 있다. 경북 상주·의성·군위·청송 재선거를 치르는 한 후보 진영 관계자는 “이곳에선 문재인은 안 된다는 편견만큼은 흔들림 없어 보인다. 다만 홍준표 지사는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찾아보자는 분위기는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약진 현상에 대한 호남의 분위기는 이와 결이 다소 다르다. 앞서 소개한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안 후보의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8%포인트 상승했지만, 문 후보는 도리어 14%포인트나 껑충 뛰었다. 호남에서 문 후보의 지지율은 52%이고 안 후보의 지지율은 38%를 기록하고 있다. 문 후보의 대세론이 여전한 가운데 안 후보가 대안으로서 가능성을 확고히 한 상태로 보인다. 그러나 이 균형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광주의 한 구의원은 “4월 총선 당시의 분위기가 60대 이상을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 호남은 국민의당 의원이 압도적 다수(28석 중 23석)를 차지하고 있다. 안 지사나 이 시장으로 갔던 표가 문재인 후보 쪽으로 가지 못한 것에는 이들의 역할도 무시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의당이 정권을 맡기엔 의석수가 40석에 불과하다. 호남이 안 후보 쪽 지지로 마음을 굳히지 못하는 이유”라며 여운을 뒀다.
급격한 변동에는 조정이 뒤따른다는 게 통설이다. ‘안철수 약진’이란 여진이 잦아든 뒤 그의 지지율은 어떻게 변화할까. 민주당 쪽에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다시 안희정 지사로, 다시 안철수 후보로 흘러간 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견줘 국민의당은 “당시와 달리 흘러다니던 표심이 최종 기착지로 안철수를 택한 것”이라고 맞선다.
“안 지지 10%에 문 싫은 20% 더해져”이제 공은 문재인 후보에게 넘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략에 밝은 한 민주당 의원은 “문 후보가 앞으로 표심을 붙잡기 위해 어떻게 변한 모습을 보이느냐가 안 후보의 지지율을 흔들 마지막 변수가 될 것이다. 남은 기간 문 후보가 독립변수라면, 안 후보는 이에 따른 종속변수다”라고 전망했다. 광주의 한 구의원도 “안 후보 지지와 별개로 국민의당의 수권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해 표심은 언제든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 문 후보가 직접 나서 안 지사와 이 시장에게 머물다 흩어질 위기에 있는 지지를 자신의 그릇에 담아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희정 지지자 커뮤니티 운영자 ㅇ씨도 “안철수 지지자들이 다시 문재인 후보로 마음을 돌릴 수 있도록 적당한 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문 후보가 측근들을 뒤로 물리고 더 적극적으로 안 지사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안 지사의 핵심 측근들이 눈에 보이는 위치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안철수 지지도는 안 후보를 원래부터 지지했던 10%와 문재인 후보가 싫어서 옮겨온 20% 이상이 결합돼 있다. 구조 자체가 단단하다고 볼 수 없다”며 “문 후보 역시 정권 교체 열망과 대세론이 만든 지지도이긴 하지만 (정치 이념이나 정당 지지를 고려할 때) 안 후보에 비해서는 지지층의 견고함이 양호한 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4월15일 정식으로 대통령 후보 등록을 하기 전까지 문 후보가 독자적으로 45% 지지에 도달해 새로운 대세론의 흐름을 만드느냐도 앞으로 정세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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