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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공약 대선 후보 청년 58% “지지하겠다”

만 19~34살 청년 1천 명 온라인 설문… 야당 지지층일수록 의향 높아
등록 2017-01-11 22:53 수정 2020-05-03 04:28
월 25만원을 내고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3평 고시텔에 사는 20대 청년의 모습. 2016년 청년실업률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으면서 청년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김진수 기자

월 25만원을 내고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3평 고시텔에 사는 20대 청년의 모습. 2016년 청년실업률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찍으면서 청년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김진수 기자

지금 청년들은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2016년 청년실업률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와 비슷했다. 만 15~29살 월별 실업률 추이만 봐도, 1999년 이후 최고치를 계속 갈아치웠다. 2월에는 12.5%로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았고 3월(11.8%), 4월(10.9%), 5월(9.7%), 9월(9.4%)에도 역대 월별 최고치를 넘어섰다. 최근 나온 11월 청년실업률도 8.2%로, 1999년(8.8%) 이후 최고치다. 경기 침체로 인해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는 탓이다.

취업이 어려우니 준비 기간도 길다.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를 보면, 첫 취업까지 2년 이상 걸렸다고 답한 청년이 5명 중 1명꼴인 19%에 달했다. 미취업 청년의 46%는 취업 관련 시험을 준비하거나 구직활동 중이었다. 신규 대졸자의 절반가량은 안정을 찾아 공무원시험으로 달려간다. 2017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에겐 현재도, 미래도 불안하다. 터널 속은 캄캄하기만 하다.

대선을 앞두고 ‘청년 기본소득’이 언급되는 이유도 이런 불안과 맞닿아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청년 기본소득’을 제안한 바 있다. 의 대선 주자 설문조사('이번 대선 최대 이슈는 기본소득' 기사 참조)에선 이재명 성남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청년 기본소득’ 우선 도입에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 복지정책에서 항상 주목받아온 노인과 아동뿐만 아니라 청년층에도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지난해 경기도 성남시에서 일종의 기본소득인 청년배당 정책을 시행한 것도 이런 분위기에 밑불을 깔아줬다.

청년 80% ‘기본소득 알고 있다’

당사자인 청년들의 생각은 어떨까? 은 만 19~34살 청년 1천 명에게 기본소득에 대한 5가지 질문을 던졌다. 제1144호(표지이야기 ‘X망의 해 청년의 2017년’)에서 다뤘던 온라인 설문조사의 일환이다. 조사는 2016년 12월20~23일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진행했다. 온라인 설문에 이어 청년 9명의 심층 인터뷰도 추가로 진행했다.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불평등 완화와 일자리 부족 문제를 위한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후보를 지지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설문조사 응답자의 58.2%가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 가운데 ‘매우 의향이 있다’는 8.2%, ‘다소 의향이 있다’는 50%였다. ‘지지 의향이 없다’고 답한 나머지 41.8% 가운데 32.6%는 ‘별로 의향이 없다’, 9.2%는 ‘전혀 의향이 없다’는 입장이었다(아래쪽 그림3 참조).

“로또 당첨이 아니라면 내 삶이 당장 안정될 수 없을 테죠.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려면 사회가 실패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해요. 그 실마리의 하나가 청년배당, 기본소득 같은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27살 취업준비생 최종민씨는 기본소득이란 ‘희망’을 제시하는 후보를 적극 지지할 준비가 돼 있다. 2010년 기본소득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매력적인 아이디어”라는 믿음은 바뀌지 않았다.

최종민씨는 일찌감치 기본소득에 매료됐지만,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널리 알려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스위스 기본소득 도입 국민투표, 올해 시작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등이 전해진 지난해 무렵부터다. 그럼에도 청년들 가운데 무려 80.1%가 ‘기본소득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직은 ‘잘 알고 있다’(19.6%)보다 ‘들어보기는 했다’(60.5%) 쪽이 많다. ‘모른다’는 응답은 19.9%였다(아래쪽 그림1 참조). 이 비영리 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 창’(리서치뷰)와 진행한 전화 설문조사에서 ‘기본소득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62.2%)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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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보다 ‘사회보장제 확대’ 먼저

기본소득 공약을 제시하는 대선 후보 지지 의향은 기본적으로 지지 정당에 따라 갈렸다. 새누리당 지지자 중 36.4%만 ‘(기본소득 후보) 지지 의향이 있다’고 답한 반면, 야당 성향 청년들은 기본소득 후보 지지 의향이 더 높았다(더불어민주당 63.6%, 국민의당 59.8%, 정의당 60.9% 등).

만 19~34살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인 만큼, 응답자 상당수는 야당 성향을 보였다. 지지 정당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2.7%가 더불어민주당을 꼽았고 국민의 당(10.7%), 새누리당(6.6%), 정의당(4.6%)이 2~4위를 차지했다. 4명 가운데 1명(25.3%)은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했다. 대권 주자 지지도는 문재인(34%)-이재명(18.1%)-반기문(6%)-안철수(5.4%) 순서로 나타났다. ‘지지 후보가 없다’고 한 응답자는 22.4%였다(아래쪽 그림6 참조).

지지 정당 외에 고용형태에 따라 기본소득 인지도와 지지도가 갈리는 점도 눈에 띈다. 비정규직 청년의 85.7%는 ‘기본소득을 알고 있다’고 답해 정규직(78.7%)보다 높은 인지도를 보였고,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도 정규직(45.4%)보다 비정규직(53.1%)에서 더 많았다. 기본소득이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바꿀 ‘희망의 최저선’이란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본소득에 기대를 거는 청년들의 마음은 여러 갈래다. “우리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노동하고 있지만, 소외된 노동이 많아요. 여성들의 가사노동만 해도 가정과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데 필수적인데 소득은 없잖아요. 기본소득이 불평등 완화에 한계는 있더라도 시도해볼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해요. 재벌들한테 세금을 더 걷으면 되죠.”(승연·20) “솔직히 먹고사는 걱정이 줄어야 주위도 둘러보게 되잖아요.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기본적으로 삶의 질이 확실하게 올라가니까, 그 돈이 분명히 좋은 데 쓰일 거라고 생각해요.”(정주리·28)

하지만 정주리씨는 기본소득에 매우 공감한다면서도, 불평등 완화를 위해선 기존 사회보장제 확대가 먼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기존 사회보장제가 잘 안 돼 있기 때문에 그것부터 확충한 다음에 기본소득을 도입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청년들은 기본소득이 우선적 대안인지에는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대선에서 후보들이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책 공약으로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물은 뒤 두 가지 선택지를 줬더니, ‘기초생활수급비·기초노령연금·실업급여 등 기존 사회보장제를 확대해야 한다’(63.2%)는 의견이 ‘청년·노인 등 일부 국민에게 또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36.8%)는 의견을 크게 앞질렀다(그림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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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할까?” 갸우뚱

따로 인터뷰한 청년 9명의 의견도 비슷했다. 기본소득 지지 여부만 놓고 보면 ‘기본소득에 공감한다’(7명)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우선순위에서는 ‘기본소득 지급’(2명)보다 ‘사회보장제 확대’(7명) 쪽 손을 들어줬다.

20살 대학생 조성연씨는 이번 대선에서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불평등 완화를 위한 복지제도 확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는 회의적이다. “기본소득이 꺼려지는 건 ‘안 가본 길’이라서예요. 기본소득이 주어질 때 근로 의욕이나 생산성이 어떻게 될지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이 크잖아요. 북유럽에선 우파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이야기해요. 한국의 불평등은 현재 복지제도조차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인데, 지금의 사회보장제 자체가 후퇴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꺼내면 불확실성이 크지 않을까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실현 가능성이다. 직장인 박리세윤(25)씨는 “한국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만큼 재정적 여유가 되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만약 시행한다고 하더라도 월 30만원이 넘지 않는 액수이면 큰 효과가 없을 테고, 증세를 해서 30만원보다 더 많이 주면 저소득층에 주는 복지예산이 줄어들까 우려돼요. 잉여자본이 마구 넘치는 미래에 기본소득이 시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일종의 응급처방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봐요. 기존 복지 시스템도 안 돌아가는데 조세 저항에 맞설 수 있을까요? 40조원을 마련해 기본소득을 시행할 바에는 그냥 일자리 만드는 데 쏟아붓는 게 낫죠.”(김현우·22)

“현재 복지 시스템이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건 환영해요. 하지만 모두에게 조건 없이 월 30만원을 준다는 전제가 실현 가능할까요? 재원 마련도 어렵고, 모두에게 주는 것도 불가능해 보여요.”(이규리·21)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적용하는 것에 대해선 ‘공감’(48.6%)과 ‘비공감’(51.4%)이 팽팽하게 맞섰다. 기본소득 도입 방식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기본소득 공약 후보를 지지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들에게 ‘현재 한국 사회에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어떤 방식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모든 국민에게 전면 도입’(35.2%), ‘청년층에 먼저 도입’(32.1%)이 엇비슷하게 나왔다. ‘노인층에 먼저 도입’(21.5%) 의견도 많았다(그림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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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김예리(25)씨는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머릿속에 풀지 못한 질문이 많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보편복지보다 더 절실하게, 그보다 더 먼저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보편복지와 기본소득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 그는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왜 ‘청년 기본소득’인가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 노인 기본소득이 기존 기초노령연금과 무엇이 다른지, 청년층에 구직촉진수당이 아닌 기본소득을 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취약계층인 노인과 아동뿐만 아니라 왜 청년에게 기본소득을 우선 지급해야 하는지는 첨예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청년 기본소득이 ‘새로운 청년지원 정책’으로서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불안정 노동자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일자리 불안, 자발적·비자발적으로 취업을 포기하고 ‘니트(NEET)족’으로 살아가는 청년 비율(18.5%)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4%)을 웃도는 현실 등에 비춰볼 때 청년 기본소득 같은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아무개는 집이 잘살잖아. 걔 아르바이트하는 거 본 적 없어.” 친구들과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박유영(20)씨는 ‘청년 기본소득 우선 도입’에 찬성한다.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거든요. 기본소득을 받으면 아르바이트를 안 할 수 있으니 저나 친구들이나 확실히 ‘선택의 영역’이 넓어질 것 같아요.” ‘청년 기본소득’이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청년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까.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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